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직 내놓고 백의종군, 가족들도 적극 지원 … 채무조정·일본주주 경영간섭이 걸림돌

김석원 전쌍용그룹회장 가족들이 지난해 연말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새해 인사 겸 김전쌍용그룹회장의 손자 백일을 축하하기 위해 김전회장의 서울 신문로 집을 찾았던 것이다. 김전회장의 장남 지용씨(용평리조트 이사)는 99년8월 정주영 전현대건설명예회장의 손녀 유희씨(고 정몽필씨의 차녀)와 결혼, 지난해 9월 득남했었다.‘쌍용 패밀리’들은 이날 그룹 구조조정을 마무리지은 김전회장의 노고를 위로하며 ‘새해(신사년)에는 가족 모두가 쌍용의 재기를 위해 뛸 것’을 결의했다는 후문이다. 김전회장도 “새해에는 반드시 쌍용을 다시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김전회장은 신정연휴 동안 비장한 각오를 한 듯 새해에 출근(1월3일) 하자마자 쌍용양회 대표이사직을 내놨다. ‘최고 경영자로서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 쌍용그룹 구조조정 마무리단계에서 밝힌 김전회장의 대표직사임은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렇다면 김전회장은 경영일선은 물론 아예 쌍용을 떠나기로 작정한 것일까.계열사 대거 매각 … 피나는 구조조정 노력김전회장은 98년2월 국회의원(경북달성)직을 내놓고 쌍용양회 회장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했지만 처음엔 쌍용그룹의 구조조정 계획에 브레이크를 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전회장은 다른 재벌그룹들이 주력 기업까지 해외에 매각하는 것과는 달리, 가급적 핵심기업을 팔지 않고 버티면서 자력회생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했다. 때문에 김전회장은 동생 김석준 회장이 힘들게 성사시켰던 쌍용자동차와 쌍용제지 매각을 내내 못마땅해했다. 당시 금융계에선 일부 쌍용경영진들이 김전회장의 눈과 귀를 가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이들에게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우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하지만 김전회장은 쌍용그룹에 대한 고강도 처방이 필요함을 절감하자 곧바로 대대적인 ‘계열사 매각행진’에 들어갔다. 김전회장은 쌍용증권 매각을 시작으로 쌍용정유(현 에쓰오일), 은화삼CC, 쌍용중공업, 쌍용정보통신, 용평리조트 등 닥치는 대로 팔아치웠다. 김전회장은 부친(창업주 고 김성곤회장)이 그룹 모태의 발원지로 삼았던 쌍용양회의 동해공장과 용평리조트를 회사로부터 떨어내면서 가장 가슴아파했다고 한다. 김전회장은 평소 쌍용그룹계열사들중 그가 일군 용평리조트와 쌍용자동차에 강한 애착을 보였었다.김전회장은 쌍용양회의 오랜 동반자인 일본 태평양시멘트사로부터 3천6백50억원 상당의 외자를 유치하기도 했다.김전회장의 이같은 그룹 구조조정 노력에 가족들도 간접 지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쌍용가에 정통한 관계자는 “김전회장은 해외자본을 유치하면서 그의 누나 및 매형들로부터 간접적인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전회장의 매형인 이승원 전쌍용정유 회장은 쌍용정유 설립초기부터 맺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사와의 친분으로 외자를 유치하는데 일조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전회장의 이같은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쌍용그룹은 구조조정전 25개 계열사에서 1월 현재 쌍용양회 (주)쌍용 쌍용화재 등 7개 기업으로 축소됐다. 이로인해 그룹매출(순위)은 30조원(재계 6위)에서 지난해 4월말 기준으로 5조~6조원(재계 10위)으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쌍용그룹은 부채율이 7백%(98년)에서 1백89%로 축소돼 재무상태가 좋아졌고 직원수도 구조조정전 2만5천여명에서 2천5백~3천여명으로 줄어 몸집이 아주 날씬해졌다. 따라서 쌍용그룹은 격변기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재계로부터 평가받고 있다.“지분율 축소됐을 뿐 경영은퇴 아니다”김전회장은 올해초 쌍용양회 대표이사직을 사퇴, 일반 이사로 물러났다. 김전회장은 이와 함께 그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하고 있던 쌍용양회 지분 9.9%를 회사에 무상 증여해 최소한의 지분(5%)만 보유했다.쌍용그룹 관계자는 “김전회장이 회장직을 내놓고 지분율이 다소 축소됐지만 회사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쌍용가의 패밀리 일원도 “김전회장이 쌍용재건을 위해 할 일이 아직도 많다”며 “특히 거액을 투자한 일본 태평양시멘트는 김전회장이 경영일선에 남아 있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쌍용그룹의 주력회사인 쌍용양회는 일본 태평양시멘트의 지분참여와 김전회장의 대표이사직 사임으로 쌍용양회측과 태평양시멘트측이 각 6명씩 지명한 12명의 이사회(공동대표 명호근 사장, 스즈키 부사장)로 운영될 전망이다.김전회장은 일단 쌍용양회 이사회 멤버로 경영에 간접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재계는 김전회장이 평이사에서 쌍용재건을 이뤄 능력을 재인정 받은후 경영일선에 참여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는 김전회장이 쌍용양회측 이사들의 실질적인 수장인데다 외자유치에 적극 나섰던 이승원 전쌍용정유회장 등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정유를 탄생시킨 주역인 이전회장은 최근 경영능력을 인정한 여러 경제단체들로부터 영입제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전회장도 매형인 이전회장에게 경제단체 활동을 적극 권유했다는 후문이다.그러나 김전회장의 재기를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두가지 숙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채권단의 채무조정을 이끌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태평양시멘트의 경영간섭을 막아내는 것이다.먼저 채권단은 쌍용양회가 쌍용정보통신의 지분을 매각하면 1조1천억원의 채무를 조정해주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쌍용양회는 정상이자 납부 차입금 규모가 1조8천억원선으로 대폭 축소돼 경영정상화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채권단이 요구하는 쌍용양회와 미국 투자회사 칼라일의 쌍용정보통신 주식매각 본계약을 맺어야 채무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쌍용양회는 1월14일 칼라일과 쌍용정보통신주식 3백84만1백52주(71.1%)를 매각키로 기본계약을 체결하면서 늦어도 2월15일까지 구체적인 계약조건을 담은 본계약을 맺기로 했다.또다른 문제는 일본 태평양시멘트측의 쌍용양회에 대한 경영간섭 배제다. 일본 태평양시멘트는 쌍용양회에 3천6백50억원을 출자해 29.4%의 지분을 확보, 올해부터 공동경영에 나섰다. 세계 7위(생산능력)의 태평양시멘트는 쌍용양회(세계 13위)를 합병, 일본은 물론 동북아지역 특히 북한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이에 대해 쌍용 관계자는 “채권단의 채무조정은 쉽게 마무리지어질 것이고 일본측의 경영간섭 확대는 안전장치들이 마련돼 문제없다”고 장담하고 있다.경영자로서 새롭게 태어날 김전회장의 모습이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