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장만 바꿔도 건물가치 ‘껑충’, 침체 건설업계 돌파구로 급부상 … 5년내 13조원 시장 예상

최근 건물 리몰델링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왼쪽부터 코리아나호텔(바우건설), 캘리포니아 휘트니스 센터(삼성건설), (구)한일은행(현대건설), (구)상업은행(현대건설), 교보증원(삼성에버랜드).“건설업계로선 가장 절실한 돌파구, 건물주 입장에선 최상의 대안이지요. 리츠(REITs)제도가 도입되면 투자자에게도 매력적인 상품이 될 겁니다. 리모델링 시장의 확대는 자연스런 흐름입니다.”지난해 2월 리모델링사업 교육과정을 개설해 공론화의 물꼬를 튼 부동산114의 이상영 대표는 “리모델링 시장의 확대·발전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건물을 쉽게 허물고 새로 짓는 것에 열심이었지만 이제는 유지·관리와 고쳐쓰기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리모델링(Remodeling)이란 노후건물의 내·외형을 손질해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자산가치를 부여, 건축물 성능을 대폭 개선하는 사업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리노베이션(Renovation), 리폼(Reform), 리뉴얼(Renewal) 등 다양한 용어와 혼용되고 있다.주로 소형 주택이나 상가에 적용돼 오다 IMF 외환위기 이후 오피스 빌딩, 아파트 단지 등 대형 부동산으로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초부터 대형 건설사들이 리모델링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면서 시장 규모가 급팽창 중이다. 시장 잠재력이 풍부한 선진국형 미래사업인데다 신규수주 감소 타격을 완화할 수 있는 수익형 사업이라는게 건설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올해 시장규모 10조원대 진입 … 급팽창 추세국내 리모델링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9조5천억원, 전체 건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 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시장 확대와 정부의 정책 육성이 맞물리면 2005년에는 13조4천억원, 14%의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장이 건설산업 중심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리모델링 시장을 낙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리모델링할 건물이 ‘너무나’ 많다는 것. 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지어진 고층건물들 가운데 절대다수가 20년 이상 지나면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건물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관리하는데 관심이 없었기에 노후화, 슬럼화 속도도 빨랐다. 임대수익이 줄고 평가절하가 심해지는 건 당연한 현상. 이런 건축물의 효용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리모델링이 최적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쓸만한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것 보다 비용, 시간, 효과가 월등하니 건물주에게도 여러모로 유리하다.통상 리모델링 비용은 신축의 절반 정도이다. 신축 공사비의 40%선에 달하는 터파기, 골조공사가 생략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건축법의 적용을 받았던 도심 건물들을 헐고 신축하려면 주차장 면적, 용적률 등을 현행 법에 의해 제한받기 때문에 전용면적이 크게 줄어든다. 수익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치를 상승시키려면 신축보다 리모델링이 훨씬 나은 것이다.국가적으로도 쓸만한 건물을 재활용하고 막대한 건축폐기물 처리 비용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이익이다. 건설교통부는 지난해 5월 ‘리모델링 태스크포스팀’을 조직하고 관련 제도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노후 아파트 리모델링에 국민주택기금을 지원하는 방안, 양도세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등을 경감하거나 사업조세를 감면하는 방안 등이 주로 논의되고 있다. 올초 공청회를 개최하고 8월 정기국회에 상정, 시장 확대를 돕는다는 계획이다.사회적으로 높아진 환경문제 인식 또한 리모델링 확산을 지원하고 있다. 건축폐기물을 줄이고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는 측면외에도 외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건축물 수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환경을 위한 리모델링 시범사례로 서울 종로구의 한국환경센터를 에너지 자립형 사무실로 바꾸는 중이다. 