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업 구조조정 등 경제 내부여건 개선이 변수 … 북한, 국제자금 활용 길 열릴듯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실로 많은 것을 남겼다. 회담 이전부터 ‘만남’ 그 자체의 의미가 컸던 이번 회담에서는 당초 예기치 못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앞으로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그 중에서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남북간의 경제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 점이다. 2차 단독회담이 끝나고 발표된 남북공동선언 중에서 남북 경협추진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진만큼 앞으로 실무차원에서 구체적인 절차나 협력분야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대외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대한 대외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벌써부터 우리의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 시기도 빠르면 이달말 이전에는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현시점에서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면 우리 경제로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이미 국내 증시에서는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다. 최근 들어 뚜렷한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외국인의 주식매수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달 들어서만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는 2조2천억원을 상회하고 있다.◆ 신용등급 조정 때 외국인 순매수 반복 ‘주목’눈여겨 봐야 할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북미투자자들이 약 98%를 차지하고 있는 점이다. 이같은 현상은 IMF 사태 이후 우리의 신용등급이 조정될 때마다 반복돼 왔다. 최근 미국투자자 주식매입은 우리의 신용등급 조정에 대한 어느 정도 확신이 있는 상태에서 취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국제금융시장에서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우리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외평채 가산금리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한국물 가격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시각이 개선되고 있는 셈이다.그렇다면 남북 정상회담 이후 보이고 있는 일련의 조짐들이 국가신용등급 조정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무디스, 스탠더드&푸어스(S&P), 피치 IBCA사와 같은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신용등급을 조정할 때 크게 네가지 기준을 고려한다. 국가위험, 산업위험, 영업위험, 재무위험 등이다.이중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국가위험(sovereign risk)을 줄이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북한과의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이 우리 신용등급 조정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런 만큼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에 대한 불확실성 요인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도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이달 25일 전후로 미국이 대북한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북한과 일본간의 수교문제도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7월17일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한방문도 예정돼 있다.문제는 앞으로 어떤 형식이든 간에 남북회담을 계속해 나가느냐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우리 경제의 내부여건이 개선될 수 있느냐가 신용등급 조정에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일회성 변수는 신용등급 조정에 고려치 않으며 경제적인 요인을 보다 중시하기 때문이다.최근 들어 무디스를 비롯한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신용등급 조정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designtimesp=19926>을 비롯한 일부 기관들은 앞으로 남북경협 과정에서 소요될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우려해 우리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확실한 것은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제안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이 수락된 만큼 조만간 우리의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동서독 통합 당시를 감안하면 최소한 한 단계 이상 상향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다만 최근 들어 무디스, S&P사를 중심으로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앞으로 국가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면 우리 경제로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국가신용등급이 조정된 것은 정부가 발행한 장기외화표시 채권에 대한 신용등급이다. 사실상 채무불이행이 없는 무위험 채권에 대한 신용등급 조정이었다. 아직까지 민간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신용등급은 평균적으로 볼 때 투자적격 단계로 조정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과거의 예로 볼 때 국가신용등급이 투자적격 단계에서 2단계 상향 조정되면 민간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투자적격 단계로 조정되는 것이 관례다. 현재 우리의 국가신용등급은 금년 3월말에 한 단계 더 조정한 피치 IBCA사를 제외하고는 투자적격 단계에서 한 단계만 상향 조정된 상태다.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가신용등급이 한 단계 상향 조정되면 민간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신용등급도 투자적격 단계로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IMF 사태 이후 폐쇄됐던 대부분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신용선(credit line)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금년 하반기를 계기로 우리의 거시경제운용 프로그램을 IMF와 더 이상 협의하지 않는다. 이른바 경제신탁통치 시대가 종결된다. 만약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의 국가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면 또 다른 의미의 IMF 졸업을 맞는다고 볼 수 있다.◆ 북한 국제자금 이용방안 강구 시급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또 하나 기대해 볼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로는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남북경협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는 재원조달이 관건이다. 현재 북한의 대외신용으로 볼 때 국제금융기구를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으로 제한된 상태다.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면 우선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빈곤퇴치와 성장지원제도(PRGF)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 자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9백25달러 이하의 최빈회원국을 대상으로 지원되는 자금이다. 98년 기준으로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5백73달러다.세계은행(IBRD)의 국제개발협회(IDA) 자금도 접근 가능하다. 이 자금은 지원조건이 가장 좋으나 IMF와 IBRD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행해야 하는 단서가 따른다. 동시에 현재 북한이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ADB의 아시아 개발기금(ADF)도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에 대해 국제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더라도 실제 가입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만큼 북한이 국제금융기구 가입 이전이라도 국제사회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북한에 대한 특별신탁기금(Trust Fund for DRPK)을 설립하는 방안이다. 이미 이 기금은 팔레스타인, 동티모르, 보스니아, 코소보 지역의 경제재건을 위해 지원된 바 있다. 주요국들이 국제금융기구에 예탁해 놓은 신탁기금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특히 이 기금은 신탁국의 동의만 있으면 언제든지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밖에 비정부기구(NGO)들이 필요한 재원을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로부터 조달해 지원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만큼 국제금융시장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커다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