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력·분석기법·마케팅력 우위 …“국내시장 이해 부족”

지난 1월부터 3개월 동안 외국인이 취득한 토지는 8백24건, 2백50만평. 금액으로 따지면 1조4천5백83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4/4분기와 비교하면 면적은 70.4%, 금액은 12.6% 늘어난 수치다. 이로써 98년6월 부동산시장 개방 이후 여의도 면적의 31배 규모의 토지가 외국인에게 넘어갔다.매입 주체는 대부분 합작기업과 순수 외국법인. 이들의 부동산 취득 이면에는 어김없이 외국에 본사를 둔 부동산컨설팅회사들이 있다. 특히 대형 업무용 빌딩이나 상업용 토지 거래 시장은 외국인 투자자·부동산컨설팅사의 주도 장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외국계 부동산컨설팅사들의 역할은 중개·알선에 그치지 않는다. 보유시 수익성을 중요시하는 서구식 가격 산정기법으로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고 거래 후에도 임대 및 최유효 활용방안 등에 대해 컨설팅한다. 지방자치단체의 개발 프로젝트, 기업의 종합 자산 관리 분야도 이들의 중요한 관심 영역이다.◆ 98년부터 러시, 활동 영역 확대 일로외국계 부동산컨설팅회사들의 국내진출과 활동은 98년부터 집중적으로 늘어났다. 아직 국내에 진출하지 않은 다국적 기업들도 이미 국내시장 탐색을 마쳤다는게 업계 정설이다.미국 최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6월 존벅컴퍼니 한국지사를 인수하고 커니벅코리아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내 부동산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전초기지를 세운 것이다. 세계 1위 부동산컨설팅업체로 꼽히는 쿠시맨 앤드 웨이크필드(C&W)는 지난해 9월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휴렛패커드의 여의도 고려파이낸스빌딩 매입을 성사시켰다.CB리처드엘리스는 삼성 에버랜드와 자산 관리 계약을 체결했고 토지공사, 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한 부동산 해외 매각 일도 맡은 상태다. 가장 먼저 국내에 진출한 BHP코리아는 지난해 11월 서울 역삼동 현대중공업 사옥을 네덜란드계 투자회사 로담코(RDC)에 팔았고 올해초에는 한라건설의 시그마타워를 싱가포르투자청에 팔아 주목을 받았다.또 존스 랭 라살레(JLL)는 제주도 국제 자유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고 홍콩계 바이거스 코리아는 해외 펀드운용사와 제휴해 국내 부동산 투자 사업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아더 앤더슨, 맥킨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노무라 등 종합 컨설팅사들도 부동산 파트를 강화하고 각종 개발 프로젝트 용역과 리츠(부동산투자신탁) 등 유동화 상품 취급을 준비하고 있다.이렇듯 외국계 부동산컨설팅사들의 관심은 △업무·상업용 부동산의 해외 매각 및 유지·관리 △굵직한 개발 프로젝트의 컨설팅 용역 △해외 대형 펀드의 국내 부동산 투자 유치 △부동산 증권화 상품 발매·투자 등 전방위에 걸쳐 있다. 건설교통부 부동산정보센터 지성철 팀장은 “현재 진출해 있는 외국계 부동산컨설팅사들은 투자유치에서 금융, 관리, 분양, 자산 가치평가까지 종합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가격이 폭락했던 기업매물이 소진되면서 매각보다는 선진 기법을 활용한 본격 부동산컨설팅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브랜드 파워 막강'ㆍ'속빈강정'의견분분외국계 부동산컨설팅사들의 이같은 활약에 대한 국내 관련업계의 시각은 다양하다.“성공적인 외자 유치를 위해서는 일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막강한 브랜드 파워와 세계적인 조직망만으로도 외국 투자자 유치에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까요. 국내 토종업체는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지요.”(H건설사 개발사업 담당자)“나쁘게 말하면 국내 부동산시장을 후리고 있는 겁니다. 선진 마케팅 기법이나 고도의 분석능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실제 컨설팅 내용이나 품질을 보면 특별한게 없어요. 총괄 매니지먼트라는 카드로 대기업, 지방자치단체 등의 눈 먼 돈을 열심히 벌어 가는 거죠.”(K부동산컨설팅사 사장)“살아남을 곳이 많지 않을 겁니다. 한국시장을 모르는 그들이 제대로 된 컨설팅을 할 수 없을테니까요. 실무 용역은 국내업체가 하청받는데도 외국계 업체에 총괄 관리를 맡기는 클라이언트들도 문제입니다. 과연 서구식 컨설팅 잣대가 먹힐지 그것도 의문이고요.”(한국부동산컨설팅업협회 관계자)외자 유치가 관건인 기업의 입장에서는 외국계 부동산컨설팅업체의 인지도와 수행 능력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외국인 투자자를 물색하기 위한 창구로서의 역할에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지방공단 등 대형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몇몇 지방자치단체도 입장은 마찬가지다.하지만 IMF사태 이전부터 국내에서 부동산컨설팅업을 태동시켜 온 토종 컨설턴트들은 생각이 다르다. 각종 프로젝트에 외국계 업체와 함께 컨소시엄이나 하청업체로 참가, 시장분석 실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외국계 업체와 사실은 ‘배타적 공생관계’에 놓여 있다. 