‘이 상품은 실적배당상품으로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지난해 간접투자상품에 가입한 투자자 가운데 이 문구를 유심히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수익증권이나 뮤추얼펀드, 은행의 단위형 금전신탁 상품이 확정배당상품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설마 원금까지 까먹으랴”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올들어 5개월에 걸친 증시침체로 투신사 수익증권 자산운용사의 뮤추얼펀드, 은행의 단위형 금전신탁 등에 가입한 간접투자자들도 땅이 꺼지는 한숨을 쉬고 있다. 직접투자를 하기엔 운용능력과 리스크관리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개인들이 ‘직접투자보다는 낫겠지’하면서 전문기관에 맡긴 돈이 원금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펀드평가기관인 한국펀드평가(KFR)가 50억원 이상 규모로 1개월 이상 운용된 2천4백77개의 주식형 펀드를 조사(5월16일 기준)한 결과 하이일드펀드와 CBO펀드를 제외한 대부분 펀드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특히 주식을 70%이상 편입할 수 있는 1천3백48개 성장형펀드들은 올해 연초대비 누적수익률이 마이너스20%선이다. 원금의 5분의 1정도를 까먹었다는 이야기다. 목표수익률만 달성되면 언제라도 상환될 수 있는 스팟펀드들 역시 수익률 마이너스22%대로 최저수준이다.3천6백72개의 채권형 펀드중에도 1년 누계수익률이 은행 정기예금금리보다 낮은 것이 부지기수다. 물론 대우사태로 인한 채권시장의 혼란과 대우채환매에 따른 거래비용 등 특수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시중금리 상승에 따른 평가손 역시 적지 않아 수익률이 낮다.이렇게 되자 최근 투신사나 은행 등에는 원금보다 줄어든 청산액을 받아들게된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수익증권이나 펀드에 투자한 고객들의 불만은 우선 기관투자가의 운용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집약된다.지난해 상반기부터 시작된 증시활황으로 종합주가지수가 950포인트에서 1,000포인트로 급등한 연말에 주식형펀드를 설정하고 공격적으로 판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즉 “펀드자체를 상투에 설정할 정도로 장세예견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또 “개인투자자보다 뛰어난 정보와 운용기술, 분산투자로 리스크관리를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마이너스 20%의 수익률을 낼 수 있는가”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원금손실이 난 상태에서도 환매가 줄을 잇고 있다.두번째는 도덕성에 대한 불신. 채권형펀드의 경우 수익률 때문이라 해도 투기등급인 BB+이하의 채권이나 부도채권 등을 과도하게 편입한 것은 ‘선량한 자산관리자로서의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펀드평가의 우재룡대표는 “투신사 편입채권의 절반정도가 투기등급채권이나 부도채권”이라고 지적한다. 시가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이들 채권은 채권시가평가제를 앞두고 제도시행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문제점까지 안고있다. 또 일부 투신사에서는 수수료수입이 큰 법인고객을 붙잡기 위해 법인고객펀드에 편입된 부실채권을 개인고객계좌로 옮기는 행위도 공공연히 벌어진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고 있다.펀드매니저에 대한 불신도 적지않다. 운용회사보다도 펀드매니저의 이름을 보고 가입하는 순진한 개인투자자로서는 펀드가 손실이 난 상태에서 펀드매니저가 다른 회사로 옮기는 상황에 분노하게 마련이다.하락국면에 빠진 증시가 반등할 때마다 매물을 내놓는 기관투자가는 사실 직접투자자들의 성토대상이기도 하다. 투신사는 ‘간접투자상품을 산 고객의 환매요청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시장을 볼모로 정부로부터 더많은 공적자금을 끌어내려는 힘겨루기 시도라는 것이 일반투자자의 시각이다.◆ 주식형펀드 가입타이밍 의견도그러나 증시 침체가 계속되자 새로운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상당수의 펀드매니저들은 바닥을 다지는 지금 주식형펀드에 가입, 1년만 잊고 있으면 상당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이애셋 최남철 자산운용본부장은 “간접시장분위기는 좋지 않지만 주가조정기가 주식형펀드의 가입타이밍”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지난해 청산된 뮤추얼펀드가운데 1백% 가까운 수익률을 자랑한 뮤추얼펀드들은 98년말 주가가 400포인트, 500포인트대의 바닥탈출국면에서 설정된 것들이다. 기업실적 호조속에서도 금융권 구조조정 등 노출된 악재로 대다수 기업주가가 IMF시절로 회귀할 정도로 바닥에 다다른 상황을 선행적으로 이용하자는 발상이다.구조조정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일부투신사는 이미 발빠르게 주식형펀드를 내놓기 시작했다. 최근 주식을 70% 이상 편입하는 성장 주식형펀드를 팔기 시작한 삼성투신증권의 이재동 상품관리팀장은 “주가조정기에 선행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그러나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고려해 주식형펀드보다는 앞으로 시행될 채권시가평가제에 대비, 채권시가평가형펀드에 관심을 가져볼 것을 권유하는 지적도 있다.이상화 동원증권 PB팀장은 “간접투자상품에 대한 직접투자도 고려할만하다”고 말한다. 즉 현재 NAV(순자산가치)보다도 할인이 많이 된(주가가 많이 떨어진) 상장펀드를 사놓는 방식이다.주식형 펀드가 됐든 채권형 펀드가 됐든 앞으로는 펀드매니저의 이름만 보고 간접투자상품을 고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부실한 투신이 금융시장 전체에 얼마나 큰 해악을 미치고 고객자산을 축내는지 지켜본만큼 이제는 반드시 건전한 회사를 선택하고 간접투자상품의 선택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