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업체와 제휴 첨단 기술력 확보, 무차입.무분규.무비밀 '3무 경영' 실천

점심때가 되자 기름때 묻은 옷을 입은 공장 근로자들이 우르르 2층 식당으로 몰려간다. 고요하던 식당은 시장바닥처럼 왁자지껄해진다. 밥짓는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배식창구에는 고추장을 발라 구운 돼지고기와 두부 김치찌개 그리고 멸치볶음이 수북히 담겨 있다. 군포공단안에 있는 이름없는 작은 식당. 점심시간은 이들 근로자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군포공단. 행정구역으로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 일대인 이 공단은 수백개 중소기업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곳이다. 안양 비산사거리에서 수원으로 가는 산업도로 오른쪽 개천변에 있는 공단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길에 세워둔 트럭과 승용차 때문에 차 한두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길. 이곳을 사이에 두고 선반과 밀링으로 쇠를 깎고 구멍을 뚫어 기계를 만든다. 누가 만들어준 공업단지가 아니라 중소기업이 모여 만든 자생적 공단. 좁게는 20∼30평, 넓게는 5백∼6백평 규모의 공장에서 열심히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큰 바람이 불면 잠시 눕지만 다시 일어나는 들풀처럼 열심히 꾸려가는 기업들이다. 규모는 작아도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외환위기같은 엄청난 시련이 몰려와도 견디고 일어섰다. 주된 업종은 기계 전기 전자 자동화설비 등.공장자동화 설비 경쟁력 충분이곳에 있는 신명(대표 이정영)도 여느 업체와 다를게 없는 종업원 53명의 평범한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는 최근 전기로인 ‘세라믹 콘덴서 가스분위기 소성로’를 국산화했다. 다층세라믹 콘덴서를 만드는 첨단 장비로 연간 1천만달러 이상을 수입 사용해오던 설비다. 대기업조차 국산화하지 못했던 제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비록 일본업체의 시라이시전기공업과 기술제휴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이 제품은 삼성전기에 10여대 1백30억원어치를 팔았다. 대만 중국 필리핀 등으로 수출도 할 계획이다.또 다른 기종의 소성로 9종을 국산화해 추가로 40억원어치 이상을 최근에 팔았다. 벨트타입 컨베이어 가스분위기 소성로, 전자동 대기 소성로, 배치타입(Batch Type) 저온용 오븐 등. 이들은 세라믹이나 금속 전자부품 압전소자 등을 굽는데 사용하는 설비들이다.이번에 개발한 대표적인 소성로인 세라믹 콘덴서 가스분위기 소성로는 다층세라믹 콘덴서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오븐안을 섭씨 1천4백도로 가열해 다층 콘덴서를 만든다. 이때 산소로 인해 콘덴서가 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븐속을 질소와 수소 등 혼합가스로 채운다. 온도편차는 5도 이내다.신명은 공장자동화기기와 이들 부품을 제작하는 업체로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전기로 사업에 진출했다. 이정영(52) 사장은 “일본 제품에 비해 정밀도와 내구성 등 품질이 비슷한 반면 가격은 30% 가량 저렴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기술제휴업체인 시라이시전기공업은 50년의 역사를 지닌 공업로 전문업체로 세라믹기판 소성로, 압전소자 소성로 등을 만들고 있다. 신명의 올 매출목표는 2백30억원에 이른다. 1인당 매출이 4억원을 넘는다.이사장은 한양대 공대를 나와 대구 등지에서 12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85년에 부천 송내동에서 7명으로 창업했다. 직장생활중 주로 기계제작을 해왔기 때문에 역시 기계제조로 사업을 시작했다.처음 만든 제품은 자동 용접기계. 다음에는 TV부품 자동생산라인과 스피커 자동제조라인을 국산화했다. 89년 군포로 이전한뒤 신제품 개발에 더욱 적극 나서 △VCR헤드 드럼 제조라인 △탄탈(Tantal) 소성라인 △세라믹글래스 공업로 △푸시타입(Push Type) 소성로 등을 잇따라 개발했다.신명이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사장의 독특한 기업경영에서 비롯된다. 그는 무차입, 무비밀, 무분규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이른바 3무(3無)경영이다. 그는 번돈으로 투자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긴다. 화성에 1천5백평 규모의 땅을 샀지만 공장건설을 자꾸 미루는 것은 내실을 더 다진 뒤에 짓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물론 어음할인을 비롯해 약간의 차입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탄탄한 경영을 원칙으로 한다.소성로 분야 노하우 바탕, 수출 혼신그는 매출 이익 등 경영실적도 모두 공개한다. 누구나 회사 돌아가는 것을 안다.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한다. 또 종업원이 집을 사면 이사장은 1천만∼2천만원을 무이자로 빌려준다. 그러니 노사분규가 없다. 창업이후 15년 동안 단 한번도 분규를 겪은 적이 없다. 장기근속자가 많은 것도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주례를 서주기를 원하는 직원이 늘어나면서 30대 후반부터 주례를 서기 시작해 지금까지 직원 7명의 주례를 섰다. 그는 사업 초창기인 30대 후반부터 주례를 서왔다. 아마도 국내 최연소 주례자가 아니었겠느냐며 껄껄 웃는다.“주례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 아닙니까. 주례 부탁을 받는 입장에서는 기쁘지만 이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경영을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어깨는 더욱 무거워집니다.”이사장은 자동화설비와 소성로분야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들 제품 수출에 혼신의 힘을 쏟겠다고 밝힌다. 이같은 포부 뒤에는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 해온 임직원들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몇명은 창업멤버이고 대부분 신명에서 7, 8년 이상된 경력사원들이다. (031)458-7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