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두자릿수의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저수준의 안정세를 보여온 소비자물가는 하반기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9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3%를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유가 현상이 지속되고 있고 잦은 태풍의 영향으로 농산물가격이 크게 오르는 등 대내외 물가불안 요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상승이 국내 물가에 미치는 파급시차와 지하철요금·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 등을 고려할 때 물가는 당분간 불안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하반기 물가는 상반기의 1.5%보다 높은 3% 안팎의 높은 상승세가 예상된다.하반기 물가 상승 압력은 주로 비용측면에 있다. 지난해 이후 큰 폭으로 오른 국제원유가격이 시차를 두고 석유류, 공공요금, 관련 공산품 가격 등 국내물가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차적으로 국내 석유류 가격 인상에 직접 반영되고 이차적으로 전기료 등 에너지 관련 공공서비스 물가 및 관련 공산품 제조원가 상승을 통해 국내 물가에 파급된다.공공요금도 개인서비스요금 등 여타 물가부문에 대한 파급 효과를 고려할 때 하반기 물가에 가장 큰 복병이다. 그동안 미뤄 왔던 공공요금의 인상이 줄을 잇고 있다. 버스요금, 지하철 요금, 의료보험수가 인상에 이어 전기·가스요금, 상·하수도 요금 등의 인상이 예정돼 있다.그러나 하반기중 물가가 다소 불안해지더라도 과거와 같이 경제전반에 인플레가 확산되면서 경제정책기조를 바꾸어야 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국제원유가격이 미국의 시장개입에 힘입어 30달러 안팎에서 안정되고 있는데다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1, 2차 오일쇼크에 비해 크게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국제유가의 실질가치가 크게 떨어진데다 우리 경제규모가 확대되면서 내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 다소 불안해도 인플레 확산 아니다경제 전체로 볼 때도 아직 총수요 측면에서 물가상승압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제불안 요인이 불거지고 기술적인 반등 효과가 소멸되면서 경기는 조정국면에 들어서고 있어 총수요의 가파른 증가 추세는 뚜렷이 둔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중 미루었던 소비 및 투자수요가 99년중 상당부분 충족돼 추가적으로 수요가 늘어나기 어려운데다 주가약세, 금융시장 불안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측면에서의 인플레압력이 완화되고 있어 비용측면의 인플레 압력을 어느 정도 완충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다.높은 임금상승률도 작년 4/4분기 들어 생산성 증가율을 초과해 하반기 물가상승 압력의 주요인으로 지적돼 왔으나 올 1/4분기 임금상승률이 8.9%대로 대폭 둔화된 반면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이보다 높게 나타나 물가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여전히 많은 실업자수 등 노동시장의 유휴인력이 존재하는 점과 부동산가격의 안정도 물가안정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여름철 주요 물가불안 요인이었던 농산물가격도 가을 출하성수기를 맞아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면서 4/4분기에는 물가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