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지만 문구류 값이 특히 비싸다. 볼펜 한 자루도 최소 1백엔 이상 주어야 하고 노트도 어지간하면 권당 2백엔이 넘어간다. 복사지와 프린터 잉크 등 각종 소모품 역시 한국보다 3~4배씩은 값이 더 나간다.아스쿠루(Askul/www.askul.co.jp)는 일본 사회의 이같은 약점을 파고 들어 급성장한 대표적 틈새회사다. 사업 내용은 문구류, 사무용품, 오피스 가구와 집기 및 각종 인테리어를 통신판매하는 것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문구용품만 파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 및 주변기기와 소프트웨어, 서적등도 이 회사의 핵심 상품중 하나다. 문구전문으로 출발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식료품, 일용잡화품, 청량음료수, 의류, 가정용전기제품도 통신판매로 팔고 있다. 카탈로그로 판매하는 상품 수가 약 1만1천종에 이르니 그야말로 웬만한 백화점에 버금간다.아스쿠루의 이와타 쇼이치로 사장도쿄에 본사를 둔 이 회사가 일본 언론과 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생긴 것 자체가 92년 5월이었으니 기업의 역사도 길지 않다. ‘프라스’라는 문구전문 메이커의 사내 사업부로 발족된 후 사업규모가 커지자 별도 자회사로 독립한 것이 97년5월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에 꽂힌 외부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다. 사장을 맡고 있는 이와타 쇼이치로(岩田彰一郞, 51)는 일본 경제계를 이끌어 갈 파워 엘리트 중의 한명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의 캐릭터와 경영 수완은 일본 최고경영자들의 연구대상으로 자리 잡았다.‘아스쿠루’라는 이름은 ‘아스’(내일이라는 뜻의 일본어)와 ‘쿠루’(온다는 일본어 동사)라는 말을 결합시켜 만든 것이다. 이와타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밝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회사측은 “오늘 주문하면 내일까지는 상품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서비스 명을 뜻하기도 한다”고 밝히고 있다.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신속한 서비스의 의미를 담고 있으니 회사 이름부터 고객에게 신선하면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다른 기업 정보센터 역할일본 언론은 아스쿠루의 급성장 비결로 고객들로부터 구해진 풍부한 데이터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고객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한 유연한 사고와 노력을 꼽고 있다.사업을 시작하면서 쌓인 금쪽같은 데이터를 하나도 묵히지 않은 ‘혜안’과 무리한 요구라도 고객의 의사를 최대한 수용한 ‘열린 마음’이 성장의 젖줄이 됐다는 분석이다.아스쿠루의 돋보이는 데이터 활용감각은 이 회사가 일찍부터 다른 기업의 정보센터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이스쿠루 홈페이지(www.askul.co.jp)아스쿠루는 인터넷을 통한 거래 비중이 전체의 20%를 넘고 다른 것도 모두 카탈로그와 전화를 통한 통신판매로 이뤄진다. 따라서 이 회사의 콜(Call)센터에는 ‘이런 상품을 사고 싶다’ ‘이 상품은 이같은 점이 좋았다’ ‘왜 이 상품은 이렇게 밖에 못 만드느냐’는 식의 고객들 반응이 매일 산더미처럼 쌓인다. 아스쿠루는 이같은 고객의 소리를 모두 데이터화시킨다. 그렇지만 데이터를 혼자만 알고 사용하지 않는다. 아스쿠루에 상품을 공급하는 회사에는 희망할 경우 모두 제공한다. 마쓰시타전기, 일본 코카콜라, 네슬레 일본 등 약 30개사가 아스쿠루와 파트너 계약을 맺고 데이터를 받아쓰고 있다. 판매 현장에서 수렴된 살아 있는 정보를 메이커들이 제품의 개발과 개량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스쿠루는 고객기업과 상품공급업체들에 단순한 사무용품 구매대행업체가 아니다. 메이커와 고객기업을 이어주는 가교역할로서 그 존재를 더욱 높이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파트너 기업들은 아스쿠루로부터 고객들의 구매행태에 관한 소중한 정보도 공급받고 있다.