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사는 자영업자들이 영업을 끝낸 심야나 장사에 들어가기 전인 새벽시간에 매장을 찾게 만듦으로써 이들의 지갑을털어내고 있다. 심야시간대 공략에 나선 후 하나마사의 매출은 점포마다 평균 종전대비 30~40%씩 늘어났다.일본은 땅값이 비싸기로 세계 1, 2위를 다툰다. 지금은 값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지만 버블경기로 열도 전체가 흥청대던 80년대 말에는 일본 땅을 다 팔면 미국 본토 크기의 대륙을 얼마든지 사고도 남을 돈이 나온다고 큰 소리 치던 때가 있었다.일본에서도 땅값 거품이 가장 심한 곳은 단연 심장부인 도쿄다. 30평 크기의 공동주택 한 채를 장만하려면 도쿄에서는 최소한 5천만엔 이상을 주어야 한다. 상업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도심 한복판이라는 긴자의 땅 1평은 아직도 수천만엔 이상을 호가한다.자연 금싸라기 땅 위에서 장사를 하려면 마진이 많이 남지 않으면 안된다. 임대료와 인건비를 빼고도 적정이윤을 챙기려면 판매단가도 높고 자금회전도 빠를 뿐 아니라 고수익이 보장돼야 한다는 얘기다.그러나 도쿄에서는 지금 이같은 상식과 선입견을 뒤집는 ‘사건’이 한창 일어나고 있다. 여러 장사 중에서도 유독 힘들고 마진이 박하다는 식품소매업이 도심 한복판에 매장을 보란 듯이 늘리고 있는 실험이 그것이다.실험의 주인공은 영세 육류판매점에서 출발한 (주)하나마사(사장·오노 히로시, 小野 博, 63).자신이 운영하는 점포의 매장에서 포즈를 취한 '하나마사'의 오노 히로시 사장자본금 1억3천5백만엔의 중소기업에 불과한 이 회사는 주위의 우려와 의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오피스빌딩이 즐비한 도쿄 도심을 빠른 속도로 파고 들고 있다. 그것도 24시간 연중무휴로 문을 여는 매장을 앞세워 밤이면 인적도 드문 거리를 훤하게 밝히고 있다.노란색 간판에 소머리 모양의 로고와 글씨를 박아 놓은 것으로 유명한 하나마사의 영업방식은 여러 면에서 눈길을 끈다.우선 입지다. 육류와 야채, 생선 등을 파는 식품소매점이지만 하나마사 매장은 구석진 곳에 있지 않다. 은행 등 금융회사 점포나 들어설 법한 목 좋은 곳을 골라 들어가고 있다.‘자영업자 대상 편의점’ 전략 적중긴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아키하바라, 니홈바시 등 도쿄에서도 임대료가 비싸기로 소문난 도심의 1급지만을 공략하는 이 회사의 배짱에 경쟁업체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길을 걷다 보면 웬 은행 점포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3개중에 적어도 2개는 필요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오노 사장은 “은행들이 모두 어렵다고 헉헉대면서도 중심부에 점포를 그렇게 많이 둘 필요가 있느냐”며 “이를 다른 용도로 얼마든지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도심을 노리는 하나마사의 출점 전략이 오노 사장의 이러한 소신과 아이디어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또 하나는 영업방식이다. 하나마사는 편의점처럼 24시간 문을 연다. 그렇지만 일반 편의점과 달리 타깃고객은 자영업자들이 1차 대상이다. 개인 고객도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주된 거래대상은 시내 한복판에서 음식점 등 서비스업을 꾸려가는 사업자들이다. 구매 단위도 큰 요식업자들이 새벽에 농수산물 도매시장에 가지 않고도 식자재를 하나마사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나마사는 작년 1월부터 아키하바라점에 시험적으로 24시간 영업방식을 도입한 후 성과가 좋자 29개 점포중 22개를 전일영업제로 돌렸다. 심야시간대 공략에 나선 후 하나마사의 매출은 점포마다 평균 종전대비 30~40%씩 늘어났다.요식업자들의 구매금액은 평균 2만~3만엔으로 개인 고객들의 수배에 이른다. 하나마사는 자영 사업자들이 영업을 끝낸 심야나 장사에 들어가기 전인 새벽시간에 매장을 찾게 만듦으로써 이들의 지갑을 털어내고 있는 셈이다.바꿔 말하자면 편의점과 같은 시간대에 문을 열어 놓으면서도 고객은 겹치지 않는 ‘업무용 편의점’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입지가 좋고 온종일 장사를 한다고 해서 고객이 몰리는 것은 아니다. 하나마사의 감춰진 경쟁력은 가격과 이를 뒷받침하는 상품조달 방식에 있다.