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매물 증가에 M&A전용펀드까지 합세… 50억~1백억원 인수가능 기업 '잘 팔려'

자금난에 빠진 벤처기업들이 최근 투자회사를 찾기 보다 M&A 파트너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추가 펀딩에 실패해 운영자금이 고갈됐거나, 기업을 공개할 때까지 사업전망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한 벤처기업가들이 기업을 매물로 내놓는 경우가 증가한 것이다.이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올 초부터 M&A 중개업체들은 인수업체를 찾아달라는 투자자와 매물로 내놓는 기업들을 방문하느라 눈코 뜰새가 없다. 정부도 숨어 있는 자금을 양지로 끌어내고 벤처업계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각종 M&A 활성책을 내놓고 있다. M&A전용 사모 뮤추얼펀드 설립 허용을 위한 법안도 국회를 통과한 상태다.전례없이 성장할 올해 M&A시장, 과연 벤처기업의 옥석을 가려내고 적정가치를 찾아줄 것인지, 아니면 벤처기업을 머니게임의 희생자로 삼을 것인지 관심이 뜨겁다.시장규모 갈수록 확대일로올해 M&A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측되는 요인은 매물로 내놓은 기업과 이를 인수하려는 투자자의 증가, 정부의 지원정책 그리고 M&A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미국 유럽 등 외국계 M&A 자본까지 가세해 토종과 외국계 세력의 각축전 양상까지 예상된다.올해초 옥션과 이베이의 인수합병을 중개한 KTB네트워크는 구조조정2팀을 아예 M&A전문팀으로 개명, 시장 선점에 나섰다. 구본용 이사가 총괄하는 M&A팀은 상반기 코스닥 기업중 1~2개 M&A사례를 성공시킬 계획으로 알려졌다. 남경우 M&A팀 과장은 “정부의 공개매수제도 완화와 M&A사모펀드 시행으로 기업인수합병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M&A도 지난해 회사 내부에 관련된 M&A협상을 진행하던 것에서 벗어나 외부 투자자들의 의뢰를 받아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코미트 창업투자, G&G구조조정회사 등도 드러나지 않게 M&A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이코퍼레이션은 최근 ‘벤처기업의 성공적인 기업공개와 M&A 전략’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면서 M&A시장에 대한 업계의 관심을 확인했다. 박찬선 이코퍼레이션 이사는 “벤처기업가들이 투자의 수단으로 M&A를 이용할 수 있다는데 공감했다”며 “투자시장이 얼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M&A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M&A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99년 5백50건에 달했던 M&A건수가 지난해 7백건이 넘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기업인수의 처리건수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48%가 증가했다.(표1 참조) 한경우 공정거래위원회 사무관은 “정보통신 분야의 벤처기업간 M&A가 활발했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올해M&A시장이 커질 전망이다.미국·유럽 자금도 ‘기웃 기웃’이처럼 시장 성장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M&A중개업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국내업체뿐 아니라 외국계 자금까지 들어오고 있는 실정. 예컨대 미국 IT투자전문 펀드인 ICG(International Capital Group)는 올해 ICG아시아를 통해 국내 M&A투자에 5백억원을 쏟아붓는다. ICG아시아는 ICG와 홍콩 리카싱 그룹이 합작한 회사로 홍콩증시에 상장돼 있다. 이곳의 국내 에이전시인 박희강 이코퍼레이션 파트너스 부사장은 “단기간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들어오는 자금은 아니다. 본사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장기간 투자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미국자본뿐 아니라 유럽자금도 M&A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M&A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업체들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유럽계 투자자를 만났다”며 “국내 시장에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예전과 비교해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의뢰 횟수가 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점. 이들 외국투자자는 정부가 나서서 벤처투자의 대체수단으로 M&A를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M&A 물망 오르는 기업은?그렇다면 투자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기업을 M&A 물망에 올리고 있을까. 업계에 따르면 50억~1백억원으로 인수가 가능한 중소 벤처기업이 주요 타깃이다. 코스닥이나 거래소에 등록돼 있는 기업은 투자 1순위. 일차적으로 시장에서 기술력과 영업력을 인정받은 업체이기 때문이다. 이들 투자자는 1백억원 미만의 자금으로 회사 지분의 20~80%를 매입하기를 희망한다. 실제 올해 초 전자부품 무역업체인 아모슨은 거래소에 상장된 KEP전자를 49억원에 인수했다.이코퍼레이션에서 주최한 '벤처기업의 성공적인 투자회수 전략' 세미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 국내는 거대 투자세력보다 수십억원대의 자금으로 기업을 인수하려는 세력이 대부분”이라며 “이들중엔 통신업체 임직원들이 회사주식을 팔아 세력을 형성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투자 2순위는 부동산 등 유형의 자산이나 기술력, 영업력 등 무형의 자산이 시장에서 인정받는 업체다. 특히 외국계 M&A자본이 이들 기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단순한 투자이득보다는 투자업체와 인수업체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즈니스 모델이 확실하고 기술적 비전이 있는 기업은 외국투자자들에게 좋은 가격으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이들도 인수업체의 지분중 적어도 20%이상은 확보해야 기술이전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2대 주주 이상 올라서는 것이 목표.