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절하땐 인플레로 성장세 둔화·고물가 직면 … 국내 기업차원 대책 마련 ‘시급’

5월23일 미국 하원에서 중국에 대한 영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지위부여 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86년 이후 무려 14년 동안 끌어왔던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문제가 사실상 확정됐다.오는 6월에 소집될 WTO 총회에서 회원국의 동의를 구하는 일정이 남아 있으나 현재 WTO가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이로써 미국의 금리인상 조치 이후 중국 위안화 절하문제가 조만간 세계 최대 관심사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중국이 WTO에 가입하면 「1달러=8.28위안」으로 운용해온 고정환율제를 포기해야 한다. 현재 인민은행의 외화운용능력을 감안할 때 고정환율제를 그대로 가져갈 경우 대외거래와 통화가치간의 심한 괴리가 발생될 우려가 있다. 중국 내부적으로도 WTO가입 이후 고정환율제를 포기한다는 방침이 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중국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할 경우 위안화 가치는 당연히 절하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위안화 가치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암시장(black market)에서도 달러당 8.4∼8.5위안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이 이같은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WTO가입 이후 고정환율제 포기할듯만약 위안화가 절하될 경우 세계경제에는 또다른 복병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은 「고가-저가」로 양분화되어 있는 세계상품시장에서 저가 시장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중국이 위안화 절하를 통해 수출증대를 모색할 경우 개도국 통화가치의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최근에 개도국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가뜩이나 세계 모든 통화가 경제여건과 괴리되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세계경제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도국 통화가치가 더 떨어지면 1929년 대공황 당시와 비슷한 국면에 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문제는 중국이 WTO에 가입해 고정환율제를 포기할 경우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위안화가 절하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정확히 짚어보기 위해서는 현재 중국이 처한 경제여건과 위안화 절하에 따라 예상해 볼 수 있는 득실을 따져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우선 위안화가 절하될 경우 중국이 우선적으로 기대해 볼 수 있는 효과로는 수출증대와 경기부양 효과다. 현재 중국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10%가 넘는 대량의 실업으로 디플레 징후가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출이나 내수확대를 통해 경기를 회복시켜야 한다.물론 이 문제해결에 중국 정부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위안화 절하를 통해 수출을 늘리는 방안이다. 대부분 중국의 수출상품들은 품질, 디자인과 같은 가격 이외의 요소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함에 따라 환율에 크게 의존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반면 위안화 절하에 따른 부담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홍콩과의 남아 있는 경제통합이 어렵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위안화가 절하될 경우「1달러=7.8홍콩달러」를 중심환율(pivot rate)로 운용하고 있는 통화위원회(currency board) 제도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홍콩과의 경제통합이 멀어진다는 의미다.실제로 위안화 절하 이후 경제통합을 위해 홍콩 달러화가 절하될 경우 인접국 통화도 경쟁적으로 절하를 불러일으켜 무역상의 이익도 축소될 우려가 있다. 과거 97년 아시아 국가들이 금융위기를겪은 것도 아시아 제일의 자금조달 창구를 담당하고 있는 홍콩의 주가폭락이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지난해 이후 중국이 상하이시를 국제금융센터로 육성하는 구상과 이제는 유효 구매력이 어느 정도 확보됨에 따라 12억이 넘는 거대 인구를 겨냥한 경제대국형 성장전략 추진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절하시 국제적 위상도 약화현재 중국은 대내적으로 자원동원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7백90달러 수준에서는 민간저축을 기대하기 어렵다. 동시에 부실채권 처리와 경기회복 과정에서 막대한 지원지출로 재정사정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결국 외자를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위안화가 절하되지 말아야 한다.대외적으로도 중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위안화 절하를 통해 수출증대를 모색할 경우 금년 들어 중국의 시장개방을 대외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삼고 있는 미국과 최근 들어 「신(新)아시아 중시정책」을 재추진하고 있는 EU와의 통상마찰이 예상된다.아시아 지역에서도 일본과의 역학관계에 있어 뒤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중국은 아시아 지역과의 경제관계를 활용해 위상을 강화하려는 일본을 견제해 왔다. 특히 아시아 금융위기 과정에서 「신(新)미야자와 플랜」에 대해 강력히 비난해온 상태다.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위상을 염두에 둔 전략이다.이런 점을 감안하면 중국은 WTO에 가입한 이후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더라도 내부적으로는 위안화가 절상되기를 더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실제로 1천5백억달러에 달하고 있는 외환보유고와 매년 2백억달러가 넘는 무역수지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외화여건하에서는 위안화가 절상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만약 이런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위안화 절하를 유도할 경우 갑작스러운 인플레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경제 자체적으로도 성장세가 본 궤도에 올라가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현시점에서 인플레 문제가 생길 경우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높은 물가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위안화 가치변동 대책 마련해야최근 들어 국제고금리 시대의 도래, 국제유가 재상승, 교역상대국과의 통상마찰로 대외환경이 우리 경제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대내문제까지 겹쳐 심리적인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심리적인 공황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 위안화 절하에 대해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것도 이런 연유다.물론 중국이 WTO 가입 이후 고정환율제를 포기할 경우를 대비한 기업차원의 대책은 마련해 놓아야 한다. 특히 위안화 가치변동에 대한 대책은 시급하다. 사실 국내기업들의 위안화 가치변동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오히려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국내기업들이 위안화를 들여오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대기업 차원에서는 사내선물환 제도를 활용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소기업과 영세 무역상이다. 정책당국에서는 이들 업체들이 위안화 가치변동에 따른 위험을 방지할 수 있도록 환율변동보험제를 더욱 활성화시켜야 하고 영세 무역상도 적용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