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투자 1순위로 분산컴퓨팅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주에 웹을 누르고 새로운 인터넷 사용환경을 만들 것으로 지적한 X인터넷도 분산컴퓨팅에 기술적인 기반을 두고 있다.분산컴퓨팅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인터넷 사용환경 그 자체를 바꿔 놓을 만한 기술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부터 컴퓨터 네트워크 장비를 설치하는 방법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분산컴퓨팅이란 통신망으로 연결된 여러 컴퓨터들을 하나로 묶어 마치 하나의 컴퓨터처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중앙의 컴퓨터에 단말기를 연결해 사용하는 기존의 중앙 집중식과 달리 각 컴퓨터가 중앙컴퓨터와 단말기 역할을 동시에 한다. 이런 방식을 Peer to Peer(P2P)라고 한다. Peer란 동료 혹은 대등한 사람이란 뜻으로 컴퓨터들이 대등한 관계로 연결됐다는 의미다.PC에 저장된 MP3파일을 상호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냅스터도 P2P컴퓨팅의 초보적인 형태의 일종이다. 분산컴퓨팅의 실용성은 CPU의 정보처리 능력이나 저장장치 혹은 네트워크의 용량을 공유해 이들 시스템의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데 있다. 날씨를 예측하거나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혹은 단백질의 구조를 모델링하는 등의 작업을 할 때 분산컴퓨팅이 위력을 발휘한다. 분산컴퓨팅으로 수백대의 컴퓨터를 연결해 하나의 컴퓨터처럼 사용하면 슈퍼컴퓨터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복잡한 시뮬레이션 작업을 마칠 수 있다.실제로 인텔과 같은 회사는 분산컴퓨팅을 활용해 막대한 비용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넷배치라는 분산컴퓨팅 프로그램을 이용해 펜티엄칩 개발 프로젝트를 예정보다 8주 앞당겨 종료했다. 개발비용도 5억달러나 절감했다. 넷배치의 운영원리는 간단하다. 한 개발자가 시뮬레이션 작업을 실행하면 넷배치가 연결된 컴퓨터들 중 쉬고 있는 컴퓨터를 찾아 작업을 배분한다. 여러 컴퓨터의 CPU를 동시에 이용하기 때문에 작업효율이 훨씬 높다. 고성능 컴퓨터를 추가로 구입하지 않고도 슈퍼컴퓨터를 구매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보는 것이다.인텔, 비용절감 효과 … 새 e-비즈모델로 주목인텔의 기술개발을 총괄하는 패트 겔싱어 사장은 지난해 8월 인텔 개발자 포럼에서 향후 10년간 넷배치를 이용하면 컴퓨터 자원 활용도를 35%에서 80%까지 올릴 수 있다는 수치를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저장장치 활용도는 20배, 네트워크 활용도는 75배의 효과가 있다고 했다.분산컴퓨팅이 자리잡으려면 웹의 HTTP와 같은 공통의 프로토콜과 강력한 보안메카니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미국에선 지난해 말 인텔을 비롯한 휴렛패커드, IBM 등 기존 IT 대기업과 그루브네트워크, 애플수프, 어플라이드메타컴퓨팅 등 19개 벤처 기업이 워킹 그룹을 결성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월 30여 기업이 참여한 한국P2P협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사업화와 표준 수립에 힘쓰고 있다.분산컴퓨팅 기술은 20년이 지난 오랜 기술이지만 21세기 초에 인터넷과 결합, 도약을 앞두고 있다. 4~5년전 웹보급 초창기엔 어느 누구도 e-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분산컴퓨팅 역시 현재로선 예측하지 못한 사업모델로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어 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