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인도 하락, 수주경쟁 연거푸 고배 … 선진업체 제휴로 살길 모색해야, 정부 지원도 절실

세계 각국의 공사현장에서 건설한국의 주가를 한껏 높였던 업체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해외건설 IMF위기 극복’. 지난해 12월 건교부에서 나온 자료다. 수주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수주지역의 편중에서 벗어났고 공정도 플랜트수주가 늘어났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를 토대로 2000년에는 1백억달러 이상을 수주하기 위해 지원을 다하겠다는 내용도 붙었다.하지만 1년도 채 안된 지금, 정반대의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공사현장에서 건설한국의 주가를 한껏 높였던 업체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수주경쟁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거나 따놓은 공사마저 반납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IMF구제금융시기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최악’이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이러한 사정은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 10월말 현재 국내 건설업체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공사금액은 모두 93건 38억5천9백만달러규모. 지난해 같은 기간의 90건 73억3천1백만달러의 절반을 겨우 넘어서는 수준이다. 때문에 올해 해외건설 실적도 대폭 줄어든 60억∼70억달러선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해의 70%에 불과한 실적이다.말레이시아 K.L.C.C.실적 상위 10개 업체중 4개사가 ‘고장상태’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한축을 담당하며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던 해외건설이 이처럼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거론된다. 우선 세계 건설시장의 변화다. 동남아 중동 등에서 일정 기술과 시공능력을 갖춘 해당국가의 건설업체들이 자국내 발주공사를 차지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인도네시아 태국 등 국내 건설업체들이 많이 진출한 곳의 현지 건설업체도 30층정도의 건물을 올릴 능력을 갖추었다. 그들은 임금 등 코스트면에서 우리보다 유리하다. 당연히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의)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해외건설협회 관계자의 말이다.치열한 수주경쟁도 커다란 장애물이다.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수주전에 나서고 있으며, 중국 등 개도국들도 저임을 무기로 경쟁적으로 수주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리비아 대수로 3단계공사를 따내기 위해 공사대금을 원유로 받겠다는 말을 꺼낼 정도로 중동건설시장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건설산업연구원 김민형 연구위원의 말이다. 게다가 고도의 기술력이 필수적인 엔지니어링과 같은 분야에서는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선진건설업체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위아래로 둘러싸여 경쟁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점들은 어디까지나 외부적인 요인이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해외건설업체들이나 금융기관 등 ‘우리 내부의 문제’들이 주요 원인이라는 시각이다. 해외건설협회의 한 관계자는 “해외건설시장이 호전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해외건설업체들만 유독 위기에 처한 것은 업체들의 경영난에 따른 신인도 하락과 해외진출시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보증 등 금융문제가 컸다”고 말했다.아닌게 아니라 10월 말 현재 1백대 건설업체 가운데 39개사가 관리대상업체로 지정된 상태다. 게다가 해외건설수주의 50% 이상을 차지해온 현대건설이 유동성위기로 비틀거리고 있으며, 해외건설 수주실적 상위 10개 업체 가운데 4개업체가 법정관리 워크아웃 화의 등 비정상적인 경영상태다. 이처럼 국내 건설업체들이 경영난에 처하면서 세계 건설시장에서의 신인도가 하락, 중동의 한 국가에서는 조사단을 파견해 국내 건설업체들의 실상을 파악하기도 했다.신인도가 떨어지면서 아예 사전심사에서 탈락하거나, 최저가로 낙찰받은 공사에 대해서도 정부나 금융기관의 추가보증을 요구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 현대건설이 4억2천만달러짜리 대만 LNG기지공사와 5천만달러규모의 필리핀 열병합발전소건설에서, 대우가 5억5천만달러짜리 싱가포르 LRT프로젝트의 사전자격심사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입찰장 문턱을 넘어서지도 못하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지난 8월에는 현대건설이 쿠웨이트에서 수주한 4억2천만달러짜리 정유공장 부두공사와 대우가 나이지리아에서 수주한 3억1천만달러 규모의 정유공장건설 등에 대해 현지 발주처가 추가보증을 요구해 건교부 장관이 서신을 보내기까지 했다.신인도하락으로 신규수주가 어려워진 것은 물론 이미 수주한 공사에 대해서도 발주처에서 공사중단을 요구하는 일마저 나타나고 있다. 세계 1백대 건설업체에 꼽힐 정도로 플랜트분야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신화건설은 최근 경영난과 정부의 청산결정이 알려지면서 사우디 이란 쿠웨이트 카타르 등에서 공사중단을 요구, 총 2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포기해야 했다.업계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금융지원도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 해외건설수주와 공사에 있어 입찰보증·이행보증·선수금보증·유보금보증 등 각종 보증이 필수. 그러나 국내업체들의 신인도하락으로 외국은행들이 보증을 않는데다, 국내은행들도 구조조정의 와중이어서 보증을 꺼리는 형편이다. “신규수주를 하지말라는 금융기관도 있을 정도”라는 것이 한 건설업체 해외영업 담당자의 말이다. 때문에 금융기관의 보증을 확보하지 못한 건설업체들이 수주에 실패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현대건설이 아랍에미리트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등에서, 대우가 방글라데시에서, 극동건설이 베트남에서 각각 보증을 확보하지 못해 수주에 실패했다.정부의지가 관건, 제휴로 활로 모색해야이처럼 현재 해외건설업체들이 고전을 면치못하지만 나름대로 활로를 찾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의 배재성 책임연구원은 “단기간에 신인도회복이나 선진기술확보를 통한 경쟁력확보가 어려운 만큼 외국 선진업체들과의 전략적 제휴나 기술제휴 등을 통해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제껏 등한시했던 엔지니어링 분야의 기술력 확보나 CM과 같은 선진건설능력 확보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건설산업연구원 김민형 연구위원도 “단기적으로는 전략적 제휴를, 장기적으로는 프로덕트별 전문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구위원은 또 “이제껏 정부지원안은 실효성이 적었다”며 “수출보험공사 산업은행 등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적극적인 지원책을 써서라도 해외건설을 살린다는 정책의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금융기관들도 프로젝트파이낸싱 등을 통한 지원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건설협회의 한 관계자는 “수익성이 검증된 프로젝트에 한해 프로젝트를 별도계좌나 별도법인화해 보증·지원해주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