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LG가 인력 스카우트 문제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LG정보통신이 GSM(시분할다중접속)방식의 휴대폰을 개발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연구개발인력을 스카우트하면서 비롯됐다.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에만 전념해온 LG가 맥슨전자 인수를 계기로 GSM사업에 뛰어들면서 빚어진 일이다.삼성측은 LG가 무선사업개발팀 소속 휴대폰 개발 핵심인력중 과장급 1명과 주임급 3명을 빼가기 위해 1억∼1억5천만원이라는 스카우트 비용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스카우트 대상자 명의의 통장에 LG측이 8천만∼1억원씩 각각 입금한 사실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는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터무니 없는 행위며 상도의에도 어긋나는 조치라는게 삼성측 주장이다.삼성이 LG의 스카우트 사례를 언론에 공개하며 정면으로 문제삼고 나선데는 끊임없는 인력유출에 따른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 한해 동안 8백2명의 연구인력이 회사를 떠났다고 밝혔다. 올들어 이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돼 지난 4월말까지 4백90명이 빠져나갔다. 삼성이 LG를 타깃으로 포문을 연 것도 이런 속사정을 반영, 인력 유출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알리려는 조치였다.삼성은 LG가 이번 사태뿐 아니라 지난 1월 삼성전자 영국 현지연구소(SERI) 소장으로 근무하던 신용억씨를 스카우트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GSM소속 J과장, Y주임을 빼내갔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GSM소속 핵심 연구 인력을 빼앗기다 보면 프로젝트 추진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것이다.천경준 삼성전자 정보통신연구소 부사장은 “경쟁사가 거액의 금품을 제시하며 핵심 기술인력을 빼내가는 것은 최소한의 기업윤리를 무시한 처사”라며 “법적 대응과 함께 대국민 호소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LG정보통신은 “퇴직의사를 밝힌 인력들이 인터넷 상시공채를 통해 자의로 입사하는 과정에서 LG정보통신이 우수인력 확보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이닝보너스(Signing Bonus)를 지급한 사실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효율적 인력관리 통해 경쟁력 높여야LG 관계자는 “정상적인 인력 채용을 두고 법적 시비를 운운하는 것은 기업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측이 LG가 빼내갔다고 주장하는 신용억 상무는 “삼성에 사표를 쓴 것은 삼성의 부당한 인사관행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을 뿐”이라며 “79년부터 21년간을 삼성에서 근무했지만 이사 승진도 못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했다.IT(정보기술)업계에서 3, 4년 경력의 핵심 연구인력을 데려오기 위해 1억원 정도의 스카우트 비용을 제시하는 것은 흔한 일인데도 삼성전자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라고 LG측은 보고 있다.법무법인 세종의 박교선 변호사는 “최근 들어 정보통신 등 첨단 업종에서 인력스카우트가 치열해지면서 영업비밀을 보호받기 위한 법적 다툼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스카우트가 가능한 범위에 대한 판례가 쌓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업계는 무분별한 스카우트도 문제지만 부당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잣대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건전한 인력 스카우트 시장이 형성되지 못하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이같은 상황을 감안할 경우 삼성과 LG간 인력 스카우트 파문은 뚜렷한 결론없이 무승부로 끝날 확률이 높다. 양측이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하기 보다 디지털 업계의 리더로서 효율적인 인력관리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데 더욱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