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홍보서 탈피 전담부서 운영, 경영활동 전반·국가적 위기까지 전략적 파트너 역할 수행

문화마케팅은 가치를 높여주는 전략이다.요즘 국내 PR대행사에 생소한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위기관리, 지역화 프로젝트, 문화마케팅 등 주로 외국계 PR대행사에서 사용하던 말이 이젠 국내 PR대행사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협하는 요인에 사전에 대응한다는 ‘위기관리’, 단순한 상품 홍보보다는 기업의 브랜드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외국기업의 ‘지역화 프로젝트’ 그리고 의미 있는 문화운동을 기업이 지원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업가치를 높여 가는 ‘문화마케팅’ 등은 예전 PR대행사에서 주력하던 사업이 아니었다.그러나 국내에 진출하려는 외국계 회사뿐 아니라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국내 기업들이 전문 PR대행사를 통해 이같은 전략을 요구하자 PR대행사들이 이 분야를 전담하는 특정 부서를 만들고 전문가들을 영업하며 체질개선에 나선 것이다. 말하자면 시장의 요구가 PR대행사의 업무영역을 점점 다각화하고 전문화한 셈이다.위기관리의 경우 실제 에너지, 통신, 가스 등 사고의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는 기업들이 PR대행사에 관련 프로젝트를 의뢰한다. 최근 PR대행사인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한전 산하단체인 원자력환경기술원의 요청으로 위기관리 매뉴얼을 제작했다. 원자력환경기술원은 핵 폐기물 부지를 선정하는데 따르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나 폐기물 유출 등 가상의 위기에 대한 대응방안을 요청했던 것.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우선 이 분야를 전담할 T/F팀을 조직하고 전문적인 지식은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위기관리 매뉴얼 작업과 병행,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핵 폐기물 부지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위험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프랑스 등 선진국들의 사례를 TV를 통해 보여주면서 사전 홍보에 나섰다. 이후 4개월에 걸친 기간 동안 폐기물 부지선정과 누출사고에 따른 대처요령을 2백여 페이지 분량의 매뉴얼로 묶어 납품했다. 여기엔 각종 위기상황에 대한 예측, 대응방안은 물론 주요 언론계 담당자의 전화번호까지 상세히 기입돼 있다. 이 회사 김경해 사장은 “앞으로 위기관리 전문조직을 신설하고 외부 전문가도 영입해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위기관리는 사실 PR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외국 PR대행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업의 위기관리 분야에 주력해 상당한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금도 대표적으로 PR맨들에게 회자되는 위기관리의 전형은 지난 90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가 홍보대행사를 이용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다. 당시 쿠웨이트 정부는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 쿠웨이트를 대신해서 싸워줄 다국적군의 참전이 필요했다. 쿠웨이트 정부는 이 일을 위해 힐앤놀튼(Hill & Knowlton)이라는 PR대행사에 거금 6백만달러를 주며 미군을 전쟁터로 끌어들일 묘안을 요청했다.전문가 영입 체질개선 러시힐앤놀튼은 우선 심층집단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를 통해 미군을 참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 수집에 나섰다. 그 결과, 이라크 군인들의 잔학성을 부각시키면 미국이 참전할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 전략을 어떻게 실행시킬지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미국에 일명 ‘나이라(Nayirah)사건’이 터진다. 쿠웨이트에서 온 15세 소녀 나이라는 미국내 한 지역 언론을 통해 “이라크 군인들이 쿠웨이트의 한 병원을 습격, 영아들이 누워 있는 인큐베이터 4백여개를 길거리에 내동댕이쳤다”는 증언을 한 것이다.이에 힌트를 얻은 힐앤놀튼은 나이라를 상원인권청문회에 증인으로 세웠고, 그녀가 증언한 내용은 미 전역에 전파돼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결국 당시 부시 대통령은 미군의 참전을 결정했고, 쿠웨이트는 바라던 다국적군을 자국 내로 끌어들였다. 이 사건은 당시 나이라가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로 밝혀지면서 증언의 사실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지만, 힐앤놀튼은 쿠웨이트의 위기관리 프로젝트에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다.외국계 기업 현지화 마케팅 시장도 파고들어위기관리뿐 아니라 국내 PR대행사는 국내에 진출하려는 외국계 기업의 현지화 마케팅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지난 10월 PR대행사인 뉴스커뮤니케이션즈는 알리안츠가 제일생명을 인수하면서 이름을 바꾼 알리안츠제일생명의 의뢰를 받아 ‘올해를 빛낸 한국인 상’이라는 캠페인을 펼쳤다. 