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수익률 경쟁도 부실 재촉 … 일부 펀드매니저, 원금 까먹고 다른 회사로 이직까지

대우채 환매 사태를 계기로 금융권에 불거졌던 투신권 구조조정 문제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구조조정의 태풍속에 휘말려 있는 곳은 한국투신, 대한투신 그리고 현대투신 등 3개사. 장기간 주식투자 손실과 차입금 이자 부담으로 손실이 누적된 3대 투신사는 지난해 불어닥친 대우채 부실로 자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게다가 최근 투신사들이 운용하는 각종 펀드의 수익률이 대부분 마이너스로 떨어져 원금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투자자들은 노골적으로 투신업체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시장에 주는 충격이 크더라도 부실 투신에 혈세를 투입하지 말고 그냥 정리하자”는 제언들이 인터넷 증권정보사이트에 올라오고, 당사자인 투신사 직원들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조섞인 반응을 보이는 등 투신사의 신뢰는 끝간데 없이 추락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한투와 대투에 5조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음에도 오히려 종합주가지수가 7백선이 무너지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런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최근 금융감독원의 실사 결과, 한투와 대투의 부실규모는 총 8조5천억원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부실의 대부분은 대우채 부실(3조4천억원)과 대우외 부실채권(2조5천억원)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지난 10월말까지 양대 투신사의 자본잠식액이 1조7천억원이어서 결국 지난해 말까지 8조5천억원의 거대 손실이 났다.◆ 혈세 투입 대신 ‘정리’ 여론도부채가 자산을 초과한 자본잠식 규모도 엄청나다. 한투의 경우 지난 3월말 기준으로 3조4천억원, 대투는 2조1천억원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한투는 2조7천6백억원, 대투는 1조6천4백억원이 각각 늘어난 것이다. 이는 지난 한해동안 양 투신사가 수익은 커녕 4조원이 넘는 돈을 까먹은 셈이어서 투자자들의 불신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이다.현대투신의 경우도 비슷하다. 대우채 부실 등으로 8천9백억원의 손실을 봤고 바이코리아의 붐에도 불구하고 3천억원의 영업손실이 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지난 3월말 현투의 자본잠식액은 1조2천억원에 달한다. 부실규모가 밝혀지자 현대 정몽헌 회장은 서둘러 현대정보기술과 현대택배 주식을 팔아 1조2천억원에 달하는 자기자본 부족분을 메워 나가겠다고 발표했다.이렇듯 재무구조가 엉망인데도 투신사들은 볼멘 소리를 한다. 투신업체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무슨 상관입니까. 고객들의 재산만 잘 관리하면 됐죠”라며 항변했다. 투신사의 부실은 “예상치 않았던 대우의 부실”에서 연유한 것이고 “투신사가 아니었으면 대우의 부실을 누가 책임졌겠는가”라고 주장한다.그러면 투신사들은 고객들의 재산은 잘 관리했을까. 이 부분에도 투자자들의 불신은 적지 않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동일종목 투자한도(주식 10%, 회사채 등 10%)를 초과하는가 하면 돈 많은 법인 고객들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개인들의 펀드에서 우량 종목을 빼내 편입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금감원 관계자는 “한투와 대투가 동일종목 투자한도를 어겨 수백억원의 손실을 봤다”며 “위험회피 노력을 게을리했다”고 지적했다. 외국의 경우 동일 종목에 5% 이상 투자하는 것을 금하는 등 국내 기준보다 더 엄격하게 위험요인 분산기준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 규정을 위반했을 경우 의결권 제한이나 2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면 되는 정도의 처벌 규정을 갖고 있어 유명무실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한 투신업체의 펀드매니저는 “주가가 올라 분명히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이는 종목에는 10% 규정을 어기고 투자하는 경우가 있다”며 “수많은 종목을 보며 펀드를 운용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동일 종목 투자한도인 10%선을 넘는다”고 말했다. 또 투신사들의 비도덕적인 펀드운용에 대해서 그는 “일부 펀드매니저들이 법인 고객의 수익을 높이려고 일반 고객들의 펀드에 편입된 우량 주식이나 회사채를 법인 펀드로 옮긴 경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고백했다.투신사간 과도한 수익률 경쟁도 투신사의 부실을 촉진시킨 것으로 지적된다. 실제 운용수익률은 5%인데도 타사가 낸 6~7%의 수익률에 무리하게 맞추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수익률 초과분인 1~2%는 회사가 부담하고 손실로 잡아 왔다. H투신 관계자는 “신생 투신사들이 공격적으로 수익률을 높여 경쟁을 부추기다 보니 우리라고 여기에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7월초부터 시행될 채권시가평가제가 투신사간 과도한 수익률 경쟁을 자제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시가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채권의 경우 어떻게 평가할지도 문제이다.◆ 감원, 감독안일도 한몫펀드매니저들이 고액의 연봉을 좇아 수시로 직장을 바꾸는 행태도 투신권의 불신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개인 투자자 가운데에는 펀드운용회사보다도 펀드매니저의 이름을 보고 투자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따라서 펀드매니저가 사전에 알리지 않고 직장을 옮기는 것에 강한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것.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 “펀드매니저들이 고객의 재산을 끝까지 성실하게 관리해야 하는 의무를 망각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실례로 H투신의 J펀드매니저의 경우 1조원 이상의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다 증시가 약세로 돌아선 올해초 갑자기 타 회사로 옮기면서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다. J씨뿐 아니라 L투신의 P씨, S투신의 K씨, D투신의 L씨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다른 배로 옮겨 탔다. 결국 이들이 관리해온 주식형 펀드나 공사채형 펀드를 다른 펀드매니저들이 얼떨결에 맡게 되었고, 투자 전략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최근에 자리를 옮긴 한 펀드매니저는 “우리의 성과는 단기 수익률로 평가받기 때문에 언제 펀드매니저 자리를 내놓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 불안한 것이 이 직업”이라며 “기회가 있을 때 좋은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앞날을 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숭실대 장범식 교수(경영학부)는 “외국에선 이런 사례를 찾아 볼 수 없다”며 “펀드매니저로서 고객재산을 선량하게 관리한다는 기본적인 윤리 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펀드매니저들이 철새처럼 옮겨다니자 투신협회에서는 ‘윤리강령’을 만들어 이런 행위를 규제할 방침이다.투신사들이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 감독기관의 관리 소홀도 지적되고 있다. 투신업계 관계자는 “감독기관인 금감원이 착실히 감독해 불법을 일삼는 펀드매니저들과 투신사를 일벌백계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30명씩 조사인력이 파견된다고 엄포만 놓고 고작 5~6명이 와서 대충 실사하고 돌아가는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안일한 감독기관의 행태를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