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저가 공세로 ‘가격 차별화’ 없어져 … 독자브랜드 개발 등 대응책 마련 부심

인터넷PC사업이 계속되는 판매부진으로 존폐 기로에 섰다. 현대 멀티캡 조립라인.정부가 인터넷 대중화를 위해 우체국을 통해 PC를 저렴하게 보급해온 인터넷PC사업이 시행 1년여만에 갈림길에 섰다. 계속되는 판매부진으로 사업자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사업이 존폐 기로에 선 것이다. 출발당시 12개였던 PC보급 업체수가 1월말 현재 7개로 줄어들었다. PC보급 업체의 축소는 바로 사업 위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사업자가 현재 수준을 계속 유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인터넷PC사업을 살리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지난해 6월 세진컴퓨터랜드가 부도로 사업을 포기했고, 이어 4/4분기에는 엘렉스컴퓨터, 컴마을 등이 인터넷PC 사업을 접었다. 엘렉스컴퓨터는 PC사업 자체를 정리했으며 컴마을은 우체국 판매가 실효가 없다고 판단, 자체 대리점에 집중하면서 인터넷PC 사업을 포기했다.또 지난해 12월말에는 용산전자단지 상점가 진흥사업협동조합이 사업권을 한별텔레콤으로 넘기며 사업에서 손을 뗐다. 사업권을 이전 받은 한별텔레콤도 곧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인터넷PC 사업에 손을 들었다. 이렇게 해서 현재 로직스컴퓨터, 성일컴퓨텍, 세지전자, 현대멀티캡, 주연테크, 아이돔, PC뱅크엔닷컴 등 7개 업체만 남았다.문제는 남은 업체들마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대부분 인터넷PC 사업을 올해도 지속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지만 시장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기 때문. 업계에서는 올해 경기 상황과 맞물려 대기업 등 PC 메이커들의 가격 인하전이 지속될 경우 나머지 사업자도 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인터넷PC 사업의 최대 메리트가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현대멀티캡 심종수 과장은 “사업초기만 해도 대기업 동급 제품과 비교해서 30만원에서 40만원 저렴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10만원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메이커들과의 가격 경쟁력이 없는 한 시장에서 버티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이처럼 인터넷PC 사업이 위기 상황으로 몰리게 된 원인은 계속된 판매부진이다. 지난 99년 말 사업발표와 함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인터넷PC 판매가 2000년 초부터 계속적인 감소추세를 보이면서 2000년12월말 현재 7개 인터넷PC 업체의 총 판매량은 7천8백26대로 99년 동기 6만1천3백89대에서 10배 가까이 떨어졌다.특히 월4만대 수준이던 판매량이 지난해 5월을 지나면서 절반(2만1천대)으로 떨어졌고 4/4분기에 접어드는 10월에는 7천7백50대로 천단위로 내려왔다. 판매수량 면에서 보면 인터넷PC사업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어떤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인터넷PC가 조만간 시장에서 사라지고 이 불똥이 소비자에게도 튈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살길 찾아 사업계획 수정 늘어이런 가운데 남아 있는 사업자들은 인터넷PC와 별도의 브랜드 제품을 내놓고 이에 경영력을 집중하는 등 독자적으로 살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업체별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업체들의 인터넷PC와 독자브랜드PC의 판매비율은 3 대 7 정도로 인터넷PC 사업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의욕을 갖고 추진한 인터넷PC 사업은 명목상으로 하고 있을 뿐 독자브랜드 위주의 사업전략이 주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인터넷PC협회와 일부 회원사가 시장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신제품 출시나 공동판촉전을 기획하고 있으나 시장상황이 워낙 나빠 이렇다할 대책마련이 어려운 실정이다.로직스컴퓨터는 경기가 좋을 때 월 1천5백대에서 2천대 정도 팔리던 인터넷PC가 최근에는 월 1백50대로 뚝 떨어졌다. 로직스컴퓨터는 우체국 판매는 줄이는 반면 대리점망을 통한 인터넷PC 판매는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판매부진에 대해 박성한 과장은 “경기불황과 인터넷PC에 대한 가격 메리트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우체국 적금 등 금융상품을 이용할 만한 대기수요가 모두 소진된 것도 한 이유”라며 “특히 메이커, 조립PC 등 업체들이 저가제품에 다양한 금융상품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직스컴퓨터는 현재 자체 모델과 인터넷 PC모델을 7 대 3으로 생산 판매하면서 시장을 지켜보기로 했다.세지전자는 지난해 잘 나갈 때는 월 수백대를 판매했으나 최근에는 고작해야 10대를 넘지 않는다. 세지전자는 기본적으로 인터넷PC 사업은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노정자 주임은 “지금은 최악의 상황이다. 인터넷PC협회에서 논의한 대책회의 자료를 바탕으로 계획을 잡을 것”이라고 말해 인터넷PC 사업에 대한 조정계획이 있음을 내비쳤다.인터넷PC 최대 판매업체인 현대멀티캡도 일단 인터넷PC판매는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판매목표도 월 1천대에서 2천대 수준으로 낮게 잡았다. 심종수 인터넷PC 사업팀 과장은 “인터넷PC의 장점으로 가격 차별화가 있었지만 메이커 등 저가공세에 효과가 없어졌다”며 “저가정책을 유지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신경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멀티캡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월 판매대수가 2천대 이하로 떨어졌다. 상반기 피크일 때 월 1만5천대와 비교하면 현격히 줄어든 양이다.인터넷PC를 1월말 현재까지 10만대 정도 판매한 현대멀티캡은 우체국쪽으로 60%를 공급하고 있다. 성지컴퓨텍도 1월 한달 동안 25대를 팔았으며, 판매량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중장기 대책 마련 절실한편 업체들의 어려움에 대해 인터넷PC협회도 대응책 마련에 발벗고 나섰으나 뾰족한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16일에는 대응책 마련을 위해 인터넷PC협회에서 업체들을 모아놓고 회의도 가졌다. 인터넷PC협회 조승래 차장은 “현재 정보통신부와 협조해 대안을 찾고 있다”며 “본래 취지가 좋은 만큼 인터넷PC사업은 지속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하지만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조만간 대응책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대책마련에 나선 정통부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다. 지난해 초부터 인터넷PC사업의 민간이양을 추진해오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민간 이양건은 일단 외부상황이 어려운 이유로 보류시킨 상태다. 특히 인터넷PC업체들이 독자 브랜드를 내놓고 제 갈길을 찾고 있고 내수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내리더라도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터넷PC사업이 ‘시장논리를 위배했다’는 비난(?)을 받아왔기 때문에 새로운 전략을 마련할 경우 ‘관주도의 사업’이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업계에서는 중소업체를 위한 우체국 판매 공동브랜드, 공동AS 등 장점을 내세워 어렵게 이룩한 인터넷PC의 성공을 단기적인 대책으로 회복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일반 PC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가 2강체제를 구축하고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상황에서 단기적인 대책으로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터넷PC를 구매한 소비자들을 생각하면 이제 와서 그만두기도 어렵다. 중장기 차원에서 인터넷PC의 민간이양을 마무리짓고 각 회원사들이 원가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체계적인 AS를 구축해 소비자의 신뢰회복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