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기업매물, 대거 외국 자본에 넘어가 … 리츠 등 활용, 부동산유동화 방안 모색해야

“외국인 투자자들의 제스처에 따라 울고 웃는 게 우리 주식시장입니다. 부동산시장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미 4대문안 주요 빌딩들이 외국인 재산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향후 도심 오피스빌딩 임대료 상승이나 국부유출과 같은 여파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K리츠 대표)“부동산 개념이 소유에서 운용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사옥을 매각한 후 그 자금으로 유동성을 높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성공적인 부동산 운용이죠. 불황기에 기업 매물을 일본자본에 대거 매각함으로서 경제흐름을 다잡았던 미국의 예를 기억해야 합니다.”(B컨설팅사 상무)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을 노린 외국인 투자펀드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부동산업계 반응이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97년 말 외환위기 때부터 매각이 거론돼 온 대형 기업매물이 올해 들어 대거 외국 투자자본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올해 7월부터 3개월 동안 외국인이 사들인 국내 토지는 7백5건, 2백30만평 규모. 금액으로는 1조7천5백억원이 넘는다. 이로써외국인의 총 토지보유면적은 여의도의 36배인 3천1백44만평에 달하게 됐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 토지 보유 실적에서 보듯 한국 부동산시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특히 서울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중구, 종로구 일대 대형 빌딩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은 상당하다. 부도 기업이 많은 지방공단이나 유통업체가 진출할 수 있는 대형 상가나 상업용지도 마찬가지. 외국인 투자자의 부동산시장 유입은 외환 보유고를 높이고 국내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투기’에 다름아니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정부나 기업이 외국인 투자펀드를 지나치게 ‘배려’한다는 지적도 있다.4대문내 대형빌딩 대거 매입올해 들어 외국인에게 넘어간 서울소재 대형 빌딩은 모두 7건. 이 가운데 6건이 중구, 종로구 등 강북 도심에 위치해 있다. 이는 구조조정 중인 기업의 사옥이 강북에 많이 모여 있고 강남에 비해 투자수익률이 높게 산출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법정관리 중인 극동건설은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낙원빌딩과 연지동 은석빌딩을 최근 네덜란드계 로담코, 미국계 모건스탠리·골드만삭스에 각각 넘겼다. 로담코는 낙원상가 옆에 짓고 있는 낙원빌딩을 지상 24층 규모의 외국인 임대 아파트로 개발한다는 계획.올해들어 부쩍 한국 부동산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건스탠리는 최근 극동건설의 은석빌딩과 서울도시개발공사가 사무실용으로 지은 사직동 하누리빌딩을 사들였다. 또 11월엔 신문로변에 위치한 금호그룹 신사옥을 1천5백억원에 사들여 금호그룹에 재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중구 회현동 아시아나빌딩을 싱가포르투자청에 매각한 금호그룹으로선 ‘집없는 신세’가 된 셈. 모건스탠리는 자회사인 커니 글로벌을 한국 부동산 투자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지난 84년 착공해 15년 동안 주인이 수차례 바뀐 끝에 최첨단 빌딩으로 완공됐지만 수요가 없어 ‘도심의 흉물’이란 소리까지 들어야 했던 무교동의 파이낸스센터는 지난 6월 싱가포르투자청이 4천5백50억원에 매입했다. 싱가포르투자청은 올초 송파구 신천동의 한라시그마타워를 부분매입하는 등 1년 사이 총 5천3백80억원을 한국 부동산에 쏟아 부었다.이밖에 지난해에는 여의도 고려증권빌딩이 휴렛팩커드로 넘어갔으며 강남구 역삼동 현대중공업 사옥은 로담코에 매각돼 로담코타워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또 98년 4월에는 볼보트럭코리아가 경매를 통해 한남동 한남체인빌딩을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받은 바 있다.‘외국계 매입 예정’ 수두룩부동산업계에서는 올해를 기점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부동산 매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뱅크 designtimesp=20432>가 지난 98년6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 기업들이 매각 의뢰한 대형 매물은 9백10건, 금액으로는 20조원 규모였다. 2년여가 지난 현재까지 기업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고 최근 경기가 다시 얼어붙은 것을 감안하면, 지금껏 ‘대기’ 상태로 남아 있는 매물이 상당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다 11·3 퇴출기업 발표에서 거론된 기업들의 부동산이 헐값에 쏟아질 것으로 예상돼 외국인 투자자들의 부동산사냥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최근 매각이 거론되고 있는 기업 매물은 벽산의 대형 빌딩 3건과 KTB네트워크의 여의도사옥, 극동건설의 충무로 사옥, 현대산업개발의 역삼동 I 타워, 신사동 현대시티탑 등이다. 