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명단 확보 총력... 초고가ㆍ초대형 주택 증가따라 확산추세

‘배기량 3천cc 이상 자동차 보유자, 종합토지세 납부액 상위 1천명을 찾아라’.올 초 경기도 분당에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분양한 A건설사 분양기획파트 김모 대리는 분양 개시에 앞서 DM(Direct Mail)발송회사 몇 군데와 수 차례 접촉했다. 방대한 개인신상정보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DM회사에 김대리가 ‘찾아달라’며 제시한 조건은 모두 세 가지. 배기량 3천cc이상 자동차를 보유하고 특급호텔 헬스클럽 또는 골프장 회원권을 가지고 있을 것, 그리고 50평 이상 아파트 또는 빌라에 거주할 것. 조건에 맞게 간추려진 사람들은 건설사가 ‘실구매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VIP들이다. 이들에게는 홍보책자와 ‘특별설명회’ 안내문이 미리 배달됐다.60평 이상 대형 아파트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이 이어지면서 건설사들의 분양 경쟁이 치열하다. ‘실구매층 파악하기’는 분양기획 단계에서부터 가장 중요한 ‘화두’로 취급된다. 10억원을 넘는게 예사인 초고가 주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분명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건설사들의 VIP명단 확보 방법은 DM발송회사를 활용하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다.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체 임원, 벤처기업 CEO는 마케팅 0순위. 국세청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종합토지세, 재산세 납부액 상위 랭커를 파악하고 경쟁업체끼리 모델하우스 방문자 명단을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자동차회사를 계열사로 거느린 대기업의 건설사는 대형차 구매고객 명단을 중요한 마케팅 자료로 활용한다. 강남구 압구정동, 청담동 등지의 고급 주택가에 무기명으로 홍보물을 투입하는 것은 ‘고전’에 가깝다.외국인 또는 재외 기업가를 주 타깃으로 삼는 곳도 있다. 서울시 중구 명동 구 상업은행 건물을 호텔식 아파트로 개조하고 있는 SGS컨테크는 11월초 모델하우스 오픈에 앞서 재미기업가, 외국계 기업 임원, 주한 외교사절 등을 대상으로 분양 마케팅을 펴고 있다. 17~46평형 1백21세대가 들어설 이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1천7백만원 선. 이 회사 이재학 과장은 “제휴를 맺은 특급호텔에서 직접 운영, 관리하고 서울 도심에서도 심장부에 위치한 만큼 외국인 ‘게스트 룸(Guest Room)’으로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밝히고 “이미 30% 이상이 청약된 상태”라고 말했다. 주거공간 보다는 외국인들의 국내 거점으로 적합한 만큼 관련 기업, 대사관 등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모델하우스 오픈 전에 VIP에게 분양소식을 ‘아뢰는’ 기법에서 나아가 최근에는 모델하우스 오픈 후에도 관람객을 제한하는 게 유행이다. 한마디로 ‘살 능력이 있는 사람만 보라’는 것. ‘그렇게 비싼 집은 어떻게 생겼나’하며 호기심에 찾아간 보통사람들은 주눅들기 십상이다.대표적인 예가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분양중인 트라움하우스Ⅲ. 내년 6월 입주하는 1백50평, 38가구 규모의 이 빌라는 평당 분양가가 2천6백만원, 한 채 가격이 40억원에 달한다. 이제까지의 분양주택 가운데 최고가다. 시행사인 대신주택 박성찬 사장은 “꼭 살 사람에게만 팔기 위해 예약 관람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이 모델하우스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화로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줘야 한다. 얼마 후 담당직원이 관람시간을 지정, 다시 전화로 알려준다. 지정된 시간에 모델하우스에 방문하면 사장이 직접 안내, 1시간여 동안 모델하우스를 둘러보게 된다. 시끌벅적한 보통 모델하우스를 경험했거나 상상하는 사람에게는 색다른 경험이다.대신주택은 예약 관람제 실시 이전에 이미 절반이 넘는 세대의 계약을 완료했다. 박사장은 “상류사회 범위가 크지 않아 조용히 소문이 났고, 이전에 분양한 트라움하우스Ⅰ·Ⅱ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만 청약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회사가 89년과 95년에 분양한 트라움하우스Ⅰ·Ⅱ도 이러한 귀족마케팅에 힘입어 1백% 분양됐었다.이밖에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로얄팰리스, LG건설의 LG한강빌리지가 ‘일반인’과 ‘VIP’를 구분해 모델하우스를 공개하고 따로 투자설명회를 개최해 화제가 됐다. 10월말 분양을 시작할 예정인 현대산업개발의 초고층 아파트 아이파크도 이러한 VIP마케팅을 펼 예정.업계에서는 이러한 귀족마케팅이 앞으로도 뚜렷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구매층 자체가 VIP 대접을 원하고 있고, 갈수록 차별화 고급화된 주택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 B건설사 오모 과장은 “어떤 계층을 상대로 마케팅을 펴는지는 업체마다 철저한 보안사항”이라고 밝히고 “초고가, 초대형 주택 시장이 성장할수록 VIP를 잡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VIP 위한 주택’ 어떻게 지었나천연 대리석에 면진설계까지24억5천만원, 40억원이라는 가격이 매겨진 집은 어떻게 지었을까. 보통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가격인 만큼 호화주택들은 저마다 ‘최고’를 강조한다. 지난 6월초 분양된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LG한강빌리지 93평형은 현관과 복도, 욕실이 모두 흰색 천연 대리석으로 치장된다. 들어서는 순간 특급호텔 스위트룸에 들어선 느낌을 줄 정도. 두 세대가 독립생활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것은 물론 넓은 야외 정원까지 꾸며져 있다. 웬만한 방 하나 크기의 드레스룸이나 유럽풍 주방가구는 기본. 단지 내부에는 골프, 휘트니스 클럽이 설치돼 있다.LG한강빌리지의 최고가 기록을 깨뜨린 트라움하우스Ⅲ는 국내 최초의 면진(免震)설계방식과 건물 지하의 방공호가 눈길을 끈다. 한 가구당 주차대수도 6대까지 가능토록 했다. 면진설계는 리히터 규모 7 이상의 강진에도 끄떡없도록 일본 ADC사 SDG사 등과 설계기술계약을 체결, 지반의 움직임이 건물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짓고 있다. 또 핵폭탄에도 안전한 방공호를 건물 지하에 설치하는데, 이는 스위스 민방위 규정에 따른 것. 2백명이 2개월 이상 생활할 수 있도록 비상 설비 일체가 갖춰지며 침실, 주방, 독서실도 만들어진다. 트라움하우스의 내부 장식재, 마감재는 모두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기존 고급 아파트와 달리 고풍스런 느낌이 나는 게 특징. ‘엘레강스하면서 리치하고 앤티끄한 분위기’라는 게 시행사인 대신주택측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