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가 촉망되는 엘리트 관료들이 자리를 걷어차고 벤처기업으로 줄지어 이동했던 시절이 한국에 있었다. 재작년 말과 작년 초를 전후해 특히 그랬다. 리스크는 높더라도 창조적이면서 보람이 큰 업무를 해보고 싶었다는게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다.이같은 사정은 일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조금 늦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관료들의 벤처행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벤처회사로 말을 갈아탄 일본의 엘리트 관료들중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단연 야스노베 신(安延伸, 45) 미국 스탠퍼드대학 일본센터 연구부문 소장이었다. YAS라는 IT(정보기술) 관련 컨설팅 회사를 이끌며 사장도 겸하고 있는 그의 벤처행은 그 자체가 당시의 통산성(올 1월6일부터 경제산업성)동료들에게 충격이었다.오카야마현 출생의 야스노베 사장은 엘리트관료의 필수코스인 통산성에 들어간 78년 이후 핵심보직에서 노른자위 업무를 맡아왔다. 퇴임하기 전인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전자정책과장을 맡아 일본의 최고 외화벌이 업종인 전자산업을 주물렀다. 관료직을 그만둘 때까지 주위에서는 그가 업무능력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일본 관료들의 정점인 사무차관 자리까지 무난히 올라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러나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위를 미련없이 박차고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컨설팅 회사를 차린데 이어 스탠퍼드대학과 새 인연을 맺었다.“아무리 스케일이 크다 할지라도 남의 일을 수동적으로 도와주기만 하는 것 보다 작더라도 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그는 통산성 보직이 출세가 보장된 자리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IT 시대의 일선 현장에서 뛰고 싶어 변신을 결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컨설턴트의 입장에서 본 벤처에 관한 그의 시각은 독특하다. 아무리 IT시대지만 천재적 아이디어는 필요없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새로운 노다지 비즈니스를 캐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연결시킬 수단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넘쳐난다는 것이다.백지를 붙잡고 처음부터 획기적인 것을 생각하려만 하지 말고 우선 주위에 있는 도구를 활용할 생각을 찬찬히 하라고 그는 권하고 있다. 무리한 도전, 모험보다는 기존의 여건을 1백% 이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그는 갖고 있는 것이다.무리한 도전보다 기존 환경 활용방안 제시야스노베 사장은 미국에서 소리없이 큰 인기를 끈 ‘카 컨비니’구락부를 성공적인 벤처사업의 한 예로 들고 있다.“카 컨비니 구락부는 전국적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갖추고 염가의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요란한 선전을 하지 않습니다. 차를 완벽하게 고쳐 준다고 장담한다든지 공장 곳곳에 난해한 용어를 써놓고 고도의 정비 기술을 보유한 것처럼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누구나 메뉴를 쉽게 고를 수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점에 온 것처럼 고객들이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데 주력합니다.”그는 패스트푸드식의 서비스, 분위기와 자동차 정비를 결합시킨 영업방식이 이 구락부의 성공요인이 됐다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벤처라 해도 세상을 단번에 놀라게 하는 기술, 서비스에만 매달리지 말고 주변에 널려 있는 일 속에서 성공의 힌트를 찾아 보라는 주문이다. 그는 우선 일본 IT업계의 조사와 기업간 제휴, 협력의 가교 역할을 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미국에 완패한 후 이제는 중진국 수준도 못된다는 혹평을 듣는 일본이지만 인터넷산업에서도 일본발 빅 비즈니스는 앞으로 얼마든 나올 수 있다는게 그의 장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