직접적인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은 대신, 외국계업체의 컨설팅 능력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국내 부동산컨설팅업계 1세대로 꼽히는 K씨는 “유학후 외국업체에서 근무하다 한국지사장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한국시장을 알겠느냐”며 “간판만 외국계 브랜드를 가져왔을 뿐, 기존 한국 인력들이 실무를 맡고 있어 국내 업체와 질적으로 다를게 없다”고 꼬집었다.이같은 환경 변화에 따라 일부 1세대 컨설턴트와 부동산 전문가들은 ‘합종연횡’을 통해 고유 영역 찾기에 나섰다. 이태교 한성대 교수를 필두로 한 ‘리얼티브레인그룹’과 주택산업연구원 기획실장을 지낸 김우진 박사가 만든 ‘코리츠닷컴’이 대표적. 한국시장을 잘 아는 토종 컨설턴트들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터뷰 / 이호규 BHP코리아 사장“국내시장 꿰뚫는 분석력이 생존 열쇠”“최근 국내 지분을 80%까지 늘렸습니다. 외국합작기업이면서도 국내시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토착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죠. 물론 지분이 늘어난 만큼 국내 수익이 확대된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지난 94년 국내 최초의 부동산 분야 외국합작투자법인으로 설립된 BHP코리아는 부동산시장 개방 이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기업이다. 대형 부동산의 해외 매각을 수차례 성사시켜 화제를 모은 이호규 사장(39)은 ‘국내 시장에 대한 이해’가 BHP코리아의 가장 큰 무기라고 말한다. 갓 진출한 외국계 부동산컨설팅사들이 독특한 한국 부동산시장을 속속들이 꿰는데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받는데 반해 BHP코리아는 6년 넘게 한국시장을 고찰해 왔다.“외국 투자자들은 투자 의사결정을 하기까지 장기간의 타당성 검토 기간을 가집니다. 이 기간 동안 부동산컨설팅사에 온갖 자료들을 요청하기 마련이죠. 함량 미달의 데이터나 리서치 결과를 내놓는다면 누가 투자 결정을 하겠습니까.”결국 국내 부동산시장에 대한 정확한 시각과 분석 능력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부동산컨설팅사의 생사 기준이라는 것이다. 김사장은 또 ‘외국계 부동산컨설팅사들이 국부를 유출하는 첨병’이라거나 ‘국내 부동산이 외국 투자자에게 점령당한다’는 식의 일부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도 일축했다.“한때 일본 기업이나 중동의 부자들이 미국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다고 해서 미국 문화가 바뀌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투자 유치로 경제 흐름이 윤택해졌지요. 글로벌시대에는 관념의 울타리도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이사장은 지난 3월30일 IDRC(국제부동산개발협의회) 회장단 세미나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현재 국내지부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부동산컨설턴트, 디벨로퍼, 기업 관계자, 투자자 등이 모여 서로에게 유익한 정보를 교류하자는게 목적이다.★ 인터뷰 / 조셉 한 토탈 컴퍼니스 회장“국내 부동산 가치 극대화 한몫”한국감정원, 아더 앤더슨 코리아와 전략적 업무제휴를 맺고 국내 시장에 진출한 토탈 컴퍼니스는 미국 LA에 본사를 둔 한국계 종합 부동산서비스회사. 3개의 주식회사와 7개의 자회사로 구성돼 있다.“시장 개방 후에도 한국 정부는 서구적인 부동산 투자·관리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또 외국인 투자 유치를 성사시킬 대행업 체제도 미비하지요. 미국에서 쌓은 21년의 노하우를 발휘해 국내 부동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일에 한몫하고 싶습니다.”지난 79년부터 월트디즈니, 암레스코, GE캐피털 등 미국내 유수 기업들의 부동산을 관리해 온 토탈 컴퍼니스는 지난해 2월 국내에 상륙했다. 업무차 한국과 미국을 오가던 조셉 한(한국명 한영준) 회장이 부동산시장 개방을 계기로 활동 무대를 넓힌 것.“부동산 관리의 개념을 단순 시설관리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식 부동산 관리란 분양·임대부터 세금, 법률, 파이낸싱 그리고 경비·청소 등 단순 관리에 이르기까지 부동산 자산이 최고의 상태로 유지되도록 매니지먼트하는 일입니다. 국내 부동산 소유자(투자자)에겐 생소한 개념이라 지난 1년간은 개념 전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요즘 한회장은 단순 중개(Brokerage)와 자산 관리(Property management)가 동시에 이뤄지는 새로운 법인의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적 중개 서비스에 미국식 부동산 관리 개념을 접목해 차츰 시장 영역을 넓히겠다는 의도다.“이제 부동산을 소유가치로 평가하던 시대는 갔습니다. 매매과정에서의 차익으로 수익률을 가늠하는 것도 단편적이기 이를 데 없어요. 보유기간 중에 어떤 방법으로 수익을 낼 것인가, 즉 최고의 활용가치(Best Use)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개념이 전환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