이 회사가 팔고 있는 상품 약 2천8백종중 거의 90%에 육박하는 2천5백종은 ‘프로규격’이라는 이름을 붙인 PB(자체상표)다.육류사업 세계화 통해 ‘음식문화 발신지’ 포부제조업체들은 제품을 시중에 출하할 때 업무용과 가정용 포장을 따로 만든다. 그렇지만 하나마사는 업무용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용도 월등히 싸게 팔아 다른 도매상들로부터 못견디겠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자체 유통망 붕괴를 우려한 제조업체들은 자발적으로 하나마사 전용 제품을 따로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하나마사는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상품조달망을 해외로 넓히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육류전문점에서 출발한 업체답게 육류 매출의 55%를 염가양질의 수입고기에서 올리고 있는 이 회사는 육류에 관한 한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그러나 육류만이 아니다. 하나마사는 통조림 등 가공식품에서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수입와인은 통신판매를 통한 고정 구매회원이 무려 12만명에 달한다.하나마사의 실험에는 상품과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오노 사장의 안목이 가장 든든한 힘이다. 고교를 졸업한 지난 55년부터 육류판매업에서 잔뼈가 굵은 뒤 78년 하나마사를 설립한 그는 일본인들의 식생활이 급속히 바뀌고 있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육류보다는 생선, 야채, 곡물을 선호해 왔던 일본인들이 어느새 서양식 식문화와 한국식 불고기에 길들여지면서 눈에 띄게 고기소비를 늘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곡물에서 섭취하는 칼로리보다 육류와 기름에서 얻는 칼로리가 더 많아진 것이 확실합니다. 일반 가정에서도 스키야키를 먹을 때 고기가 먼저 없어집니다. 스테이크도 어떤 것을 주문할까 결정하고 나서 빵이나 밥을 택하지 않습니까.”그는 일본인들의 식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육류의 왕자인 하나마사의 전성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하지만 일본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오노 사장은 세계 시장을 향한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하나마사를 일본 식문화의 발신지로 키우겠다는 것이다.그는 최근들어 일본요리가 세계각국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본래의 맛과 소재에 매달려 저변을 넓히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요리에 육류 에끼스를 조금만 넣어도 맛이 달라지고 서양인들이 모두 찬사를 던지는데 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그는 고객들의 기호와 반응에 한 발자국만 가까이 가도 큰 시장이 열린다고 믿고 있다.각국에서 들여온 육류로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으면서 일본 요리와 잘 어울리는 재료를 만들어 팔면 시장도 넓어지고 일본 음식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라는게 그의 복안이다. 그는 일본에서 제품을 개발해 일본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핀 후 노하우를 해외로 가지고 나간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철광석을 수입해 철판을 만든 후 이를 재료로 자동차를 조립해 수출하고 나아가서는 외국에 공장을 세우는 세계화 전략을 고기라고 못할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다.“육류사업이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외국에서 본받아야 할 것은 겸허하게 배워야 합니다.”우량기업을 빨리 공개하라는 주주와 투자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2002년 상장계획을 내년 3월로 앞당겼다는 그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