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굉장한 게임이 많이 나온다. 얼마전 출시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를 보면 어찌나 대단한지, 기술의 진보에 대한 경외감이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같은 첨단의 시대에도 바둑이나 장기같은 케케묵은 게임은 여전히 건재하다.<토이 스토리 designtimesp=19962>라는 디지털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0과1 숫자의 조합에 불과한 가상의 캐릭터들이 진짜 배우와 촬영감독을 몰아낼 것이라는 성급한 견해를 내놓곤 했다.그러나 디지털 영화는 새로 개척된 또 하나의 채널일 뿐이다. 바둑이 아직도 좋은 오락거리인 것처럼 디지털영화는 디지털영화대로, 실사영화는 실사영화대로 각기 제 영역에서 발전해갈 것임이 분명하다. <다이너소어 designtimesp=19965>는 이런 명제에 한 겹의 확신을 더해주는 디지털 애니메이션. 그저 놀라울 따름인 영상과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어우러진(?) 작품이다.공룡 이구아노돈의 부화기. 육식공룡 카노타우르스가 알을 낳은 둥지에 쳐들어온다. 주인공이 될 공룡의 알은 이와중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익룡 프테라노돈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 익룡은 알을 물고는 플로리다 늪지를 지나 베네수엘라 카나이마의 강과 평야를 따라 이동하다가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으로 가는데, 카메라는 익룡의 뒤를 따라다니며 관객에게 속도감과 장엄한 배경을 선사한다. 공룡알이 떨어진 곳은 평화로운 원숭이 서식지. 알에서 깨어난 아기공룡 알라다는 원숭이 무리의 일원으로 자라난다.난데없이 지구에 떨어진 운석이 이 낙원을 짓밟고, 알라다와 원숭이 일가의 모험이 시작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눈이 휘둥그래지는 것은 여기까지다. 이후 새로운 낙원을 찾기 위한 공룡 무리의 여정이 시작되면 이야기는 익숙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선 우리의 주인공은 사랑과 명예를 거머쥐는 것이다. 디즈니식 영웅만들기는 이제 물릴 때도 된 것 같다.6만5천년전 지상에서 자취를 감춘 공룡이 디즈니의 2000년 여름 디지털 대작의 소재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멀게는 <킹콩 designtimesp=19972>에서 가깝게는 <용가리 designtimesp=19973>에 이르기까지, ‘실존하지 않는 거대한 생물’류는 특수 효과에 승부를 거는 영화들이 사랑한 소재. 이제 한층 발달된 디지털 기술은 공룡의 피부결과 씰룩이는 코, 울부짖을 때 부르르 떨리는 목까지 표현하게 됐다.디지털로 창조된 캐릭터와 실제로 촬영한 배경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합성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도 어렵다. 특히 볼만한 것 중의 하나는 바람결에 흩날리는 원숭이의 털이다. ‘원숭이 털 프로그램’을 만드는데만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1백10만개의 디지털 털을 만들고 각각에 일련 번호를 붙여서 컨트롤했다. 예를 들어, 원숭이 머리끝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일련번호 5만9번부터 5만2백번까지의 털을 밝은 색 처리했다는 것. 이야기가 엉성하건 말건, 할리우드 엔지니어들의 장인정신만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