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빠져든 이래 유행어처럼 자주 쓰이는 말 가운데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란 용어가 있다. 우리말로 번역돼 ‘도덕적 해이’로 더 많이 쓰인다. 원래 모럴 해저드는 보험시장에서 쓰이던 용어였다. 즉 보험가입자가 보험에 들지 않은 상태라면 자신이 볼 큰 손실을 우려해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보험에 가입한 뒤에는 사고에 대한 보상을 보험회사가 해주기 때문에 사고에 대한 주의를 평상시보다 게을리 함으로써 사고발생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는 보험회사는 물론 사회적인 손실을 끼치게 된다. 이같은 행위를 도덕적 해이라고 말한다.흔히 교통사고 종합보험이 있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더 많이 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종합보험을 믿고 교통사고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 함으로써 교통사고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보험에 가입한 운전자들의 도덕적 해이라고 말할 수 있다.그런데 모럴 해저드라는 용어는 요즈음 들어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제도나 관행의 허점을 이용해 경제적 손실을 가중시키는 일체의 행태를 가리키는 말로 확대 통용되고 있다. 예컨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예금보장한도 문제도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근본원인이다.지난 1995년 예금자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 금융기관 예금에 대해서는 그 금융기관이 파산했거나 지급불능 사태에 빠졌을 경우 2천만원까지만 예금보험공사가 대신 지급해주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환위기로 퇴출금융기관이 많이 생기면서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예금을 떼이는 사람들이 많아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몰고 올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2000년 말까지 금융기관예금에 대해서는 원리금 전액을 보장해주는 예외조치를 시행했었다. 그런데 금융기관들이 이 제도를 악용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났다. 즉 턱없이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조건으로 많은 예금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받지 못할 것이 뻔한 부실기업에 거액의 대출을 해주는 등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은행이 부실화돼 파산되더라도 예금보험공사가 책임을 져주기 때문에 방만하게 경영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을 초래한 것이다.이같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나아가서는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예금부분보장 제도를 당초 예정대로 내년부터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당장 부분보장제로 돌아가면 자산상태가 우량한 은행으로 예금이 집중되는 예금 대이동이 나타나 금융시장의 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전액보장제를 연장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 예금부분보장제의 논란이다.뿐만 아니라 공기업들이 명예퇴직 등을 이유로 과도한 퇴직금을 지급한다거나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의 대주주들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회사 돈을 빼돌려 기업은 망하게 하면서도 개인적인 치부를 노리는 행위 등이 요즈음 자주 거론되는 도덕적 해이 현상의 사례들이다. 도덕적 해이는 제도나 관행으로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근절되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