에너지관리공단도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제도를 리모델링 건축물에 확대하고 있다.‘리모델링팀’ 조직 붐, 선점경쟁 치열리모델링 시장 선점을 위한 건설업체의 행보 역시 빨라지고 있다. 급속도로 개선되는 사업환경을 놓칠세라 속속 리모델링 전담팀을 구성하는 모습이다.가장 역동적인 곳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99년5월 비주거용 건물을 대상으로 하는 빌딩클리닉센터를 조직하고 시장 확대에 나섰다. 그동안 삼성본관, 성바오로병원 별관, 경희의료원, 명동 캘리포니아 휘트니스 센터 등의 리모델링 사업을 수행했다. 수시로 외국 리모델링전시회 등을 돌아보는 등 새기술 개발과 영업전략 수립에 주력하는 중이다.명동 (구)상업은행 건물과 한일은행 건물을 주거시설과 상업시설로 리모델링하고 있는 현대건설은 리모델링 부서인 건물성능개선팀을 분사시킬 계획이다. 팀장인 박준봉 상무를 사장으로 하는 새로운 주식회사를 만든다는 계획. 올해 1천6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삼성에버랜드는 서울 여의도 교보빌딩 등 대형 건물 리모델링 수주에 나서고 있다. 98년 리노베이션사업팀을 만든 후 1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건설회사가 아닌 빌딩관리업체라는 특징을 살려 유지·보수를 토대로 한 체계적인 리모델링 사업을 편다는 계획이다. ‘건물주와 입주자의 니즈를 잘 알고 있다’는 자랑이다.‘리노베이션 리더’라는 모토를 만든 쌍용건설도 지난해 1월 FM(Facility Manage-ment)사업부를 만들고 루이비통의 서울 청담동 매장 리모델링 공사를 수주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부산 광안리 아트타워와 서울 논현동 A병원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11월에는 ‘건축물 리노베이션 활성화를 위한 기술 심포지엄’을 열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주택공사가 전액 출자해 98년11월 설립된 뉴하우징은 노후 아파트를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 중이다. 지난해 12월부터 경기도 오산시의 외인주공아파트 26평형 46가구를 52평형으로 통합 리모델링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건교부가 시범사업으로 지정, 결과를 리모델링 정책 수립에 반영하게 된다. 김동빈 영업팀장은 “영국은 1백40년, 일본은 30년 이상의 주택 수명을 자랑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20년이 채 되기도 전에 재건축을 운운해왔다. 가구별 마감재와 인테리어를 교체하는 수준이었던 아파트 리모델링은 앞으로 단지, 동 단위 규모로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올해 리모델링 분야에서 2백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서울 마포구 용강시범아파트와 과천 주공아파트 단지에 대한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이밖에 대림산업과 풍림산업도 최근 리모델링 전담팀을 만들고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대림산업은 올해 팀체제를 부서로 승격하고 사업범위도 확장할 예정이다.민간 연구모임의 활동도 활발하다. 지난해 5월 설립된 리모델링연구회(회장 박준봉 현대건설 상무)에는 건설·자재·설계업체 66개사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으며 교수, 연구원 등 개인회원도 50명에 이른다. 매달 두 번씩 정기강좌를 개최하고 있으며 컨설팅업체 등과 제휴, 공개교육강좌나 세미나도 수시로 열고 있다. 내년 3월경 협회로 등록할 계획.올 5월14일부터는 국내 최초로 리모델링 전시회가 열린다.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하고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협찬하는 이 전시회는 국내외 리모델링 관련 업체들이 참여, 리모델링 붐을 돋울 예정이다.“조세지원 등 확대해야” 정부 지원책에 관심리모델링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선진국에 비하면 한참 뒤처지는 것이다. 아직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전체 건설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만큼 잠재력이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특히 올해 도입 예정인 부동산투자신탁 리츠(REITs)에 거는 기대가 크다. 공사기간이 신축에 비해 훨씬 짧아 투자자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건물주는 리모델링 비용을 쉽게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 투자가 가능해 상품성이 높은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경기변동에 덜 민감해 안전성도 높다. 일부 건설업체는 외국계 투자펀드와 제휴, 상품성을 높일 계획도 짜고 있다.