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능요원 초봉 30여만원, 임금차별.부당대우 등 횡행...제도 개선책 마련 시급

테헤란밸리벤처기업과 병역특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인력자원이 중요한 벤처에서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으로 불리는 이들 병역특례자들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대표적 온라인 게임업체인 CCR의 경우 전체 직원 1백80명 중 20명이 병역특례자다. 특히 개발실 인원의 90% 이상이 특례자인 경우가 많아 이들이 없으면 회사도 문을 닫아야 할 정도다. ‘질적’ 면에서도 이들은 소중한 존재다. 네오위즈의 고선미 홍보팀장은 “프로그램 개발자로서의 전성기는 20대 초반이기 때문에 이같은 연령대의 병역특례자들의 기여도는 절대적이다”라고 말했다. 의무기간에 묶여 2년간 이동하지 못하는 것도, 인력 이동으로 골머리를 앓는 업계에는 큰 도움이 된다.그래서 중소 벤처기업들은 병역특례지정 대상업체로 선정받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2001년에는 연구인력이 부족하다는 벤처기업들의 요구를 반영해 벤처기업에 대한 배정이 크게 늘어났다. 2001년 병역특례업체는 모두 1만7천1백69개이며 이 업체들에는 전문연구요원 3천78명, 산업기능요원 3만4천9백22명이 배정된다. 전문연구요원은 자연계분야 석사 이상 학위소지자가 전문연구기관에서 5년간 의무 복무함으로써 병역의무를 대신하게 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를 활용해 연구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단 기업부설 연구소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계 석사 이상 학력을 소지한 연구전담요원 2인 이상을 상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전직하려면 2년 이상 종사해야 가능병역특례업체 선정은 병역법에 따라, 업체가 관할 상공회의소에 신청하면 병무청은 매년 12월말까지 특례업체를 선정한다. 일반 기업은 7월말까지 한차례 신청할 수 있고, 벤처기업은 1월말과 7월말 두 차례 신청할 수 있다. 또 병역특례로 전문연구요원이 된 사람이 애초의 지정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로 전직하려면 2년 이상 종사해야 가능하지만, 벤처기업으로 전직할 경우는 이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정부의 벤처 지원책의 하나다.산업기능요원의 경우는 벤처라 해도 2년 이상 근무해야 전직할 수 있다. 이것도 벤처기업에 유리한 조항이다. 전문연구요원의 벤처 취업률은 낮고, 산업기능요원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즉 전문연구요원의 벤처 진입장벽은 낮추고 산업기능요원의 벤처이탈 장벽은 높인 것이다.그러나 벤처의 특례자들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데 비해 특례 당사자들의 벤처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 어느 정도 규모도 있고 유명한 인터넷 벤처의 경우는 직장의 안정성, 임금수준 등에서 상황이 좋은 편이지만, 난립해 있는 하청 중심의 SI업체 등에서는 임금차별과 부당한 대우가 횡행한다. 특히 산업기능요원의 경우 첫달 평균임금이 30, 40만원인 경우가 부지기수다.벤처기업 CEO 병역특례 복무 편법도또 ‘대기 순번’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예상되는 숫자보다 많은 인원을 미리 입사시켜 놓고 6개월∼1년까지 일하게 하다가 ‘“5명이 배정될 줄 알았는데 3명밖에 안됐다”며 순위 밖의 인원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고의로 그랬건, 실제로 기대보다 적은 인원을 배정받았건 일단 미리 입사부터 시켜 놓는 것은 업계의 관행이다.” 홍익대 전자전기제어공학과를 휴학하고 산업기능요원으로 입사했다가 이미 두번이나 이같은 일을 당한 적이 있는 오덕영씨의 말이다.연봉 등에서 일반 사원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 전문연구요원도 불만이 많다. “벤처 중에는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할 만한 능력과 의지가 있는 곳이 흔치 않다. 단순 코딩만 하다 보면 이제까지 배운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99년 S공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 벤처기업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모씨의 말이다. 