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구조조정 부진과 5월말에 불거진 현대건설 유동성위기로 5월29일 종합주가지수는 장중저점 625포인트, 코스닥 110포인트까지 하염없이 추락했다. 그러나 기나긴 하락의 터널은 바로 그곳에서 끝났다. 모든 악재가 드러나버린 바로 그 시점부터 한국증시는 하락궤도를 벗어났다. 6월9일 836.40포인트까지 각종 저항선을 뚫으며 거래일수 9일만에 210포인트 이상 치솟는 괴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거래량은 물론 거래대금 수준에서도 거래소와 코스닥은 침체의 늪을 벗어났다. 잔인한 4월과 더 잔인했던 5월중 1억6천만주 수준까지 떨어졌던 거래소의 거래량은 선물과 옵션만기일이 겹친 더블위칭데이였던 8일 6억7천만주라는 사상 최고의 기록까지 수립했다. 코스닥 역시 지난 2월의 활황장세 때와 비슷한 3억주 이상의 거래량을 회복했다.◆ 일단은 상승추세 … 시장 불안요인 잠복상태거래대금 역시 거래소가 7조원 수준으로 지난해 10월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갔다. 단기적으로는 거래량 상투와 주가상투를 말하는 소리가 많다. 그럼에도 추세선이 다시 하락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견해는 많지 않다.그렇다면 과연 이제는 하락의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것인가.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일단은 상승추세의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좀 더 보수적인 전문가들도 올들어 지속된 조정추세는 일단 마무리된 것으로 본다. 장기파동의 시각에서 보는 전문가들은 여전히 “KOSPI 300포인트에서부터 시작된 상승파동선상”이라고도 말한다. 어쨌거나 지금을 하락추세 직전의 마지막 시세분출이라거나 일시적 반등이라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그것만 해도 몇 주 전과는 달라진 점이다.그러나 전문가들이 조심스러운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이들이 조심스러운 이유는 “시장에 남아 있는 불확실성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금융구조조정의 완결과 채권시가평가제의 결과를 아직은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또 1백50조원을 웃돈다는 시중의 유동성이 은행의 3개월 미만 수시입출식예금 등 단기부동화해 실물부문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점도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이미 자금난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그럼에도 대세상승국면 진입이라는 견해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올들어 고통스러운 조정국면을 지속하게 한 최대원인이었던 수급문제가 차츰 해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지난해 6, 7월에 대거 설정된 투신사 주식형수익증권과 뮤추얼펀드 은행 단위형 금전신탁의 환매 및 만기도래 물량이 늦어도 7월까지는 상당부분 정리된다는 전망이다. 또 6월10일부터는 한국투신과 대한투신 등 양대투신에 정부의 공적자금이 지원되기 시작했다. 매수여력이 생길 것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외국인투자자의 폭발적 매수도 간과할 수가 없다. 외국인은 현대유동성위기가 노출된 5월26일부터 6월8일까지 무려 2조원 가까이 순매수를 했다. 그것도 한국통신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 대표적인 지수관련 우량주를 쓸어담고 있다.외국인의 대량순매수에 대해서는 단기차익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도 있다. 그러나 외국계증권사의 관계자들은 “환투기나 단기매매차익보다는 연기금 등 장기투자가 많다”(크레디리요네증권 이진용 지점장)고 말한다. 이달초 미국의 연기금펀드가 현대전자주식을 1억달러어치나 장외매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뿐만 아니라 이머징마켓 중에서도 한국증시가 가장 과매도상태에 있어 “헐값에 우량주를 살 수 있는 바겐헌팅의 기회로 보고 들어온다”(HSBC증권 이정자 지점장)는 설명이다. 따라서 외국인의 순매수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순매수가 ‘BUY 코리아’가 아니고 ‘BUY 반도체’나 ‘BUY 정보통신’ 등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이남우 상무는 “최근 글로벌 섹터펀드들이 반도체 통신 등에서 한국의 우량주 편입을 늘리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면 반도체를 주로 편입하는 펀드가 인텔주식을 팔고 추정이익대비 저평가된 삼성전자를 대신 편입하는 식의 포트폴리오 재편이라는 설명이다.시중의 유동성이 증시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증권관계자들은 올들어 잠잠했던 큰손들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한다. 5월말 현대사태가 가시화되기 직전 외국투자자나 기관투자가가 관심이 없던 저가은행주와 건설주 코스닥 신규등록주 등을 매집, 이들 종목에서만 이미 1백%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이 큰손이 주도한 작품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큰손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도 많지만 어쨌거나 큰손이나 작전세력이 움직일 때 증시도 활황을 보인다는 아이러니도 부인할 수는 없다.금리의 안정세도 증시로 유동성을 끌어들일 요인이 될 전망이다. 채권시가평가제라는 변수는 있지만 “하반기에는 시중금리가 한자릿수로 지속될 것”(장인환 KTB자산운용대표)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이미 약발이 떨어진 부동산으로 갈 수도 없고 은행으로도 가지 않는 시장의 유동성은 결국 증시로 유입될 것이라는 분석이다.기업실적도 여전히 좋다. 동원경제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상장기업 수익예상’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장기업의 순이익은 27조1천1백9억원으로 지난해보다 91.8%나 급증할 전망이다. 올해 예상 순이익과 5월말 주가를 기준으로 전상장기업의 자본금 가중평균 PER가 9.5배로 전세계적으로도 저평가된 상태이다.◆ 남북정상회담 호재 … 국제적 자금 유입 계기미국 증시도 국내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다우지수나 나스닥지수 모두 당분간은 안정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견해이다. 사실 미국 증시의 하락은 단기악재이면서 장기적으로 호재로 볼 수 있다. 미국 증시의 유동성자금들이 미국 시장보다 주가상승이 기대되는 이머징마켓으로 들어오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남북정상회담 결과 한국의 컨트리리스크가 크게 낮아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중 하나라는 인식이 불식되면 국제적 투자자들의 시각은 대폭 호전될 것이고 그 효과는 다시 국내 투자자에게 선순환의 고리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