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하시기 제한 등 호기심 자극 '보졸레 누보' 대중화 선봉 ... 호텔 이벤트 개최, 와인알리기 한몫

“무슨 술을 좋아하세요?”“네, 와인을 좀 즐깁니다.”10여년 전만 해도 무슨 술을 즐기느냐는 질문에 와인을 즐긴다는 대답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그랬던 만큼 누군가 와인을 즐긴다고 하면, 그 순간 그 사람은 아주 희귀하거나 특별한 사람처럼 취급받기도 했다. 때로는 “지까짓게 무슨 와인이야”라는 식으로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일부 상류층에선 값비싼 와인을 즐김으로써 자신의 호사취미를 내세우기도 했으니, 이런 거부감이 생길 만도 했다. 와인수입이 자유화되기 전이라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와인종류가 워낙 제한돼 있었고, 와인 값이 비싸기도 했다.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든 요즘. 와인은 더 이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다. 어디서나 쉽게 와인을 구할 수 있고, 또 초보자를 위한 와인강의도 심심찮게 열리고 있다. 와인을 이용한 축제나 각종 와인관련 모임도 적지 않다.강의·축제 등 관련 모임 풍성와인을 두고, 소주나 맥주같은, 또는 막걸리 같은 서민을 위한 ‘대중주’라고 하기엔 이르지만, 적어도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특별한 ‘호사가’로 불려지지는 않게 되었다. 와인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음주취향으로 인정받게 됐다고나 할까.이같은 와인의 대중화 움직임에는 와인수입업체와 유통업체 등 관련업계의 마케팅이 큰 역할을 했지만, 국내에선 특히 호텔의 몫이 컸다. 호텔에서 와인관련 행사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와인상식을 곁들인 식사 매너 및 각종 와인 맛보기(테이스팅) 행사. 신라호텔의 경우 지난해 일반 고객들을 대상으로 7~8회 와인강좌 및 매너교실을 열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얏트호텔은 객실예약 및 부킹을 담당하는 비서모임인 ‘프라이빗 라인’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달에 1~2회씩 와인상식 및 테이블매너 강의를 한다.호텔과 와인은 사실상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프랑스 식당, 이탈리아 식당 등 ‘이름’있는 서양식 식당들이 주로 호텔에서 비롯됐고, 이들 서양요리에 주로 곁들여지는 ‘음료’가 바로 와인이라는 뜻에서다. 프랑스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는 음료가 아니라 요리의 맛을 내는 주요 소스로서도 와인을 즐겨 사용한다. 그만큼 와인을 빼놓고 호텔 식당이나 고급요리를 논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이런 측면에서 웨스틴조선호텔 ‘나인스 게이트(The Ninth Gate)’는 일반인들에게 ‘명당중의 명당’이자 성공적인 ‘맞선 장소’로 잘 알려져 있지만, 와인 전문가들에겐 프랑스 정통요리와 맛있는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문적인 와인셀러(와인저장고)를 보유한 곳이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와인도 최적의 온도 및 습도유지에 실패하면 값어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와인 전문가들의 지적. 이를 감안할 때, 나인스 게이트는 최적온도(섭씨 10~12도)와 최적 습도(69~70%)를 유지할 수 있는 와인셀러를 통해 좋은 와인을 보관할 수 있는 기본조건은 갖춘 셈인데, 현재 3백여종 4천여병의 와인을 보관하고 있다.나인스게이트는 이와 함께 1998년부터 와인마케팅의 일환으로 매년 3~4차례 단골고객들을 초청, 일종의 와인축제인 ‘와인&다인’행사를 열고 있다.나인스 게이트 수석 소믈리에(와인전문가) 한상돈 지배인은 “좋은 와인은 바로 고객을 끄는 비결”이라며 호텔에서의 와인 마케팅 위력을 강조했다. 한 지배인은 “호텔측이 좋은 와인을 확보하고 있다가 와인을 즐기는 고객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경우 해당 고객은 단골고객이 될 수밖에 없다”며 “나인스 게이트 고객의 상당수는 사실상 와인 애호가들”이라고 귀띔한다.