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금융기법으로 틈새시장 파고들어 … 공짜보험 이벤트로 고객 유혹도

대자본과 선진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외국계 보험사들이 속속 국내 시장으로 진입해 보험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보험사들도 올해 매출액을 대폭 늘려 잡고 영업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한국 마켓을 둘러싸고 현재 국내사와 외국사들의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이들의 특징은 국내 보험사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새상품을 개발하고, 막대한 자본을 배경으로 틈새시장을 파고든다는 점.이들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외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것이 국내 시장에선 어떤 마케팅 전략으로 드러날 것인가 하는 점 때문이다.◆ 국내 보험사가 놓치고 있는 곳을 파고든다.지난 6월 유럽계 보험사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사업인가를 받은 로얄 앤드 선얼라이언스. 이 업체는 전세계 56개국에 5만명이 넘는 보험, 자금 관리 전문가를 두고 있으며 세계 10대 손해보험사 가운데 하나인 거물이다. 한국 지사의 자본금은 30억원.그러나 이들이 직접 보험계약으로 맺을 수 있는 물건의 한도는 4천만달러(한화 5백억원)에 달한다. 말하자면 5백억원 이하의 건물이나 선박, 비행기는 모두 영업 타깃이 된다는 것.이는 국내 보험사들이 대부분 1천만달러가 넘어서면 재보험사를 끼고 계약을 하거나, 외국 보험사로 넘겨 커미션을 챙기는 관행과 비교하면 굉장히 공격적인 경영인 셈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 부분의 시장규모는 대략 5천억원대로 추산된다. 국내 보험사들이 자본의 부족으로 리스크를 떠안지 못해 외국으로 흘려보내는 시장이 5천억원이나 된다는 계산이다. 이 틈새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 로얄 앤드 선얼라이언스의 전략인 것이다. 이 업체는 앞으로 한국 시장을 교두보로 일본과 중국을 잇는 영업망을 구축할 계획이다.이 회사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보험뿐 아니라 펀드운용 등 다양한 금융기법을 보험과 접목시키는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것이라는 점 때문. 로얄 앤드 선얼라이언스 이중선 차장은 “한국의 보험시장이 갖고 있는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과감하게 떠안는 다채로운 상품이 개발돼야 한다”며 “국내업체는 보험상품 개발실적이 미비해 우리 상품이 새로운 돌풍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아직은 직원 10여명으로 본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지는 않지만 장차 이 업체가 어떤 마케팅 전략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국내 보험사가 놓치고 있는 곳을 파고든다.국내 손해보험사중 매출액 순위로 꼴찌에 가까웠던 해동화재가 리젠트화재로 다시 태어나 공격적인 영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지난 6월초부터 시작한 온라인 자동차 보험 서비스. “왜 보험료를 8%나 더 내고 차를 타고 다닙니까”라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내면서 인터넷을 통한 자동차 보험 가입영업을 시작했다. 여타 자동차 보험사들이 내놓는 보험료보다 평균 8%가 싼 보험상품을 내놓은 것.결과는 온라인을 통한 신규계약 매출이 리젠트 화재 매출액중 15%가 넘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리젠트화재의 지주회사인 아이리젠트(iRegent) 엄경식 부장은 “불과 두 달도 안됐지만 매일 4~5천명이 자동차 보험 견적을 받아가고 이중 상당수가 바로 계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자동차 보험 매출목표는 2천5백억원으로 지난해 실적(매출 1천2백71억원)의 두배에 이른다. 자동차 보험은 설계사가 필요 없는 단순한 상품이기 때문에 온라인 영업이 성공적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아이리젠트 로빈 윌리 사장은 “앞으로 자동차 보험료의 자율화가 본격화된다면 모범운전자와 난폭한 운전자의 보험료에 차등을 두는 상품을 내놓는 등 다양한 상품으로 소비자들이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리젠트화재의 온라인 영업이 인기를 끌자 경쟁업체에선 “보험료보다는 서비스의 질이 우선 아니냐, 오프라인 서비스가 약해 제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며 꼬집기도 했다. 이에 리젠트화재측은 “곧 5대 광역시를 중심으로 직원들이 기동순찰대가 사용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24시간 돌며 사고지역으로 즉시 투입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또 현재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동시에 영업을 하고 있는 콜센터도 조만간 1백여명으로 두배 이상 인원을 늘릴 계획이다.리젠트화재의 경우 과거 오프라인 영업의 부진이 온라인 영업으로의 전환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인다과거 아메리카 보험사로 불렸던 AIG보험사는 최근 언론매체에 광고를 내보내면서 공격적인 영업을 시도하고 있다. AIG사는 해방직후인 지난 48년부터 국내에서 영업을 해왔지만 시장점유율은 미미했다. 이 회사가 최근 회사명을 바꾸고 광고도 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지금 AIG 생명보험으로 전화만 하면 1억원짜리 급발진 보험이 무료”라는 캠페인으로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면서 가입자 모집에 나섰다. 