새 건물을 지을 땅이 줄어들고 재건축 규제도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여서 리모델링은 필수불가결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건설사업 가운데 상대적으로 경기불황에 저항력이 강하다는 것도 리모델링이 주목받는 요인. 관련 업계는 정부가 내놓을 리모델링 지원책에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런 리모델링도 있다서울 청담동 ‘루이비통 글로벌스토어’식당건물 82억 투입 ‘작품’으로 탈바꿈리모델링의 최대 장점 가운데 하나가 ‘재건축에 비해 월등히 적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재건축에 버금가거나 더 많이 들 수도 있다. 서울 청담동의 ‘루이비통(Louis Vuitton)’ 매장이 그런 경우.프랑스산 최고급 패션브랜드 루이비통은 아시아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서울 청담동을 선택하고 99년부터 부지를 물색했다. 하지만 원하는 규모의 공지(空地)를 찾지 못하자 일식집이 들어서 있던 4층짜리 노후건물을 매입, 리모델링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전세계를 통틀어 파리 본사가 직접 건물을 매입한 예는 몇 안된다.지난해 4월 쌍용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면서 ‘1백48일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9월29일 오프닝에 맞추려면 5개월 남짓만에 공사를 끝내야 했기 때문.루이비통 디자인팀이 기본 설계를 맡고 실내 인테리어와 외부는 일본과 한국업체가 담당했다. 호주 DCM, 독일 조셉가트너 등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설계·감리업체도 함께 참여했다. 7개국에서 모인 스태프들이 12시간 이상 마라톤 회의를 하는 진풍경이 매주 연출될 정도로 숨가쁜 일정이 진행됐다.‘루이비통 글로벌스토어’에 투입된 총공사비는 82억8천5백만원. 지상 4층 지하 1층에 연면적 4백71평 규모 건물이므로 평당 1천7백59만원이 투입된 셈이다. 이는 웬만한 첨단빌딩 신축비용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다. 골조만 살려두었을 뿐 사실상 최고급 수준으로 신축한 것이나 다름없다.건축전문가들도 루이비통 매장을 ‘귀족적 품위를 갖춘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쌍용건설 FM사업팀 박윤섭 차장은 “짧은 시간에 최고급 브랜드에 걸맞는 외형을 완성시키려면 리모델링 외에 대안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루이비통은 신축 이상의 효과를 보았고 상품, 매장 모두 ‘최고급’이라는 홍보도 한 셈”이라고 밝혔다.★ 선두기업 / 삼성물산 건설부문 ‘빌딩클리닉센터’부동산컨설팅 접목 ‘병든 빌딩’ 치료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건설)의 빌딩클리닉센터는 사내에서 ‘사장 특별관리 부서’로 통한다. 그만큼 국내 리모델링 시장의 전망이 밝고 앞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는 뜻. 지난 98년 대형 건설사 가운데 처음으로 리모델링팀을 만든데 이어 99년엔 이정광 이사를 수장으로 조직을 확대, 활발한 사업을 펴고 있다.빌딩클리닉센터는 확고한 리모델링관(觀)을 가지고 움직인다. 노후건물을 말끔하게 개·보수하는데 그치지 않고 부동산컨설팅을 통한 건물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자체 개발한 성능진단 프로그램으로 최적의 리모델링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용도변경, 증축 등 법적 기술적 방법은 컨설팅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정광 이사는 “투자 대비 경제적 가치가 최상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 곧 리모델링”이라고 잘라 말한다. 개·보수에 치중하는 하급개념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팀 명칭도 ‘클리닉센터’로 정했다.“명동 CFC(캘리포니아 휘트니스 센터)는 기성복 매장을 리모델링한 겁니다. 생기를 잃었던 상업시설이 재건축의 절반 정도 비용으로 최고 전성기를 맞은 사례죠. 이처럼 도심에 들어찬 노후빌딩들 모두 리모델링으로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어떤 건물이라도 진단과 컨설팅을 통해 ‘치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빌딩클리닉센터는 지난해 1천억원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적어도 1천5백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 전문인력 추가 확충 계획도 잡혀 있다.단 아직 리모델링에 대한 건물주들 인식이 ‘초보단계’라는게 이들의 고민이다. 하지만 올해 리츠(REITs)가 도입되고 정부의 지원책이 늘어나면 시장 규모가 급격히 팽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현중 팀장은 “4대문 안 노후빌딩들이 리모델링 붐을 탈 때가 곧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