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업별 산업ㆍ개별매력도 동시고려 필요 ... 총괄본부 두고 추진해야 성공

IMF이후 현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재벌 개혁의 핵심은 돈이 될만한 사업은 무엇이든 다 한다는 식의 기존의 문어발식 경영을 탈피하여 최적의 이윤과 가치를 창출할 핵심 사업에 집중토록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재벌간 빅딜(Big-Deal)’이나 ‘사업 교환을 위한 짝짓기’ 등의 이름으로 정부가 주도적으로 재벌 사업 구조 조정에 관여하기까지 했으나, 2년이 지난 현재 그 성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의 사업 포트폴리오 구조조정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답하기에 앞서 먼저 사업 포트폴리오 구조조정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기업 포트폴리오 구조 재조정의 의의기업 포트폴리오 구조조정이란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현재 사업 중에서 향후 지속적으로 가져가야 할 사업과 포기해야 할 사업을 결정하는 작업이다. 개별 기업 또는 그룹 차원에서 사업을 취사 선택하여 사업을 확대, 매각 또는 포기하는 일련의 활동은 기업의 가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며, 국내 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들의 사례를 볼 때도 성공할 가능성 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큰 어려운 경영 의사 결정이다. 그러나 기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성공할 경우, 그 결과로 기업이 얻게 되는 직간접적인 이익은 그 위험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크고 지속적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GE그룹이 80~90년대에 걸친 사업 매각 및 인수를 통해 기업 가치를 15배 이상 개선한 것은 대표적인 기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이 전 국민의 화두가 된지 벌써 몇년이 지난 한국에 아직까지 이런 성공적인 기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사례가 매우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주요 실패의 원인우선 기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작업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간의 작업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업 포트폴리오 재구축이 일관된 기업 경영 전략에 바탕한 장기적인 작업이라는 점은 GE를 비롯한 성공적인 기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사례의 공통적인 요소이며, 정부 주도에 의한 몇번의 빅딜로써 마무리되는 일은 결코 아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필자가 국내 기업 및 재벌의 포트폴리오 재구축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경험한 주요 실패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대부분의 국내 기업·그룹이 외형 중심의 성과를 추구해 옴에 따라 사업을 축소하는데 상대적으로 부정적이며, 실행 또는 성공에 대한 경영진의 인센티브도 부재한 상황이다. 실제 필자가 참여한 90년대 대부분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프로젝트는 기존 사업의 재구축보다 신규 사업 기회 파악과 진입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이었다. 외형적 성장과 확대 지향의 한국 경영진들은 사업을 확장하는데는 매우 적극적인 반면 사업을 축소하는데 극도로 소극적이다. 게다가 사업 축소나 매각 결정의 실행 단계에서 직면하게 되는 내부의 난관 및 위험이 매우 큰데 비해서, 이에 성공했을 경우 경영진에 주어지는 인센티브는 거의 없기 때문에 더욱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둘째, 사업 포트폴리오를 평가하는 기준 내지는 프레임워크(Framework)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재 수익을 내는 사업은 지속할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기회비용이라는 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때만 가능한 발상이다. 기업 경영이란 기업가치를 최대화하기 위해 한정된 자원(투자 재원, 경영진의 시간, 인력자원)을 다양한 사업에 적절히 배분하는 활동이다. 만약 기업의 자원이 무한하다면 수익이 나는 모든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맞겠지만, 한정된 자원을 가진 기업 경영에서는 같은 자원을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성과를 예측하여 최적의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그런데 한국의 재벌 계열사의 경우, 그룹 내부지원이라는 왜곡된 시장이 존재하는 덕분에 최소의 경영성과를 보장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즉, 경쟁이 없는 그룹 내부시장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수요 또는 시장 보다 높은 가격을 보장 받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이고 엄정한 기준으로 사업 성과를 평가하기는 무척 어렵다. 한국에서 재벌 그룹 내부 수요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 분야는 소비재 상품, 광고, IT, 접대(Catering)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며, 그 의존도 또한 실제로 매우 높다.셋째, 이렇게 관대한(?) 기준에 따라 사업을 평가하다 보면 실제 축소·철회해야 하는 사업은 당장의 성과가 지극히 열악한 일부 사업에만 한정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업들은 실제 마땅한 철수 방안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이다. IMF이후 매각 대상 사업을 선정하고 인수 대상 업체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구조조정 담당자들이 필자에게 그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때마다 필자가 했던 말은 “효과적으로 사업을 매각하고자 한다면, 나에게 매력적인 사업을 팔아야 한다” 였다. 이는 다른 말로 돈이 되는 시점에 팔아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는 오늘의 알짜 사업도 내일이면 적자 사업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사업 매각 시점에는 과감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위의 실패 이유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그룹들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작업이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어떻게 할지 몰라서’라기 보다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 하겠다.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프레임워크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성공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상황적 요소를 충분히 고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도와줄 객관적인 기준과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 다음은 베인에서 사업 포트폴리오 평가시 흔히 사용하는 대표적인 프레임워크 중 한 가지이다. (그림참조)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할 때는 각 사업의 일반적인 산업매력도와 함께 그 기업 내부에서의 개별매력도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산업매력도는 해당 산업의 시장규모, 성장성, 수익성 등이 고려가 되며, 기업의 개별매력도는 경쟁우위 요인, 핵심역량과의 일치성, 그리고 타 사업부문과의 시너지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평가하게 된다. 아무리 매력적인 사업이라 할지라도 기업이 보유한 핵심역량과 무관한 역량을 필요로 하거나, 타 사업들과 통합 운영됨으로써 기대되는 시너지가 제한적이라면 전체 포트폴리오에 포함될 의미가 크지 않다.본부(Center)의 역할기업 포트폴리오 재구축에 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이를 총괄적으로 기획, 운영하는 본부(Center) 조직 또는 그룹이다. 개별 사업부 조직이 해당사업부의 성과극대화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를 조정하여 총체적인 기업가치의 극대화를 도모해야 할 본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며, 기본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여러 사업부를 관리하는 본부 조직 또는 그룹은 관리 비용을 상쇄시킬 만큼의 실질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개별 사업이 단독 조직으로 있는 경우보다 더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본부 조직은 직접적으로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여러 사업부를 총괄하여 관리하는 간접부문(Overhead)이기 때문에, 조직 운용비용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때만 존재의 의의가 있다. 본부조직의 핵심역량은 동일한 사업포트폴리오를 분리 운영하는 경쟁기업보다 전체적인 사업 포트폴리오의 성과를 우월하게 유지하는데 있다. 이런 기본적인 관점에서, 현재 국내 재벌그룹의 본부조직이 비용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를 철저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며, 이에 따라 특정사업이 해당 그룹의 계열사로서 존재하는 것이 독립법인으로 있을 경우 보다 더 우월한 성과를 내고 있는지 등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