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중공업은 전문경영인체제 유지 … 계열사 뿔뿔이 생존모색 몸부림

현대는 자동차 건설 전자 중공업 등 4개 기업군으로 나누어져 제갈길을 걷게 된다.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사진)은 건설군을 직접 챙길 것으로 보인다.현대그룹의 핵분열이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현대전자는 11월23일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총 3조5천1백90억원의 자금조달계획을 밝히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현대 계열사 지분을 매각, 계열분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현대전자는 현대와의 계열분리를 상징적으로 선언하기 위해 사명 변경까지 고려하고 새로운 대주주와 외국인 주주들이 추천하는 반도체 분야의 전문경영인들을 이사로 영입, 이사회를 확대키로 했다.현대·기아차, 내년 한 회사로 통합될 듯이는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지난 20일 현대전자의 계열분리를 당초 2003년에서 내년 상반기로 앞당기겠다고 밝힌지 불과 3일만에 나온 것이다. 정 이사회 회장은 같은날 “2002년6월까지로 되어 있는 현대중공업의 분리도 내년 말까지 끝내겠다”고 확언했었다.이럴 경우 현대는 지난 8월 분리된 자동차를 포함, 건설 전자 중공업 등 4개 기업군으로 나누어져 제갈길을 걷게 된다.이들 기업군의 경영방식은 자동차와 건설의 경우 정씨 패밀리들이 직접 챙기고 전자와 중공업의 경우는 전문경영인이 맡아 운영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자동차기업군은 이미 정몽구 현대 기아자동차 회장이 맡아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회장은 최근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통합작업을 벌여 내년 상반기중 자동차회사를 하나로 만들어 그 안에 현대 디비전(Division)과 기아 디비전으로 둔다는 계획이다. 현대와 기아는 이미 연구소, 기획실, 구매본부, 수출부문 등에서 통합작업을 끝냈고 현재 재경·생산·판매부문의 통합작업에 들어갔다.건설군은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직접 챙길 것으로 보인다.정 이사회 회장은 지난 11월20일 정주영 전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채 1천7백억원을 전액 출자전환하고 보유중인 현대자동차 주식 2.7%는 자동차기업군에서 사도록 해 매각대금 약 9백억원을 현대건설에 출자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 이사회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매각 가능한 계열사 주식을 인베스트먼트 뱅크에 매각을 의뢰, 퇴직금을 포함한 4백억원을 올해중 현대건설에 출자키로 했다.이렇게 되면 현대건설에 대한 ‘정 전명예회장-정 이사회 회장 부자’의 지분은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 채권단조차도 최근 들어 정 이사회 회장에게 현대로의 복귀를 종용하고 있는 상태다. 때문에 현대 관계자들은 “정 이사회 회장이 사실상 현대건설 경영에 복귀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다만 이를 대외에 공표하는 선언만 남았을 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 이사회 회장은 현대건설만 중점적으로 맡아 부친의 숙원사업인 대북사업 완성에 치중할 것으로 관측된다.현대의 핵분열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택한 현대전자와 현대중공업. 이중 최근 전문경영인체제를 선언한 현대전자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정몽헌 회장 경영일선 복귀 ‘시간문제’현대전자는 11월23일 계열분리 선언을 하면서 당분간 전문경영인인 박종섭(53) 사장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사장은 연세대-시카고대를 나와 시티은행, 전국경제인연합회를 거쳐 지난 83년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그후 박 사장은 기획실장, 부사장, 미국현지법인 회장을 거쳐 지난 3월 사장으로 취임했다. 정 이사회 회장과 연세대 동문인 박 사장은 정 전명예회장의 돈독한 신임과 총애를 받는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박 사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근무 시절 정 전명예회장의 통역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 정 전명예회장에 의해 현대로 발탁됐다. 박 사장은 정 전명예회장의 비서를 지낸 이병규 금강개발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현대 관계자는 “박 사장은 전형적인 영국 신사이지만 경영에서만큼은 누구 못지 않은 추진력과 열의를 보이고 있다”며 “박 사장은 다른 가신그룹들과 차원을 달리 해 전문경영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일찌감치 전문경영인체제를 지속시켜온 현대중공업은 계열분리되더라도 ‘기존 경영방식과 크게 달라질게 없다’는 반응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김형벽 회장과 조충휘 사장이 그동안 손발을 잘 맞춰오고 있다”며 “김 회장은 원로로서 경영전반에 자문만 맡고 있고 사실상 경영은 조선업계 대부인 조 사장이 도맡아 운영, 분리되더라도 이같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전했다.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왼쪽 세번째)은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 designtimesp=20439>라는 자서전을 내놓으면서 자동차를 진두지휘하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자서전 출간‘포니 정’ 32년 추억 새록새록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11월23일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 모인 귀빈들에게 ‘건설 맨’이 아닌 ‘포니 정’으로 나타났다. 정 명예회장은 이날 그가 현대자동차에서 보낸 32년을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 designtimesp=20446>라는 제목의 자서전으로 내놓으면서 다시 자동차를 진두지휘하던 시절로 되돌아갔다.이 자리엔 정 명예회장의 형인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일찍 나와 정 명예회장의 옛시절을 담은 사진들을 둘러보며 추억에 잠기는 등 따뜻한 형제애를 보였다. 정 명예회장의 형제인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과 정상영 KCC명예회장도 참석, 정 명예회장의 노고를 위로했다.정 명예회장의 조카인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도 자리를 함께 했다. 하지만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건강 및 중국출장 등 이유로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이번에 출간된 정 명예회장의 자서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자동차에 얽힌 숨겨진 일화들이다. 정 명예회장은 자서전 끝 부분에 현대자동차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막후이야기를 비교적 소상하게 털어놓았다.정 명예회장은 ‘지난해 3월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에게 불려가 “몽구에게 자동차 회사를 넘겨줘라”라는 말 한마디에 현대자동차를 떠나야 했다’고 회고했다. 또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을 떠나면서 큰 형님에게 현대그룹 고문으로 있게 해달라는 것과 계동 본사사무실을 그대로 쓰게 해 달라는 것, 현대자동차에서 나오는 제일 좋은 신차를 매번 달라는 것을 요청했지만 마지막 요구만 받아들여졌다’고 아쉬워했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기면서 M&A에 대처할 수 있도록 보너스를 큰 형님에게 요구, 승낙을 얻어냈으나 아직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정 명예회장은 이밖에 신군부시절 자동차사업을 접을 뻔했던 비화 등 지난 정권과의 알려지지 않은 갈등 내막도 자서전 중간에 소개했다.정 명예회장은 지난해 초 탈고한 자서전 원고에 대북사업 등에 얽힌 얘기 등 다수의 비화들을 실었으나 최근 책을 내면서 부담스런 내용들을 삭제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