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잘못이 다른 잘못과 반응, 뒤엉킨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다.이런 경우, “나는 무죄, 당신은 유죄”라는 식의 태도보다는 내게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나의 문제가 다른 문제와 반응해 복잡한 시스템적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이다.이 세상에 자신 때문에 세상이 나빠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세상을 위해 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두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자신은 열심히 일했는데 세상이 그런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시카고의 조직폭력배 알 카포네조차도 그런 불평을 했다고 한다. “나는 불쌍한 사람을 위해 거액을 기부하고 좋은 일도 많이 했는데 왜 나를 범죄자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세상이 원망스럽다.…”자동차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중 하나인 요철(凹凸, 차체 표면의 울퉁불퉁한 결함)을 잡기 위해 태스크포스팀장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도장부장이었지만 도장부만 잘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요철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공정 사람들을 참여시켰다. 프레스부터 차체, 도장, 조립, 품질검사에 이르기까지. 각 공정 끝부분에서 요철발생 여부를 검사해 체크시트에 기록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예를 들어, 차체의 마지막 공정에서 20개 요철이 발견됐는데 도장 마지막 공정에서 30개가 되면 도장공정에서 나머지 10개가 발생됐다고 가정하는 원시적 방법이었다. 조사 결과, 요철은 처음부터 있거나 공정별로 발생하는 것도 있었다. 또 집중 발생한 공정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공정도 있었다. 공정별 철저 검사와 발견 즉시 없애는 방법만이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왔다.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공정에서 결함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데 있었다. 또 뒷공정에 있는 사람일수록 앞공정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했다. 즉, 앞공정에서 엉망인 품질이 넘어오니 자신들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제일 앞공정인 프레스쪽 사람이 모든 죄를 뒤집어 쓸 위기에 몰렸는데 그 사람들 말이 더욱 절묘했다. “저희들도 할 말이 많습니다. 저희의 앞 공정인 철강회사에서 오는 강판 자체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모르시죠?” 급기야 작업 중 발생한 요철문제를 원재료업체에까지 책임전가하는 것이다. 그 순간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는 옛 속담이 기억났다. 그렇다면 왜 다른 경쟁사는 괜찮은 것일까.어린 시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우리 부모들은 돌부리를 “뗏찌”하며 야단쳤다. 아이가 부주의해 넘어진 것인데도 애꿎은 돌멩이나 땅바닥을 야단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훈련(?)을 받은 덕에 우리는 무언가 일이 잘못될 때 자신을 반성하기 앞서 외부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열심히 산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도 3김씨 탓이고, 잘 키운 기업이 부도나는 것도 정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내에서도 이런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생산부서는 필드에서 문제가 생기면 불량을 놓친 자신을 반성하기 앞서 까다로운 설계를 한 엔지니어를 탓한다. 설계는 설계대로 자신의 기막힌 아이디어를 실현하지 못하는 생산 부서의 무지를 비난한다. 또 영업은 영업대로 제품력만 있으면, 또는 제품종류만 다양하면 얼마든지 팔 수 있는데 그것을 뒷받침 못하기 때문에 팔 수가 없다고 불평을 한다.세상이 복잡해질수록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의 종류는 줄어든다. 또한 세상의 모든 문제도 복잡성을 띠게 된다. 개인이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개인 잘못이 다른 잘못과 반응해 뒤엉킨 문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나는 무죄, 당신은 유죄”라는 식의 태도로는 문제를 도저히 풀 수 없다. 내게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나의 문제가 다른 문제와 반응해 복잡한 시스템적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