이밖에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기업으로는 기술력이나 자산가치는 없더라도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된 곳이나 영업력은 약해도 특허기술을 보유한 곳이다. 적어도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는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쉬고 싶은 벤처 많은 것도 한 요인벤처기업의 M&A가 활성화되는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벤처기업가들이 상당히 지쳐 있다는 점이다. 기술력 하나만 믿고 창업을 했다가 직원 관리, 회계 등 기본적인 경영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하자 그만 지쳐버린 것. 일부 벤처기업가들 사이에선 “창업한지 3년이면 체력과 아이디어가 고갈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지난 98년 인터넷 역경매를 시작한 K사장은 “조만간 사업을 후배에게 물려주든지 다른 업체에 인수합병되든지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다른 사업을 하기 전 조금 쉬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통신관련 회사를 친구와 창업했다가 다시 샐러리맨으로 돌아간 L사장도 “기술력만 믿고 창업했던 것이 실수였다”며 “직원관리 등 회사 경영이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98년 벤처붐이 불면서 시작된 창업열기가 올해 3년째를 맞이하면서 퇴색된 느낌을 주는 것도 이때문. 새로운 실력자들이 열정을 갖고 들어오기 위해서는 M&A시장이 활성화돼 실패자들의 퇴로를 틔워줘야 한다는 논리도 이런 이유로 설득력을 얻는다.서울 삼성동에서 투자자문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K사장은 “국내도 팔기 위해 회사를 창업하는 사례가 늘어야 한다”며 “기술력을 갖춘 사람들은 회사를 창업하지 말고 기술력을 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사장은 실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1년6개월 전 순전히 기술인력 5명을 모아 회사를 세웠고, 최근 미국 통신업체에 2백억원에 매각하는 성과를 올렸다.서울 테헤란로기업심사 전문기관 양성 시급전문가들은 M&A시장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하지만 아직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기업실사 전문기관이 없다는 점. 기업인수 핵심은 인수대상 기업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업계 전문가는 “금융감독원이 정한 본질가치 산정기준도 있지만 너무 단순하다. 기술의 미래가치를 분석하거나 영업력, 마케팅력 등 무형 가치를 판단하는 기술이 외국에 비해 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외국업체와 M&A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기업가치 산정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옥션과 이베이의 인수합병을 중개한 박훈 KTB네트워크 이사는 “DCF방식, 본질가치 산정 방식 등 여러 가지를 했지만 정답은 없었다”며 “코스닥이나 미국의 나스닥 분위기도 가치 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등 힘든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이에 정부측 설정선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수석위원은 “정부는 인터넷 기업간 M&A가 활발해지도록 인터넷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인터넷기업 거래소’를 3월중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M&A시장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은 기업간 주식교환이 사실상 금지돼 있다는 점. M&A중개업체 관계자는 “두 회사간 순수한 주식 교환이 불가능해 현금출자나 현물출자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전문 회계법인에 의뢰해 값비싼 비용을 들여 기업가치를 산정해야 하기 때문에 제3자만 혜택을 본다”고 지적했다. 살기 위해 인수합병을 하는 기업이 주식교환에 따른 양도세, 기업가치 산정을 위한 회계비용 등을 지불해 결국 M&A전보다 자금난을 더 겪는다는 지적인 셈이다.M&A펀드, 시장에 어떤 영향 미칠까적대적 M&A 활성화 물꼬 … 주가에 긍정적 영향올해 M&A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측되는 주요 이유중 하나는 정부가 적대적 M&A를 활성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2월23일 국회 재경위는 M&A(기업인수합병)를 목적으로 하는 뮤추얼펀드의 설립을 허용했다. 기존 증권투자회사법은 뮤추얼펀드가 특정기업의 경영권을 지배할 정도로 지분을 보유할 경우 의결권을 중립적으로 행사하도록 ‘섀도우 보팅(Shadow Voting)’ 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은 M&A전용 사모 뮤추얼펀드에 대해 의결권을 인정했다.적대적 M&A 활성화의 물꼬를 튼 이번 개정안 통과로 기업들은 합법적으로 주가관리에 나설 수 있게 돼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금이 적고 주가가 떨어진 기업들은 주가관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서다. 이때문에 기업인들이 소액주주를 존중하는 풍토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김재환 재정경제부 사무관은 “개정법률안 및 시행령 공포와 금감원 등록절차 등을 감안할 때 3월 중순에 M&A전용 사모뮤추얼펀드가 설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시행령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아 M&A 전용펀드가 취득한 주식을 3개월간 매각할 수 없는 조항은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단기적인 주가 차익만을 노리고 무분별하게 주식을 매집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항은 시행령에 어떻게든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개정안이 시행되면 M&A 전용펀드 설립을 희망할 경우 49명 이하로부터 자금을 모아 뮤추얼펀드를 만든 뒤 M&A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정관에 명시해 금융감독원에 등록하면 된다.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일반 펀드보다 고수익을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