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관련업체 ‘불황 탈출 꿈’ 레이스 시작 … 인프라 부족, ‘반짝 과열’ 우려도

2월22일 오전 9시 신라호텔 루비룸. ‘리츠의 소개와 기법에 관한 국제 워크숍’ 참석자들이 속속 자리를 채웠다. 정희수 KDI연구소장, 글렌 뮐러 존스홉킨스대 교수, 클라라 라우 무디스 부사장 등이 강사로 나선 이날 세미나에는 ‘리츠에 관심있는’ 기업·단체 실무자 50여명이 1인당 55만원의 참가비를 내고 참여했다.오는 7월이면 선진국형 부동산 간접투자상품 리츠(REITs·Real Estate Invest-ment Trusts)가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소액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 수익을 배당하는 리츠는 요즘 부동산업계 최고의 이슈다. 이미 부동산을 보유한 기업체, 은행·보험사 등 금융기관, 부동산컨설팅사, 감정평가·회계법인, 외국계 투자펀드 등 수많은 관련업체들이 리츠를 향해 레이스를 시작했다. 리츠사를 설립, 직접 운용을 검토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노코멘트로 일관하면서 관망하는 곳도 적지 않다. 자산관리(Asset Management)회사, 시설관리(Facility Management)회사, 투자자문회사 등의 방식으로 시장에 합류하려는 군소업체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리츠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곳은 건설업계와 외국계 ‘큰손’인 투자 펀드들. 하지만 외형상으로는 모두 ‘정중동(靜中動)’ 상태다. 보안이 요구되는 사업제휴·공동출자 문제나 리츠사 설립 결정 등은 대개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건설업계, 전담팀 운영 물밑작업 분주건설업계의 경우 지난해부터 사내에 리츠팀을 신설, 기반을 다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조만간 리츠팀을 분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올해 초에 성능개선팀을 ‘현대리모델링’으로 분사, 리츠시장 진입을 본격화한 바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리츠 관련 테스크포스팀을 조직했다가 현재는 관련 계열사 리츠팀으로 분산시켰다. 삼성물산 주택부문과 삼성생명에서 리츠 전담팀이 운영되고 있다.한화그룹은 지난해 5월 ‘한화리츠’를 설립, 인터넷을 통해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향후 리츠사로 분사할 계획이 있으며 외국계 컨설팅사와 합작, 자산관리 분야로의 진출도 검토중이다. 이밖에 현대산업개발과 대림산업도 리츠 전담요원을 두고 시장 참여를 저울질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자산관리공사, 토지공사, 주택공사, 한국감정원 등 공기업들도 리츠시장 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전략기획팀, 토지공사는 부동산금융팀을 중심으로 전담 체제가 갖춰졌다. 자산관리공사의 경우 구조조정용 기업매물을 취급하는 업무 특성이 시장 선점에 유리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존스 랑 라살레, 아더 앤더슨, CB리차드앨리스, 쿠시맨앤웨이크필드, BHP코리아 등 외국계 부동산컨설팅사들은 주로 자산관리 및 투자자문에 관심을 두고 있다. 98년 이후 외국계 투자펀드의 국내 빌딩 매입을 주선해 온 이들은 해당 투자회사와 계약을 맺고 빌딩 등의 종합자산관리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 아더 앤더슨 관계자는 “리츠시장이 개막되면 건물가치 증진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대학교수들이 만든 투자자문회사 ‘저스트 알’, 온라인 부동산정보회사 ‘부동산114’, 리츠전문을 표방하고 있는 ‘코리츠’ 등 ‘리츠 효과’를 노리는 군소업체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저스트 알은 2월 초 미국 리츠시장 시찰단을 모집, 유명 리츠회사 등을 둘러보는 이벤트를 열었다. 향후 리츠사의 투자자문 역할을 맡겠다는 계획이다. 부동산114는 한국생산성본부와 함께 부동산금융전문가 과정을 진행중이다. 또 리츠 투자자문을 위해 ‘알투코리아’라는 자회사도 만들었다. 코리츠와 내집마련정보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투자클럽을 모집하는 형태로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외국계 투자펀드 우량부동산 확보 ‘경쟁우위’하지만 국내업체들 움직임 보다 한층 관심을 끄는 것은 외국계 투자펀드들의 의향이다. 가장 파워풀한 ‘전주(錢主)’인 외국계 투자펀드들은 사실상 국내 리츠시장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98년 이후 서울 도심 주요빌딩들만 1조5천억원 이상 사들여 리츠의 근간인 ‘빌딩 임대 수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부동산투자회사가 우량 물건을 확보하고 있느냐’가 관건인 리츠시장에서 경쟁 우위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2월22일 신라호텔 루비룸에서 열린 '리츠의 소개와 기법에 관한 국제 워크숍'.싱가포르투자청, 네덜란드 로담코, 미국 론스타어드바이저,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이 사들인 도심 빌딩들은 대부분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낼 수 있는 상위 10%에 속한다.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동산이 극히 한정돼 있는 가운데, 그 상당수를 외국계 펀드가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부동산투자회사법상 현물투자가 허용되고, 외국계 펀드가 국내 빌딩을 발판으로 리츠사를 설립한다면 주식시장처럼 ‘외국인 잔치’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그럼에도 대부분의 외국계 투자펀드들은 리츠사 설립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이들의 국내 빌딩 투자 목적이 소위 ‘치고 빠지는’ 단기 투자인 만큼 장기적인 포석보다는 당장의 수익률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한 외국계 컨설팅사 관계자는 “리츠사로 전환하는게 나을지, 매각이 나을지는 철저하게 수익률 비교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다우존스와 나스닥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지난해, 미국에선 리츠 홀로 27.4%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초저금리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그같은 수익률이 나온다면 그것은 ‘신화’나 다름없다.미국선 지난해 27.4% 수익률 기록부동산 전문가들은 3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리츠시장이 한국 부동산·주식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초기 리츠시장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익률을 관리, 어느 투자상품보다 나은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이야기가 증권사를 중심으로 나오기도 한다.문제는 리츠 운용을 체계화할 인프라가 없다는 것. 건설교통부는 올해 초부터 서울시내 11층 빌딩에 대한 임대료 조사를 시작, 리츠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수익률 분석 근거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처럼 매일 빌딩 임대지수가 경신되고 신뢰할 수 있는 미래가치지수까지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이런 상황에서 리츠상품이 쏟아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투자자 몫으로 돌아간다. BHP코리아 이의재 과장은 “인프라없이 초기 리츠시장이 과열될 경우 투자자들의 대량 피해도 예상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