무료가입 이벤트로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겠다는 것. 이것은 이미지 변신뿐 아니라 무료 가입자들의 신상을 파악, 마케팅 자료로 이용하겠다는 전략이 깔려있다. 이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고객들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효과적인 판매 계획도 세운다는 계획이다.또 고객들에게 매달 보내는 납입 영수증에 이같은 무료 가입 캠페인을 알리는 팸플릿을 끼워넣어 눈길을 끄는 마케팅도 펼쳐나가고 있다. 이는 새 상품을 소개하는 팸플릿에 대한 가독성도 높이고 관심 있는 고객들이 회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할 경우 통화한 내용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할 계획이다.자동차 보험 영업도 강화할 계획이다. 시중 보험료보다 8%가 싼 리젠트화재 상품보다도 2% 더 싼 상품을 내놓을 계획. 이렇게 되면 온라인 자동차 보험시장을 두고 리젠트화재와 일전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AIG사는 이를 위해 콜센터를 구축할 방침이다.이밖에도 국내에 이미 진출한 푸르덴셜이나 ING생명의 마케팅 기법도 눈여겨 볼 것들이다. 이들은 기존 ‘보험 아줌마’로 불렸던 보험모집인 대신 금융 전문가 혹은 파이낸셜 컨설턴트라는 새로운 이미지의 영업인력을 운영하고 있다. 고객들도 대졸자 대기업 직원이나 의사, 변호사 등 전문가들만 상대로 영업을 한다는 점도 기존 국내 보험사들이 놓치고 있었던 시장이었다. 뒤늦게 삼성생명 등 대기업들도 이 분야에 진출하고 있지만 외국사의 공세를 막아내기가 힘들다는 것이 일선 영업사원들의 전언이다.★ 인터뷰 / 로빈윌리 사장로빈윌리 아이리젠트(iRegent) 사장“정부규제 풀리면 파격상품 내놓겠다”아이리젠트는 리젠트 자산운용, 화재(해동화재 인수), 종금(경수종금 인수), 증권(대유리젠트 사명 변경)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금융그룹이다. 이 그룹의 모회사는 영국계 투자금융사인 리젠트퍼시픽. 한국 아이리젠트를 총괄하는 로빈윌리 사장은 리젠트화재의 올해 매출목표를 전년도에 비해 70~100% 높게 잡는 등 공격적인 경영의 지휘봉을 쥐고 있다. 또 올해 말까지 아이리젠트 직원들을 5천명으로 늘리고 연말 나스닥 상장도 계획하는 등 규모 있는 금융그룹으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서대문구 충정로 사옥에서 로빈윌리 사장을 만났다.▶ 리젠트화재는 올해 매출목표를 높게 잡았다. 온라인 자동차 보험시장의 확대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이 많은데.사실 미국의 경우 온라인 자동차 보험시장이 5%밖에 안된다. 늘고 있지 않는 추세다. 그런데 미국은 2천여개의 크고 작은 보험사들이 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어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 영업이 잘 안되는 것이다. 반면 영국의 경우 보험 계약의 50%가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폭발적인 증가다. 한국의 경우는 11개의 손해보험사가 있어 미국보다는 영국 사례가 국내 보험시장의 앞날을 판단하는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리젠트화재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올해 2/4분기 매출액만 30%가 늘었다. 원인은 오프라인 영업과 온라인 영업 양쪽에서 매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보험의 경우 이미 신규계약은 온라인을 통해 성사되는 계약건수가 오프라인에서 성사되는 건수를 앞질렀다. 지금 밝힐 수는 없지만 금융감독원에 신청한 보험상품이 인가가 나는대로 시판할 계획이다.▶ 타 보험사의 보험료보다 8%가 싼데, 더 낮출 계획은 있는가.더 싼 보험상품을 내놓을 것이다. 다만 정부가 위험보험료(Risk Premium, 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에게 보상해주는 금액)를 규제하고 있어 실제 업체들이 낮출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업체 자율에 맡겼으면 한다.▶ 국내 보험시장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아까도 언급했듯이 정부의 규제가 많다. 규제가 혁신적인 보험상품을 개발하는데 방해가 된다. 또 국내 보험사들이 상품은 개발하지 않고 단순히 외국상품이나 동종업계의 상품을 모방하는 행태도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외국계 보험사가 국내시장으로 속속 진출하고 있는데 앞으로 시장은 어떻게 재편될 것으로 보는가.우선은 외국계 보험사들이 국내 보험사와의 제휴나 합병 등을 모색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11개의 손해보험사중 적어도 5개 업체는 외국기업의 파트너십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합병이나 매각의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 것이다. 만일 국내 보험사들이 파트너십을 모색하지 않으면 이들은 직접 국내 시장에 진출할 것이다.▶ 리젠트화재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는가.해외 투자업체에서 투자를 희망하고 있는 곳이 많다. 실제로 최근 리젠트퍼시픽이 8백66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증자를 했다. 우린 이 자금과 추가로 유입될 투자자금을 갖고 국내 금융기관들을 M&A할 생각이다.또 리젠트화재의 지주회사인 아이리젠트가 올해 말 나스닥 상장을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 10월부터는 모든 자회사들의 회계 기준을 미국 회계기준에 맞출 것이다. 투명하고 믿을 만한 금융그룹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