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심한 복통으로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의 응급실에 온 환자가 있었다. 장폐색 증상이 있어 밤새 내과적 치료를 했는데도 좋아지지 않아 다음날 응급으로 수술을 하게 됐다. 장결핵이었다.소장의 가장 끝 부분인 회장이 장결핵으로 곳곳에 심한 협착이 있었다. 과거 이 환자는 몸이 마른 것 말고는 가끔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는 정도여서 동네 병원을 다니면서 증상 치료를 하고 지내다 장결핵이 악화되는 바람에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들어 본격적인 결핵퇴치 사업이 시작되어 결핵에 걸린 사람이 많이 감소하기는 했으나 1990년 통계에서 아직도 국민의 1.8%가 결핵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결핵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매우 드문 병으로, 그 중에서도 장결핵은 아주 드물어 장결핵 환자가 입원하면 의사들이 구경올 정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만성인 장질환 가운데 가장 흔한 병의 하나다.장결핵은 증상이 매우 다양하다. 복통 설사 식욕감퇴 체중감소 발열 피로 등이 주로 나타나지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없다. 환자를 진찰해보면 영양 상태가 나쁘고, 오른쪽 아랫배를 누르면 통증을 느끼며 때로 덩어리 같은 것이 만져지기도 한다. 이는 주로 장결핵이 소장의 끝 부분인 회장과, 대장이 시작되는 부위인 맹장에 잘 발생하기 때문이다. 간혹 장출혈, 천공, 폐색 등의 합병증으로 응급실에 오는 경우도 있다.장에 결핵균이 들어와 염증을 일으키는 기전에 대해 여러 학설이 있는데, 주로 복부 임파선 등에 숨어 지내던 결핵균이 우리 몸의 저항력이 떨어지는 틈을 타 다시 활성화되어 주위 장기에 침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에는 장결핵 환자가 폐에 활동성 결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절반 정도였으나 요즘은 폐결핵 감소로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었다.장결핵을 진단하기는 쉽지 않다. 대장 X선검사, 대장 내시경검사, 소장 X선검사 등을 해보면 어렵지 않게 병소를 찾을 수는 있으나 유사한 병이 많아 장결핵인지 정확히 감별하기가 어렵다.서양인에 많은 크론병, 베쳇씨병, 때로는 대장암 등이 장결핵을 진단하는데 혼선을 주는 질병들이다. 내시경으로 조직을 떼어내 병리검사를 해도 장결핵을 진단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경우는 채 반이 안되고, 나머지는 임상 증상과 검사 소견 등을 종합해 감별 진단을 해야 한다.여러 검사를 해봐도 감별이 잘 안되면 일단 결핵 치료를 시도하는 것이 좋다. 장결핵은 항결핵제를 투여하면 1~2주 안에 열이 내리고 환자의 컨디션이 좋아지며 식욕도 좋아진다. 1~2개월 지나 대장 X선검사나 내시경검사를 해보면 장의 병변이 좋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장결핵은 특별한 합병증이 없다면 항결핵제로 잘 치료되는 병이다. 결핵약을 9개월~1년 정도 지속적으로 투약하면 환자는 다른 사람이 몰라볼 정도로 좋아져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02) 760-2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