이 가운데 서울역 앞에 위치한 벽산125빌딩은 미국의 투자펀드 론스타어드바이저가 매입을 검토하고 있다.국내 부동산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미국계 존스랭라살은 초대형 첨단빌딩인 역삼동 I 타워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금액은 사상 최고수준인 1조원 선. 이밖에 한편 코스트코홀세일, 까르푸, 월마트 등 외국계 유통사들의 부동산 매입도 상당한 규모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최대 소매업체인 월마트는 뉴코아 킴스클럽 매장 인수에 관심을 두고 있고, 프랑스계 까르푸는 부산, 광주 등 지방도시에 18곳의 부지를 확보하는 한편 추가 매입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코스트코 돈 버딕사장은 “부동산 자산 입수가 우선 목표이며 서울을 중심으로 한 매장 확대에 경영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국내 소화 방안 연구해야”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기업개선용 자금이 필요한 기업 입장에선 ‘큰손’을 잡는 것이 시급하고, 외국계 투자펀드들은 국내 주요지역의 부동산을 호조건에 매입하길 원하기 때문. 홍콩이나 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동산가격이 싸고 임대 및 투자수익률이 높다는게 구미를 당기는 요소다.또한 아파트 등 주거용 부동산 가격이 외환위기 이전으로 회복된데 반해 빌딩 등 대형매물은 매수세가 약해 여전히 ‘저점’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지난해부터 경기 회복세 속에 빌딩 공실률이 줄어든 것은 한국시장을 낙관하게 만든 요인이다.그러나 외국인 투자자와 국내 기업의 거래 행태에 대해 비난도 적지 않다. 외국인 투자펀드들은 국내시장에서 장기적 시각으로 투자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노리는 것은 매매차익이라는 것. ‘펀드’의 속성상 장기 투자는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헐값’에 매입했다 가격을 올려 국내 기업에 다시 되파는 최악의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실제로 한 외국계 투자펀드는 98년 부도기업의 지방 공장을 설비까지 통째 경매로 인수했다가 최근 국내 기업에 되팔았다. 또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매수세가 주가지수를 좌우하듯, 외국계 소유 빌딩이 늘어날수록 국내 오피스 임대료 수준이 이들에 의해 휘둘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매각 대상 부동산을 유동화시킬 방안을 찾는 게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코리츠 김우진 대표는 “구조조정 중인 기업은 ABS를 발행해 자산을 유동화시키거나 내년 시행 예정인 리츠를 적극 활용, 투자자들이 공동구매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또 “신뢰도 하락을 우려해 물밑에서 외국계 투자펀드에 헐값 매각하는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국계 중개 컨설팅사 ‘특수’매입·매도 종합컨설팅 서비스 제공대형 부동산 거래는 단순 중개업무가 아니다. 거래 금액과 클라이언트 수준이 다른 만큼 격이 다른 중개 컨설팅을 필요로 한다. 국내 부동산에 대한 외국 투자펀드의 관심이 높아진 것과 더불어 이들의 거래를 책임지는 중개 컨설팅업체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대형 부동산 중개시장은 외국계 컨설팅사가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히는 BHP코리아가 대표적. 싱가포르투자청, 네덜란드계 로담코, 미국 론스타 등 쟁쟁한 투자펀드를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94년 국내 최초의 부동산 분야 외국합작법인으로 설립돼 ‘한국시장을 잘 안다’는 것이 최대 무기다.최근 모건스탠리의 자회사로 탈바꿈한 커니글로벌은 존벅컴퍼니, 커니벅코리아의 후신(後身)이다. 이 회사 피에트로 도란 고문은 91년부터 국내에서 활동, ‘한국 부동산시장을 가장 잘 아는 외국인’으로 꼽힌다. 최근 종로구 연지동의 극동건설 은석빌딩, 사직동의 하누리빌딩, 도렴동의 금호그룹 사옥 매입을 성사시켜 주목을 받았다.지난해부터는 세계 3대 부동산컨설팅그룹으로 꼽히는 미국계 존스랭라살(JLL), CB리처드앨리스, 쿠시맨앤웨이크필드의 시장 진입이 본격화됐다. 이들은 선진 컨설팅기법과 브랜드 파워를 무기로 국내 시장 개척을 서두르는 상태. ‘국내시장 이해 부족’이라는 지적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 부동산 개발·투자 분야 경력자를 대거 영입하고 있다. 존스랭라살은 최근 삼성에버랜드 자산운용팀장 출신인 김영곤씨를 지사장으로 영입, 화제가 되기도 했다.이들 컨설팅사들은 부동산 매각이 필요한 국내업체와 한국 부동산에 투자를 원하는 외국인 투자자를 서로 엮어주는 한편, 매입·매각 최적 타이밍과 가격, 매각기법 등에 대한 종합 컨설팅을 수행한다. 매입후 해당 부동산을 어떻게 개발·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컨설팅은 기본. 클라이언트에 대한 비밀유지 의무를 계약서에 명시할 만큼 철저하게 비밀리에 작업하는 것도 특징이다.컨설팅 내용이 간단치 않은 만큼 이들이 받는 수수료도 상당하다. 개별 프로젝트에 따라 수수료율이 달리 적용되지만 통상 총 거래금액의 1~3%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백억원 규모 빌딩 거래를 성사시킨다면 최고 15억원의 수수료를 받는 셈. 기존 ‘부동산 중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고부가가치사업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