올해 한국의 발전에 주목할 만한 공헌을 한 인물을 선정하는 이 캠페인은 알리안츠제일생명의 홈페이지를 통해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최종 대상자에겐 2억원, 후보자 2명에겐 각각 5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추천한 사람에게도 총 4억4천만원의 경품이 주어지는 국내 최대규모의 행사. 오는 12월20일 최종 선정자가 발표될 이 행사는 알리안츠제일생명의 브랜드 알리기와 현지화 마케팅의 일환으로 시행됐다. 올해를 빛낸 한국인을 선정하면서 유명세를 같이 탄다는 전략.뉴스커뮤니케이션즈는 다국적 기업이 국내 기업을 인수해 혹 점령자로 비춰질 우려를 이같은 캠페인을 통해 불식시키고 새로운 기업이름도 함께 알린다는 계획으로 직접 이같은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뉴스커뮤니케이션즈의 박수환 사장은 “외국기업의 현지화 전략을 돕기 위해 인력과 조직을 전문화하고 있다”고 말했다.특정 지역주민과 연계해 문화운동을 벌이면서 기업의 가치를 높여가는 문화 마케팅은 PR대행사의 또 다른 주력 분야. PR대행사 인컴기획은 지난 9월 한국EMC의 의뢰를 받아 청주시민단체와 함께 ‘직지찾기운동’을 기획했다. 스토리지 제조판매 업체인 한국EMC는 인컴기획의 고객사. 다국적 기업 EMC의 한국법인이고, 판매하는 제품이 컴퓨터 스토리지 분야에 집중돼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EMC는 이같은 약점을 극복할 필요가 있었다.이에 인컴기획은 지난 96년부터 청주시민회가 직지찾기운동본부를 설립, ‘직지심체요절’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 한국EMC와 연결시켰다. 직지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발견되지 못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형편. 문화,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직지 찾기 운동’을 한국EMC가 벌여나갈 경우,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인컴기획 손용석 사장은 “단순한 언론 PR대행만으로는 인건비 장사밖에는 안된다. 기업이 손쉽게 얻을 수 없는 무형의 가치를 창조하는 마케터로 PR대행사가 변해야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김경해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사장“돌발상황 대비, 매뉴얼 만들어야”김경해(53) 사장은 코리아헤럴드 기자를 하다가 지난 87년 PR대행사인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창업해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특히 위기관리 분야에 관심이 많아 최근 국내에선 처음으로 원자력환경기술원에 ‘위기관리 매뉴얼’을 납품했으며, <효과적인 위기관리 designtimesp=20400>라는 책도 11월중 펴낼 계획이다.▶ 위기관리란 무엇인가.국내엔 위기관리에 대해 잘못 알려져 있다. 보통 사건이 터졌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위기관리로 알고 있지만, 예상되는 위기에 대해 사전에 대응하는 방법을 짜놓는 것이 진짜 위기관리다. 최근 PR에서 각광받는 분야가 됐다.▶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위기관리는 세 가지 분야로 나뉜다. 첫째는 문화차이에 따른 위기관리다. 우린 보통 문화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전자사업체 직원이 바이어를 물색하기 위해 태국에 갔다고 가정해 보자. 이 직원은 미리 약속해놓은 태국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 집을 방문한다. 가족들과 인사하면서 이 직원은 바이어의 아들에게도 따뜻함을 표시하기 위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기겁을 하면서 놀란다. 왜냐하면 태국에선 머리를 쓰다듬으면 지옥에 가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고유한 문화적 관습을 몰라서 생긴 위기상황인 셈이다. 각국의 독특한 문화관습을 사전에 체크해 두는 것이 이 분야의 위기관리다.둘째는 유언비어나 루머를 들 수 있다.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뜻하지 않는 악성 루머가 기업의 이미지를 먹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한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마지막으로 형질변경(Tampering)이라는 분야가 있다. 예를 들면,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범인이 맥주 캔에 생쥐를 넣어두고는 이를 은폐, 회사측의 잘못으로 생쥐가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당황한 회사는 적절한 대응방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사태는 점점 회사쪽에 불리해진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하는 첫 단추가 위기관리 매뉴얼을 사전에 만드는 일이다.▶ 외국기업들은 PR대행사에 어떤 위기관리 매뉴얼을 요구하는가.주로 노사분규에 대처하는 방법을 요구한다. 이 분야에 걱정이 많은 탓이다. 국내 기업중에도 최근 위기관리에 관심을 쏟는 기업이 늘고 있다. 에너지, 가스, 통신 업체들이 폭발, 가스누출 등 위험에 노출될 경우를 대비해 어떤 대책을 갖춰야 할지 물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