아스쿠루가 92년5월부터 사업을 해오면서 축적한 정보의 매력은 특정 고객의 구매패턴과 소비스타일이 한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상품 메이커들에는 아스쿠루가 더 없이 고마운 파트너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아스쿠루는 데이터를 이용한 독자적 판촉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우선 고객의 구매패턴을 정밀 분석해 비슷한 유형별로 묶어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각 그룹별 고객들의 공통점을 찾아낸 후 이에 맞는 별개의 판촉행사를 수시로 전개하고 있다. 각 고객기업들의 특성과 사정에 맞는 타깃 마케팅을 통해 잠재 구매욕구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이 회사의 앞선 마케팅센스는 ‘추천상품’제도를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가령 A, B, C의 3가지 상품을 구입한 고객의 80%가 D라는 상품을 구입하고 있다는 데이터가 있다고 하자. 이 회사는 이 데이터를 기초로 A, B, C의 3가지 상품은 구입하면서 D를 사지 않는 고객을 찾아낸다. 그리고 웹 페이지에 추천상품이라는 이름으로 D상품에 관한 정보를 화면에 지속적으로 띄운다. 다른 고객들보다 이 고객이 D상품을 살 확률이 월등히 높은 것은 물론이다.(그림 참조)아스쿠루는 사업을 확장해 오는 과정에서 경쟁타사의 제품을 취급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거의 1년간 사내에서 논란을 벌인 적이 있었다. 아스쿠루는 프라스의 사내 통신판매 사업부로 탄생했다. 프라스의 제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해 설치된 만큼 경쟁사 제품을 판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왜 이런 상품이 없느냐’며 경쟁사들의 인기 상품을 찾는 일이 허다했다. 프라스의 사내 부서에 대고 경쟁사 제품을 주문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무리한 요구였다.경쟁사 제품도 판매, 오히려 매출 증가아스쿠루는 하지만 벽을 낮추고 문을 열었다. 고객들이 경쟁사 제품을 찾는 것은 프라스의 제품 자체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 하에 경쟁사 제품을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다.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상품력이 강화되자 고객들의 이탈 사례가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 유연한 사고를 높이 평가한 기업들이 새로 아스쿠루의 고객이 되어 주었다. 매출이 날개를 단 듯 쑥쑥 불어 났다.아스쿠루의 장사 방식과 노하우는 일본 재계의 관심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2000년 가을 일본 재계의 PHP연구소는 2000년을 빛낸 기업들의 비즈니스모델 20개를 선정하면서 미니기업 아스쿠루를 초일류기업들과 같은 대열에 올려 놓았다. 아스쿠루는 2000년12월말 현재 31억1천5백50만엔의 자본금을 갖추고 있으며 2000년 중 약 5백억엔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외형이 수조엔대에 이르는 자이언트 기업이 즐비한 일본 재계에서 아스쿠루의 위상은 보잘 것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스쿠루는 임직원 1백29명의 평균 연령이 37. 8세에 불과할 만큼 젊다는 점을 또 다른 재산으로 갖고 있다. 이미 1백20만 고정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6백20만 일본 기업들의 95%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모두 자신들의 잠재고객이라고 장담할 만큼 의욕과 자신에 가득차 있다.“아스쿠루의 고객기업은 현재 1백 20만을 넘어섰습니다. 한 업체당 평균 13명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전국으로 따지면 적어도 1천5백만명이 아스쿠루와 인연을 맺고 있는 셈입니다. 이야말로 거대한 네트워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이와타 사장은 “기업, 사무실을 하나로 묶는 ‘해피 오피스 네트워크’ 구축에 최종목표를 두고 있다”며”아스쿠루는 엄청난 인력과 직장을 하나로 끌어 안으며 더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