와인마케팅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다. 보졸레 누보는 쉽게 말해‘보졸레산 햇와인’을 뜻한다. 11월만 되면 각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보졸레 누보’는 다름아닌 뛰어난 마케팅의 결과라는게 관계자들의 얘기다.보졸레 누보에 쓰이는 포도는 가메종으로, 보존성이 좋지 않아 인기가 없었다. 좋은 포도주가 보존성과 직결됨을 감안할 때 보존성이 좋지 않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포도주를 담그자 마자 바로 마시는 ‘햇포도주’ 전략. 여기에 곁들여진 것이 햇포도주 출하시기를 세계적으로 11월 셋째주 목요일 0시로 제한한 강력하고도 별난 마케팅 전략이다. 마케팅의 주체는 물론 보졸레의 포도상인 및 이들을 지원하는 프랑스 정부다. 이 출하시기를 지키지 않을 경우 와인공급을 끊겠다는데 어쩌겠는가. 게다가 와인을 주로 취급하는 상가 및 호텔 입장에서도 이같은 마케팅 전략은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보통 수확해서 발효과정을 거쳐 병에 담겨지기까지 최소한 2~3년 걸리는 다른 와인과는 달리 몇주 전까지만 해도 나무에 달려 있던 포도가 술로 돌변, 11월 셋째주 목요일 0시부터 일제히 세계시장에서 판매된다니 신기하지 않은가.어쨌든 이와 같은 기발한 마케팅 전략덕분에 올해 보졸레 누보는 한국시장에서만 엄청난 판매고를 달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라호텔의 경우 지난해보다 25%가 늘어난 5천여병을 판매했고, 다른 호텔들도 비슷한 신장률을 보였다는 반응이다.최근의 와인바람은 보르도와인아카데미(02-396-0585), 서울와인스쿨(02-514-3288) 등 일반인을 위한 와인교육원을 통해서도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인터뷰 / 최훈 보르도 와인아카데미 원장건강한 포도주맛 알리는 ‘와인전도사’“위스키가 국내에 건너와 폭탄주 제조술로 변질된 것처럼 와인도 본래 의미가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비싼 와인이 난무하는 것도 문제구요.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건강한 와인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제 목표이자 희망이지요.”최훈 보르도와인아카데미(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원장(64)은 특이한 이력의 와인전문가이자 와인전도사다. 교통부 해운국장, 관광국장을 거쳐 철도청장에 이르기까지 30여년을 교통 및 관광행정 전문가로 일해오다 지난 94년 퇴직한 뒤 <포도주 그 모든 것 designtimesp=20570>이란 책을 내고 급기야 지난 9월에는 와인전문 교육기관인 보르도와인아카데미를 열게 됐다.와인문화를 대중속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새해 1월부터는 강남 코엑스내 비즈바즈라는 레스토랑에서 와인강의도 할 예정이다.(1월15일부터 2월까지 3회) <르세울(Le Seoul) designtimesp=20573>이라는 격월간지를 통해 와인에 대한 잘못된 상식도 뒤집고 있다.“수입이 어려웠던 예전에야 와인이 호사가의 사치품 정도로 취급되기도 했지만, 요즘에야 어디 그런가요. 값이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입에 맞는 와인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와인이 인생을 즐겁고 풍요롭게 해주는 대화의 술이자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프랑스를 비롯한 축구의 강국들이 또한 주요 와인 생산지라는 점에서 월드컵이 열릴 2002년이 와인문화 확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최원장은 “현재 국내에 보급되고 있는 와인은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잘못된 상식 때문에 가격거품이 심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2만~3만원대의 이탈리아산이나 칠레산, 아르헨티나산 와인중 우리 입맛에 맞는 좋은 와인이 많다는 것이 최원장의 귀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