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매상 10분의 1에도 못미친다" 상인들 하소연...설 특수 말도 못꺼낼 판

남대문시장민족 최대명절인 설을 20여일 앞둔 지난 1월3일 오후 8시. 서울 강서구 발산동에 위치한 송화시장. 이 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건 영하로 떨어진 날씨만은 아니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도 한파려니와 썰렁한 설경기로 상인들은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사실 몇해전부터 재래시장 상인들은 신정연휴는 대목으로 치지도 않는다. 그렇다 손치더라도 이곳 상인들은 평소 때보다도 매상이 더 오르지 않는데 거의 넋을 잃고 있을 정도였다.5ℓ짜리 쓰레기봉투에 뜯지도 않은 시금치단을 꾹꾹 눌러넣는 채소상 김상만(51)씨는 “벌써 이 자리에서만 25년째 장사를 해왔지만 올해같은 경우는 처음 경험한다”며 “1년전과 비교해 10분의 1도 못팔았다”고 푸념했다. 연말에 된서리를 맞은 것은 비단 이 시장만의 얘기는 아니다.재래시장 ‘썰렁’ … 태반이 개점휴업김씨가 물건을 떼 오는 영등포구 문래동 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월5일 새벽 5시. 여느날 같으면 화물차, 상점 주인들로 북적거릴 도매시장이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화물차가 싣고 온 청과물의 반도 받지 않는 상점이 태반이고 아예 문을 열지 않은 상점들도 한집 건너 한집으로 이어졌다. 오전 8시쯤 소매상들이 거의 빠져나간 후 창고 정리중인 한 청과물 도매상인은 “소진하지 못한 사과며 배가 1백상자도 넘게 쌓여 있어 잠실 가락동시장은 커녕 산지에서 들어오는 물건도 되돌려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사실 도매시장과 재래시장에 손님이 끊어진게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경제위기를 맞은 지난 98년말 상황을 뺨칠 정도로 폐장분위기가 감도는 것은 요즘의 불경기가 극도에 다달았음을 뜻한다. 이처럼 소비가 위축된 것은 심리적인 영향이 더 큰 듯하다. 이미 혹독한 경제위기를 겪어본 소비자들로서는 한집 건너 실업자가 생기면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2년전 건설회사를 다니다 명예퇴직 후 택시를 몰고 있는 조민우(44)씨는 “그나마 IMF 때는 실직을 당했을망정 모아놓은 돈에 퇴직금이라도 있었지만, 이번 불황은 쓸 돈도 없는 데다 먹는 것도 아낄 정도로 겁부터 난다”고 한숨을 지었다. 이런 탓에 재래시장 상인들은 설 경기는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올 설은 예년보다 20일 정도나 빠른데도 도무지 분위기 조성이 안 된다고 시장사람들은 입을 모은다.가락동 농수산물시장도 신정연휴 후 정상적으로 장이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찍 설을 맞게 돼 대목을 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지난 한해 동안 가락동 도매시장에서 거래된 농수산물의 월별 가격지수는 이번 설의 먹거리시장 상황을 어느정도 가늠하게 한다. 연초부터 꾸준히 증가하던 농수산물 가격(그림 참조)은 추석대목을 기점으로 상한가를 치다 4/4분기에 들어와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이 때가 바로 경제상황이 악화된 시기다. 설 2주전까지 장이 살아나지 않으면 지난해 설이나 추석 때와 같은 대목 경기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추측이 가능하다.서울시농수산물공사 노광섭 조사분석팀장은 “예년보다 전반적으로 거래가격이 22% 정도 떨어졌다”며 “거래물량도 지난해 수준에 못 미치고 있어 그저 경기가 하루빨리 살아나길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노팀장은 이어 학교급식 등으로 어느 정도 특수를 누리던 먹거리가 방학중이라 (청과물이) 잘 팔리지 않는 것도 대목경기를 더 썰렁하게 한 요인이라고 분석한다.동대문·남대문 의류시장은 나은 편먹거리 시장과는 달리 서울 동대문과 남대문 의류시장은 그나마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동대문 의류도매상가 디자이너클럽의 김정경 이사는 “외투류 등 겨울 상품을 중심으로 지난해 이맘때보다 10~15% 정도 매출이 늘었다”며 “이는 지난 한해 지방 중소도시에서 패션쇼핑몰이 상당수 생겨난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백화점과 할인마트도 재래 시장보단 덜하지만 ‘설대목’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기업체의 설 선물 수요마저도 현재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게 롯데백화점 구천욱 특판팀장의 말이다.이를 반영하듯 최근 기업에서는 올해 불황이 예사롭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자 설상여금 지급액을 지난해보다 줄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거래업체와 직원들에게 줄 선물도 올해에는 아예 하지 않는 기업도 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백화점 등 유통업체들도 예상했던 만큼의 설 경기가 일지 않자 선물상품도 중저가대로 준비하는 등 꺼져가는 설 경기를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설 때 짭짤한 수익을 올렸던 대형 백화점 등은 10만원대의 선물 대신 가격대가 7∼8만원대인 알뜰형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최근 한국경제신문이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와 공동으로 소비자 경기지수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올 상반기중 소비를 줄일 것으로 전망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6개월 후의 물가를 나타내는 물가예상지수도 142.1로 물가불안이 가중될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앞으로 6개월 후 경기가 현재보다 더 나빠질 것이란 예상도 지배적이다. 6개월 전과 비교한 현재의 상품구매 의견을 나타내는 지난해 4/4분기 구매지수 역시 88.3으로 1년만에 100을 밑돌았다. 미래구매의도 지수 역시 100 이하로 떨어졌다. 이는 설 경기뿐만 아니라 올 한해동안 내수경기가 극도로 위축될 것이란 것을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