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 형사 해식(박신양)에게는 일란성 쌍둥이 동생 해철이 있다. 해식은 동생이 공장에서 번 돈으로 공부를 해 형사가 된 반면 해철은 밑바닥 인생을 살아 왔다. 인생의 벼랑에 몰린 해철은 형의 눈앞에서 제 자식들을 죽이고 자살한다. 해식은 이 사건으로 직위해제당하고 고향을 찾아간다. 여기서 그는 동생으로 오인한 지역 깡패들에게 휩쓸리게 된다. 동생의 옛 친구인 퇴물깡패 번개(안성기) 패거리에게 받아들여져 함께 지내면서 해식은 해철의 지나온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퇴물 깡패들의 마지막 희망이던 횟집 인수는 꼬여만 가고, 외딴 바닷가에는 파국이 찾아온다.”오랜만에 ‘싸나이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가 나타났다. <킬리만자로 designtimesp=19791>는 요즘 한국영화의 유행을 생각하면 다소 생뚱맞아 보이게도, 느와르를 표방하고 나선 영화다. 형사-범죄자로 어긋난 쌍둥이 형제, 깡패들의 배신과 의리, 예정된 비극적 결말 등 ‘한국식 홍콩 느와르’라 할 만한 요소들은 고루고루 갖췄다.비장한 영상도 빠지지 않았다. 방바닥에 쏟아진 하얀 밥알 사이로 붉은 피가 스며드는 첫장면을 비롯, 몇몇 신들은 대단히 감각적이다. 느와르라는 장르에선 찾아보기 힘든 재미도 있다. 섬세하게 짜여진 몇몇 에피소드들이 그 예다. 시나리오 작가로 시작한 감독의 작품다운 면모. 그러나 전반부에서 사건이 천천히 전개되다가 끝에서 한꺼번에 폭발하는 구성은 다소 삐걱거린다.박신양이 해식·해철 쌍둥이 형제의 1인 2역을 했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터져도 폼나게, 눈물은 돌아서면서 딱 한 방울만” 등등 느와르라는 장르에서 빠질 수 없는 ‘남성영웅의 겉멋’은 거의 이 배우를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 한편 안성기가 연기한 퇴물깡패 번개는 안쓰러운 인물이다.오승욱 감독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그는 박광수 감독의 조감독을 했고 <8월의 크리스마스> <초록물고기 designtimesp=19798> <이재수의 난 designtimesp=19799> 시나리오를 썼다. 이 영화를 보면 영화와 감독은 환경과 시대가 키운다는 당연한 사실이 저절로 되새겨진다. 전체적으로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의 관습을 따른 가운데, 깡패 일당이 아르바이트라며 돈받고 시위나가는 일화에는 박광수나 <우묵배미의 사랑 designtimesp=19800> 시절의 장선우로 대변되는 한국식 리얼리즘의 흔적이 뚜렷하다. 해식이 봉제공장 뒷골목에서 깡패를 패는 장면에는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designtimesp=19801>의 한장면이 겹쳐진다. 핏물과 죽음으로 점철된 마지막 부분에서는 ‘헤모글로빈의 시인’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 designtimesp=19802>이 연상된다.짜깁기했다는 비난이 아니다. 스승 없는 제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앞날 창창한 신인 감독의 ‘청출어람 청어람’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