연구개발을 하려고 왔는데 실제로는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이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현행규정상 벤처기업의 임원이나 CEO는 병역특례자가 될 수 없어 젊은 벤처기업인들은 대표이사를 다른 사람으로 등재하고, 자신은 병역특례로 복무하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인터넷 벤처 기업 N사의 A대표, 또다른 N사의 B대표 등이 신분상으로는 ‘병특’(병역특례자를 부를 때 통용되는 호칭)이다. 벤처 사장끼리 상대편 특례자로 등록해 놓는 ‘교환’ 방법도 동원된다. 병역특례자들은 이같은 사례를 목격하면서도 “싫으면 군대 가라”는 식의 대응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까봐 아무 말 못하는 처지다.“정보통신 기업들은 인력 구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말은 하면서도, 일부 벤처들이 오히려 테헤란 밸리에서 인재가 떠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요. 길게 보면 결국 제 살을 깎아 먹는 일인데도 말이죠.” 한 벤처기업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일하는 이모씨의 말이다.★ 병무청 ‘10년 이상 배정받은 업체 제외’ 발표 파장갈 곳 잃은 고급인력들 “어찌 하오리까”양정환(25)씨는 우울한 새해를 맞았다. 연세대학교에서 컴퓨터산업시스템공학을 전공, 2001년 석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었던 그는 학위 취득을 연기하고 계획에도 없던 어학 연수를 가기로 했다.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2000년4월부터 부지런히 자신의 전공과 일치하는 연구소를 알아보았다. 논문 수상경력 등 조건이 좋은 그는 고르고 골라 대기업 계열의 F연구소와 D연구소에 합격, 안심하고 학업을 계속했다. 그런데 12월 중순, 병무청에서 ‘10년 이상 특례 인원 배정받은 업체는 2001년부터 제외’라는 조항을 발표했다. 이 F와 D연구소 역시 특례 인원을 전혀 배정받지 못했고, 그는 입사 취소를 통보받았다. 이미 구직 시즌이 지나버려 다른 곳을 알아보기에도 늦었고 학사 일정 역시 맞지 않아 박사과정에 진학할 수도 없다. 졸업을 연기하지 않으면 군대를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올해 병무청의 갑작스런 발표로 인해 양씨와 같은 고급 인력들이 낭비되고 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등의 석사학위취득 예정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병무청측은 ‘이미 기업에 수차례 예고했던 일’이라고 말하고 기업측은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발단은 벤처·중소기업 연구소의 특례기관 신청이 급증함에 따라 배정인원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게 된 것이다.이번 배정에서는 10년 이상 지정됐던 3백69개 연구소와 복무관리가 부실한 8백66개 연구소가 제외됐고 벤처업체가 우대됐다. 이 10년 이상 지정 연구소 중에 거의 모든 대기업연구소가 포함돼 있다. 새로 지정된 벤처는 정보통신업종이 대부분이고, 특례 예정자들의 전공은 다양해 수요·공급이 불일치하는데 문제가 있다. 특히 정보통신과 직접 연관이 없는 화학, 건축분야 등의 전공자들 피해가 심하다. 이들은 ‘편하고 월급 많이 주는 대기업 연구소에만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번에 특례인력배정을 받은 벤처 중 제대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곳이 몇 개나 되는가”라고 주장한다. 전문연구요원 배정 기준에 맞추기 위해 급조한 ‘연구소’라는 곳은 책상 하나 달랑 갖다 놓은 경우가 많고, 서류상으로만 연구소 설립 신고를 한 곳이 태반이라는 것이다.양씨는 어학연수를 갔다가 돌아와서 내년에 다시 구직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에는 10년 이상된 연구소를 갈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으니, 일찍부터 준비해 벤처 중에서도 진짜 연구를 할 능력이 있는 회사를 잘 골라서 가려고 한다. 그는 인력을 제대로 활용할 생각은 없이 ‘부려먹기’에 급급한 일부 벤처의 근시안과 탁상행정의 병무청, 아무 대책 없이 병무청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대기업 연구소 모두가 이번 사태의 ‘공범’이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