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미국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중 하나는 우수한 능력을 가진 직원을 뽑고 또 그들이 회사에 계속 남아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부터는 ‘어떤 직원을 얼마나 내보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일이 가장 큰 일로 부각되고 있다.해고의 계절은 이미 시작됐다. 거품이 빠져버린 이른바 신경제(New Economy)쪽의 닷컴(Dotcom)기업은 물론 구경제(Old Economy)의 굴뚝 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커네티컷주에 본사를 둔 애트나라는 건강보험회사는 5천명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인 면도기와 건전지제조업체인 질레트도 2천7백명을 해고한다고 선언했다. 몇천명씩의 해고발표는 최근 몇년간 거의 찾아볼 수 없던 현상이다. 제너럴모터스 제록스 다임러크라이슬러 월풀등 쟁쟁한 회사들도 수천장의 핑크슬립(해고통지서)이 벌써 회사내에서 조용히 돌아다니고 있다.미국 기업들은 경기가 좋을 때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부문을 과감히 잘라내고 필요없는 보직은 없애 버린다. 세계화라는 생존정글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을 슬림화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 CEO의 철학이다. 그리고 그 철학은 통상 해고란 방법을 통해 구체화된다. 10년 장기호황의 피크를 이루던 98, 99년의 해고율이 사상 최고수준을 기록했을 정도다.문제는 지금은 경기가 나빠지고 있는 때란 점이다. 호황기에는 해고를 당한 사람들도 새 직업을 찾는게 어렵지 않았으나 앞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해고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해고는 또 기업들에서도 자칫 문제해결이 아닌 문제를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곤 한다. 때문에 경영자들은 누구를 내보내고 누구와 일할 것인가를 정확히 선택하고 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달래서 동요없이 일하게 하는가가 중요하다.대다수 닷컴, 다운사이징 첫경험대다수의 닷컴 기업들은 그동안 사업확장만 알았지 사업축소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따라서 닷컴기업의 CEO들에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몰아닥친 다운사이징이 대부분 ‘첫 경험’이었다. 2년전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한 아마추어 스포츠와 관련된 웹사이트인 eteams.com의 창업주이자 사장인 브라이언 존슨. 최근 몇개월간 직원들의 상당수를 해고한 그는 “해고를 하면서 처음 ‘실패감’도 맛보았으며 해고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았다”고 말한다.지난 여름 회사가 더이상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자금이 압박을 받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다운사이징’을 결심했다. 그러나 45명의 직원중 몇명을 해고해야 회사가 정상화될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전체 직원의 3분의 1가량인 14명을 해고했다. 해고당하는 직원들에게 회사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회사의 미래는 밝은 만큼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채용하겠다는 약속도 했다.남은 직원에겐 심리적 안정감 심어줘야14명을 해고하자 남아 있는 직원들은 처음엔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회사는 정상화되지 않았고 존슨사장은 몇주만에 14명을 다시 해고했다. 몇주뒤 추가로 3명을 해고했다. 결국 14명만 남았다. 하지만 여러번에 걸친 해고는 오히려 남아 있는 직원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회사는 최근 active.com이란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에 합병됐다. 존슨사장은 “해고를 하려면 한꺼번에 해야 한다. 추가 해고가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야 남아 있는 직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털어놓는다.실제 최근 보스턴의 유명 인터넷회사에서 한 CEO가 대량 해고를 단행하면서 유능한 여성직원에게 “가장 좋은 보직을 주고 연말에 많은 보너스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녀는 경쟁 회사의 더 낮은 직급으로 떠나버렸다. 이것은 관련업계에서 화제가 됐다.그녀는 회사를 떠나면서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을 보고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었다”라는 말을 남겼다.구경제 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다르다면 이들은 좀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게 닷컴기업들과 다른 점이다. 대기업들은 해고를 발표하면서 경영진의 전략적 실수 보다는 경영환경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든다. 보스턴소재 경영자문사인 베인사는 최근 포천지가 선정한 5백대 기업중 90명의 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해고는 관리를 잘못했다는 신호다’라는 항목에 2.3%만이 ‘적극 동의’했고 12%가 ‘대체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반면 응답자의 67%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와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쪽이었다.대럴 릭비 베인사 사장은 그러나 “해고는 분명히 잘못된 관리의 결과”라며 “성장률이 8%에서 3%로 떨어지는 정도는 인원의 자연감소 등을 잘 활용하면 대량해고에 이를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해고로 발생되는 남은 직원들의 불안감까지 감안하면 엄청난 경영실책이라는 계산이다.릭비 사장은 또 “설사 해고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 임금인상 스톡옵션 등 유형의 자산으로 동기부여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직원들을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시키고 일을 잘하면 칭찬을 많이 하는 등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무형의 자산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업세계에 불어닥칠 변화물결인터넷세대 가치, 뿌리 내린다경제의 하강국면은 직업문화에도 많은 변화를 준다. 구조조정과 합병 등이 전통적인 직업관을 뒤바꿔 놓고 ‘신경제’의 파장은 새로운 문화를 가져다준다. 래드클리프공공정책연구소와 플리트보스톤금융은 올해 직업세계에 불어닥칠 5가지 변화의 물결을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인터넷세대의 가치가 뿌리를 내린다=닷컴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들이 불어 넣어준 가치는 젊은 근로자들 속에 살아 있다. 이들은 닷컴기업가처럼 단기적인 보상을 원하고 직업도 쉽게 바꿀 것이다. 10대 여성중 50%만이 안정된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응답할 정도다. 이 비율은 과거 80~90%에 달했다.● 복지의 개념이 바뀐다=신세대 근로자들은 임금인상이나 교육기회 확대가 복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가 자신들을 가치있게 여겨주길 원한다. 상급자와 보다 당당한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다.● 일과 가정생활이 분리되지 않는다=여행을 가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랩톱컴퓨터와 휴대용전화기를 가지고 간다. 또 직장인들의 3분의 2는 집에서 일을 한다. 이처럼 가정과 직장이 혼합되는 일은 더욱 비일비재해질 것이다.● 회사일보다 개인과 가족의 일에 더욱 관심을 쏟는다=직장생활을 하는 남자들의 최우선 가치가 계속 바뀔 것이다. 요즘 남성 가장(21~39세)들은 자신들의 할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82%가 최우선 가치를 가정에 두고 있다. 이들은 또 근무시간 외에는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여행이나 개인생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업무시간의 유연성이 높아진다=파트타임이나 재택근무 등을 통해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것이다. 실제 파트타임 형태의 근무가 늘어나면서 여성변호사들의 이직률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여성변호사 가운데 40% 정도는 이미 전업근무시스템에서 벗어난 것으로 조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