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우승 세일로 북적이는 다이에점포“경영자에서 창업자로 돌아가겠습니다. ”일본 최대의 유통그룹인 다이에의 임원진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10일 저녁.은퇴의사를 밝히는 나카우치 이사오(中內 功, 78) 다이에 회장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카우치 회장의 바로 옆 자리에서는 주식 내부자거래 의혹으로 이달 초부터 언론의 몰매를 맞았던 토바 타다시 다이에 사장이 고개를 떨군 채 테이블만을 응시했다.다음날 아침 일본 언론은 다이에의 경영진 교체를 일제히 대서특필하며 나카우치 패밀리의 몰락을 너도 나도 주먹만한 활자로 뽑아댔다.특히 최대 유력지인 아사히신문은 경제면의 절반 이상을 다이에 기사로 채우며 나카우치 회장의 퇴진을 상세히 언급했다.외국인 독자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일본 언론의 이날 보도 자세는 ‘호들갑스럽다’는 느낌까지 줄만큼 요란한 것이었다.하지만 나카우치 회장이 일본 재계에서 차지하는 인물 비중 그리고 뉴스 밸류와 다이에의 기업지명도 등을 감안하면 이날의 뉴스경쟁은 과열이라고 보기 어려웠다.1950년대 이후 일본의 유통업계 역사는 나카우치 회장과 다이에를 빼놓고 이야기를 풀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다이에는 한국에서도 수년 전부터 유통업계의 유행어가 되다시피한 ‘가격파괴’ 돌풍의 주역회사다. 그리고 창업자인 나카우치 회장은 구멍가게에서 출발한 다이에를 일본 유통업계의 무적함대로 키우며 제조업체들이 좌지우지했던 가격지배권을 유통업체들로 뺏어온 ‘제왕’격 인물이다.오사카 출생인 나카우치 회장은 태평양전쟁 당시 사병으로 참전, 필리핀 전선에서 부상을 입은 경험을 갖고 있다. 그후 선대가 운영하던 약품 도매상 ‘사카야약품’에서 장사요령을 터득한 그는 57년 오사카에서 ‘주부의 가게 다이에 약국’이라는 간판을 올리며 유통업에 본격 발을 디뎠다.나카우치 회장의 타고난 상술과 센스는 이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 그는 특유의 박리다매전법으로 주부들의 인기와 성원을 한몸에 받았다. 쇠고기, 채소 등의 신선식품을 그날 그날의 전략상품으로 내걸고 시중가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으로 팔았던 다이에는 소규모 영세상들이 절대다수였던 일본 유통업계에서 쾌조의 초고속 성장 가도를 질주했다.◆ 박리다매전법으로 주부 인기 한몸에대형슈퍼마켓과 양판점 등으로 업태를 파죽지세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다이에는 가전 최대메이커인 마쓰시타전기와 지난 64년 정면 충돌하는 일화를 낳았다.마쓰시타전기가 지나친 저가판매를 막기 위해 일선 대리점에 다이에에 물건을 주지 못하도록 하자 다이에는 이에 반발, 공정거래위원회에 마쓰시타를 제소하기에 이른 것.양측에는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골이 패었고 나카우치 회장이 고(故)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의 장례식에 문상을 왔을 때만 해도 마쓰시타측에서는 ”뭣하러 왔느냐”고 빈정댈 정도였다.71년 일본의 슈퍼마켓업계 최초로 주식을 공개한 다이에는 72년 미쓰코시백화점을 제치고 소매업 매출 랭킹 1위에 올라섰다. 사업다각화에 팔을 걷어붙인 다이에는 75년 편의점 ‘로손’ 1호점을 오픈한데 이어 82년 하와이의 대규모 쇼핑센터를 인수했다. 또 88년에는 프로야구 난카이 호크스(현 다이에 호크스)를 손에 넣으며 기세를 올린 후 90년 나카우치 회장이 일본 재계 최대의 경제단체인 경단련 부회장에 선출되는 영광을 안았다.다이에가 초스피드로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나카우치 회장은 탱크처럼 밀어 붙이는 추진력과 기발한 센스를 무기로 염가상품을 소나기처럼 퍼부으며 소비자들의 갈채를 끌어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소불위의 카리스마를 휘두르며 회사 내부에 자신의 성채를 높이 쌓아 올리고 자신은 황제로 군림해 왔다. 더 나아가 장남 나카우치 쥰씨를 부사장으로까지 끌어 올리는 등 경영권 세습 작업도 진행시켜 왔다.나카우치 회장의 퇴진은 무리한 사업확장과 부채로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는데 대한 자책과 함께 토바 타다시 사장(10일부터 평이사로 강등됨)의 도덕성 시비를 무마시키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나카우치 회장은 또 자신이 물러나면서 아들도 부사장직을 내놓게 해 다이에 그룹에서 나카우치 일가의 그림자는 표면적으로 일단 사라졌다.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던 토바 사장도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라 더 이상 외부의 손가락질을 받을 일도 없어졌다.그러나 일본 언론은 이번 나카우치 회장의 퇴진에 얽힌 배경과 다이에 그룹의 미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매스컴은 토바 타다시 사장이 계열사 주식을 사고 팔아 1천5백만엔의 차익을 챙긴 사실이 최고위층만 아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흘러 나온 점을 주목하고 있다. 계열사 및 보유부동산 매각을 통해 군살빼기를 강력히 추진한 토바 사장과 이에 반대한 그룹 임원진들 사이의 알력이 결국은 토바 사장을 제물로 삼았다는 관측도 적지 않은 상태다.금융기관들은 공인회계사 출신의 재무전문가인 토바 사장이 물러남에 따라 다이에의 부채축소 등 리스트럭처링에 차질이 생길 경우 그룹 자체가 좌초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토바 사장이 계열사인 편의점업체 ‘로손’을 지난 8월 기업공개하고 부동산을 매각하는등의 방법으로 최근 1년간 부채를 1조엔이나 줄이는 수완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소매업 왕좌, ‘세븐 일레븐’에 내주는 불운이같은 내부적 고민 못지 않게 다이에는 최근 매출이 부진해지면서 28년간 지켜온 소매업의 왕좌를 편의점업체 ‘세븐 일레븐’에 내주는 불운까지 겹쳤다.다이에는 지난 3~8월까지의 반기 결산에서 매출이 작년 동기보다 9. 6%나 감소한 9천9백50억엔에 그쳐 1조4백65억엔을 올린 세븐 일레븐에 추월당했다.세븐 일레븐은 다이에와 숙적 관계인 이토요카도그룹의 간판기업이다. 또 다이에와 이토요카도는 일본 열도 전역에서 물고 물리는 고객확보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따라서 소매업 정상에 오른후 단 한번도 다른 업체의 도전을 허용하지 않았던 다이에로서는 회장, 사장의 동반 퇴진과 함께 라이벌에 일격을 맞는 내우외환의 고통을 겪게 된 셈이다.다이에의 임원진은 상품력 강화 및 매장 리뉴얼 그리고 사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등을 통해 이미지 쇄신과 매출증대에 총력을 쏟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하지만 최고고문으로 물러 앉는 나카우치 회장을 비롯, 의사결정권을 쥔 핵심인물이 한꺼번에 퇴진함에 따라 그룹 전체가 리더십 부재의 진공상태를 피할 수 없게 됐다.일반상품 값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염가의 PB(자체상표)상품을 무차별로 퍼부으며 숱한 일화를 남긴 나카우치 회장.일본의 물가를 2000년대 초까지는 90년대의 절반으로 떨어뜨리겠다던 그의 호언은 이번 퇴진을 계기로 일단 실현 가능성이 한층 멀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