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과 협력업체에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7월12일 저녁 7시 도쿄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도쿄상공회의소 대회의실. 오후 늦게 갑작스럽게 열린 기자회견에서 야마다 교이치 소고백화점 사장이 말문을 열었다. 비감한 표정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정부와 금융기관에 요구했던 6천3백억엔(한화 약7조원)의 채무탕감을 철회하고 민사재생법 적용을 신청한다며 사과의 말을 거듭했다.이로부터 불과 10시간 남짓 후인 13일 아침. 일본 매스컴들은 주먹만한 활자까지 동원해 가며 소고백화점의 몰락을 대서특필했다. 매스컴들은 경제, 사회는 물론 정치면까지 할애하고 ‘부실경영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려다 무너진 기업’ ‘세금 함부로 쓰지 말라는 여론의 압력에 굴복한 소고’ ’강제할복’ 등의 용어를 써가며 몰락과정과 원인을 파헤쳤다.1830년 오사카의 기모노전문점에서 출발한 소고백화점은 1990년대 초반 일본 백화점중 매출랭킹 1위에 올랐던 간판급 유통업체였다. 동남아 일대에 14개의 점포를 열어놓고 있으며 6월말 현재 40개 점포가 영업 중이었다. 연간 매출은 약 1조엔으로 한국의 초대형백화점 대여섯개를 합친 것보다 크다.소고는 그러나 확장 일변도의 차입경영과 장기불황이 몰고온 매출부진에 발목이 잡히면서 환부가 깊어져 왔다. 94년부터 세차례에 걸쳐 단행한 리스트럭처링(사업구조재편)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채 올들어서는 소고가 정치권의 산소호흡기로 연명중이라는 루머가 파다했었다.전문가들은 2차대전 후 무너진 일본기업들중 두번째로 많은 부채(1조8천7백억엔)를 안고 있는 소고의 좌초에 미즈시마 히로오회장(88)의 독선과 욕심이 큰 원인이 됐다고 꼽고 있다. 그는 주위의 의견을 묵살한채 자신의 스타일과 판단만을 고집하며 외형경쟁에서 1등주의로 치닫는 과오를 저질렀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사재를 내놓으라는 금융권의 요구는 묵살하면서도 자신은 어려운 회사에서 매년 3억엔 이상의 돈을 가져 간 파렴치한 인물이었다고 직원들은 고발하고 있다.하지만 소고의 몰락은 정치권이 납세자인 유권자들의 눈을 의식해 등을 돌린 것이 결정적 방아쇠가 됐다. 일본정부는 소고에 2천억엔을 빌려준 신생은행의 채권을 정부기관인 예금보험기구에 인수시키면서 이중 9백70억엔을 포기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여론의 비난이 빗발친데다 집권여당 내부에서도 표를 의식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원을 포기하기로 급선회했다.기자회견장에서 야마다사장은 외부 압력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자민당의 가메이 시즈카 정조회장은 13일 자신이 소고에 자진도산을 촉구했다고 공개해 정치권도 부실기업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음을 입증하고 있다.이코노미스트들은 소고의 도산이야말로 정치권과 기업의 유착관계 및 관치금융을 여론과 납세자가 좌절시킨 케이스로 지적하고 있다. 마키노 노보루 미쓰비시종합연구소 상담역은 “특정기업을 특별히 봐줄 수 있는 시대는 갔다”며 “자민당이 소고를 버리지 않았다면 제2, 제3의 소고가 나올 것”이라고 진단했다.또 버블경제의 후유증을 숨긴채 거액의 부실채무를 안고 있는 건설, 유통부문의 대기업들에 소고사태가 도태의 신호탄이 됐다며 정부와 금융기관들도 더 이상 진실을 은폐할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정치권의 특혜와 정책적 지원 그리고 과거의 명성에 안주하다 무너진 소고백화점.유통거함의 침몰은 이제 일본에서도 정경유착 및 무분별한 정책적 지원이 국민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됐음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