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닷컴기업 속속 진출 … 학연·지연 낯선환경서 ‘그들만의 네트워크’ 구축

최근 서울벤처밸리를 주도하는 또 하나의 핵심 세력은 바로 외국유학 또는 외국계 기업근무 등 속칭 ‘외국물’ 먹은 CEO들이다. 이들 중엔 오랜 외국생활로 영어보다 오히려 우리말을 잘 못하는 CEO들도 적지 않다. 하버드나 MIT 등 유명대학을 졸업하고 투자회사나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국내 ‘닷컴’기업으로 속속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외국사정을 잘 아는 인사가 벤처기업 CEO로 있을 경우, 외국자본 투자유치 및 외국 기업과의 제휴 등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복안도 깔려 있다.회사의 발전방향, 사업내용, 조직관리 등에 관해 끊임없이 컨설팅을 받아야 할 벤처기업 입장에서 경험이 많은 외국계 컨설턴트를 CEO로 영입한다면 경영 프로세스 관리가 그만큼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계 CEO들은 또 미국식 경영마인드에 자율 및 자유분방함을 곁들인 경영전략으로 조직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자율·자유분방한 경영전략, 조직 새바람대표적인 인물이 국내 최대의 인터넷 교육사이트를 표방하는 배움닷컴 임춘수 사장(37). 임사장은 다소 이색적이면서도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임사장은 우선 연봉 10억원의 골드만삭스 조사담당 이사출신. 배움닷컴에서 골드만삭스 수준의 거액의 연봉이나 엄청난 스톡옵션을 받는 것도 아니다. “돈이나 안정성을 바랐다면 벤처행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란 그의 언급에서처럼 그의 벤처행은 뜻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의욕과 모험정신에서 비롯됐다.이런 그의 도전적 경향은 이미 오래전부터 싹터온 것.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한달만에 ‘틀에 박힌’ 학교생활이 싫어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연세대 경영학과)에 진학, 재학중 최연소 나이(19세)로 공인회계사(CPA)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이어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MBA를 따고 미 현지회계법인과 프루덴셜증권 애널리스트를 거쳐 1994년부터 배움닷컴 사장으로 취임한 올해 2월까지 골드만삭스에서 일해온 국제금융전문가. 그의 벤처행이 모험정신의 발로였던 만큼 그는 인터넷 회사의 좋은 선례, 올바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겠다는 각오 아래 새로운 배움터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만큼 일을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무섭게 일에 몰두하다가도 회식자리에선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에다 현란한 테크노댄스까지 소화해 내는, 이른바 ‘실력은 있지만 격식은 없는’ 신세대급 CEO로 통한다.김진호 전사장과의 경영권 파문으로 주목을 받았던 유신종 골드뱅크 사장(39)도 미국식 사고방식이 몸에 밴 해외파. 중학교 1학년때 미국 이민길에 올라 하버드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리튼데이터시스템즈, IBM 등에서 일했다. 유사장은 한마디로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율을 강조하는 미국식 스타일. 경영에서도 투명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이같은 사고방식이 김진호 전사장을 퇴진시키는 데도 한몫을 했다. 투자자금을 끌어 모아 놓고서 주주들에게 투자약속을 지키지 않은데 대한 이의제기가 경영권 파문을 일으킨 도화선이 됐던 것이다.이처럼 미국식 경영 마인드를 갖고 있는 CEO들은 대개 CEO의 역할에 대해 색다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한국 기업인들에게 ‘한번 CEO 는 영원한 CEO’라는 의식이 강합니다. 외국의 CEO 는 대부분이 전문 경영자입니다.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죠. 따라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우수한 경영 능력(Performance)을 지속적으로 발휘해야 합니다.”B2B(기업간 거래)업체에 대한 전문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머스 벤처 그룹(Momus Ventures Group)의 금두경 사장(30)의 말이다. 금사장은 하버드대 출신으로 루슨트 벤처그룹과 부즈알렌& 해밀턴 등에서 활동했으며 지난 99년에는 국내 개인간 경매 사이트인 와와컴의 CEO로도 활동했다. 금사장이 말하는 ‘전문 경영인’은 단지 선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 대부분 전문 경영인이 뿌리내릴 수밖에 없는 제도적인 장치가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외국계 기업출신 CEO들은 지분 구조에서 국내 CEO들과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와튼스쿨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MBA과정을 밟은 뒤 홍콩 서울 골드만삭스 아시아 투자 분석가로 일한 경험이 있는 헬로아시아 허민영 사장(28)은 “조건은 스톡옵션”이라고 말한다.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한 스톡옵션이 아니라 앞으로의 경영 능력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CEO는 길잡이 … “절대권력 어불성설”따라서 특정 회사에서 ‘절대 권력자’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외국계 CEO들의 불문율. CEO는 의사를 결정하는데 길잡이(guider)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인큐베이팅업체인 소프트뱅크엔플렛폼 마상준(33) 사장은 “CEO의 역할은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일에 대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마사장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후 미국 와튼스쿨에서 MBA를 획득하고 맥킨지, J.P.모건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이들 외국계 CEO들의 공통된 특징은 프리젠테이션의 달인들이라는 것. 실리콘 밸리에서는 프리젠테이션(사업 설명회)에 따라 수천만달러의 자금이 왔다 갔다 한다. 물론 ‘프리젠테이션은 CEO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벤처기업 CEO들의 역량을 가늠하는데 프리젠테이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특히 컨설턴트 출신의 경우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 짧은 시간안에 고객에게 전달, 설득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프리젠테이션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컨설턴트 출신 CEO로는 이코퍼레이션 공동사장으로 영입된 이충노 사장(38, 아더앤더슨)과 링크웨어의 박지열 사장(30, 맥킨지) 등이 꼽힌다.이밖에 아시아웹 염동훈 사장(27)은 MIT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AT커니, 파리바기업파이낸스 등에서 일했고, 한국클릭투아시아 홍영훈 사장(34)은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글과컴퓨터 ISAPI 개발팀장, 네띠앙 서비스 책임자, 클릭투아시아의 미국본사에서 CTO로 일한 경험이 있다.유학이나 외국계 기업에 있다 CEO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러나 한국의 기업환경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특히 학연이나 지연에 얽매이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따라 최근 이들은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지난 6월8일엔 재미교포출신과 투자자 및 한국 기업들과의 모임인 ‘I&I 아시아’가 출범했다. 이와 함께 ‘이그나이트 아시아챌린지(IgniteAsiaChallenge)’, ‘첫번째 화요일(The First Tuesday)’ 등이 있다. 6월27일에는 암참(Armcham·주한미국상공회의소)내에 ‘암참 인터넷 위원회’가 발족했다. 한미간 인터넷 기업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