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 경영수업 더 받은 뒤 홀로서기 나설듯 … 젊은세대 대거 부상 점쳐져

삼성가 3세 이재용씨(33)가 삼성 경영에 본격 참여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월28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김각중 전경련회장 희수기념 만찬에 참석, 올해 재용씨가 경영일선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돼 왔던 그의 경영참여 문제가 이건희 회장의 입을 통해 공식화된 것이다.재용씨는 일단 삼성전자 상무보(비등기이사)로 나서 그가 지난해부터 추진해왔던 e비즈니스사업을 추진하며 홀로서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그의 e비즈니스를 총괄기획하고 추진할 e삼성 등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물론 삼성전자 전반의 업무도 익힌다. 재용씨의 이번 경영일선 참여는 갑작스레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회장은 6년전 극비리 재용씨에 대한 대물림 경영수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분승계 작업을 추진해왔다.경영참여문제 95년부터 치밀하게 준비1995년3월7일 일본 도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자동차 정식출범(3월28일)을 20여일 앞두고 임경춘 삼성물산 일본본사 대표(부회장), 이학수 삼성화재 대표이사 부사장, 정준명 상무 등 측근 6명과 5시간15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가졌다. 삼성자동차의 첫 시동을 앞두고 이때 열린 최고위층의 마지막 점검회의엔 20대 후반의 한 젊은이도 끼어 있었다. 그 젊은이는 다름 아닌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수학중인 이회장의 외아들 재용씨였다. 그는 저녁식사까지 하며 열린 이 회의에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키며 이회장과 측근들의 대화 내용을 진지한 자세로 경청했다.정미소에서 출발한 이병철 창업자는 20세기 후반기의 황금산업인 반도체를 이회장에게 물려줬다. 아마도 이회장은 오랜 숙원사업이자 어렵게 따낸 자동차사업을 재용씨에게 물려주고 싶은 생각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회장은 삼성자동차 공식출범을 앞둔 뜻깊은 자리에 재용씨를 자연스럽게 참석시킨 것으로 알려졌다.재용씨의 경영참여와 지분정리작업은 사실상 회의 참석후 본격화됐다. 1996년1월말 이회장은 삼성그룹 관계사인 에스원을 상장하면서 총 상장주식수 1백44만주 가운데 자신의 몫 8.5%(12만2천4백주)를 재용씨에게 증여했다. 이회장은 또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중 자신의 몫을 재용씨에게 넘겨줬다. 재용씨는 부친으로부터 60억8천만원을 받아 증여세를 내고 남은 40여억원으로 이들 회사의 주식을 사들였다. 그후 재용씨는 이들 두 회사가 상장되면서 얻은 시세차익으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매입, 현재 이 회사의 대주주(25.1%)가 됐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19%)다. 결국 재용씨는 지분구조상 삼성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첫 경영수업 현장은 삼성전자이회장이 지난 98년 자동차사업을 포기한 것은 마지막 보루로 여겼던 기아자동차 인수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자동차에 근무했던 한 임원은 “기아자동차의 재무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부채가 어마어마해 이의 인수도 자동차사업을 지속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되지 않았다”며 자동차사업 포기 이유를 전했다. 이는 재용씨에 대한 대물림작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분석된다. 재용씨가 경영전면에 나서기 위한 새로운 발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인터넷 사업을 구상한 것은 1998년 7월. 삼성은 당시 삼성SDS 남궁석 사장을 위원장으로 삼성전기 이형도 사장, 제일기획 배종렬 사장,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 등이 참여하는 그룹 인터넷사업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리고 자동차사업을 추진해왔던 구조조정본부 기획팀에 그룹 인터넷 실무추진팀을 만들었다. 자동차사업 대신 다른 사업을 통해 재용씨의 대물림작업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던중 자동차사업이 정리쪽으로 가닥 잡히고 기획팀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실상 해산되면서 추진돼오던 인터넷사업의 바통은 1999년 말 재무팀이 이어 받았다. 마침 재용씨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다니면서 인터넷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재용씨는 2000년 들어 ‘e-삼성’ ‘시큐아이닷컴’ 등 삼성이 최근 잇따라 설립한 인터넷 회사에 대주주로 참여하며 삼성그룹 인터넷 비즈니스의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로 부상했다. e-삼성은 삼성의 인터넷 사업 전략과 해외진출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인터넷 지주회사로 지난해 5월 공식 설립됐다.재용씨는 “오프라인 기반이 튼튼한 미국 금융사들이 온라인 기업에 위협받는 것을 보고 삼성의 미래를 위해 e비즈니스를 시작했다”며 “e삼성은 앞으로 금융포털과 B2B분야에 집중할 것”이라고 언론에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재용씨가 중점을 두는 인터넷사업은 크게 네 가지 분야다. 은행 대출부터 보험·증권·크레디트카드까지 금융에 관한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포털 사이트와 B2B, 보안·결재분야, 웹 에이전시 부문이다.따라서 재용씨는 일단 삼성전자 비등기이사로 재직하면서 이같은 인터넷사업을 집중 육성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회장은 이를 위해 2월초 윤종용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사장을 한남동 자택으로 불러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회장은 재용씨를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경영전면에 내세울 예정이었으나 지주회사에 대한 법제도 등의 미비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회장은 재용씨가 삼성전자 부장 직함을 갖고있어 승진을 통한 삼성전자 입성이 다른 계열사 진출보다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JY 인터넷 사단 ‘맨파워’재용씨의 인터넷사업은 e삼성인터내셔널, 가치네트, 오픈타이드코리아, e삼성아시아 등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 회사의 주요 인맥이 일명 ‘JY(이재용씨 영문이니셜) 인터넷사단’의 주축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들 사단의 대부분이 삼성 구조조정본부(이하 구조본) 재무팀 출신이라는 것이다.구조본의 재무담당 이사를 지낸 e삼성인터내셔널의 신응환 대표는 ‘이학수 사장-김인주 전무’의 직계라인으로 재용씨의 인터넷사업을 사실상 총괄기획해온 인물이다. 신대표는 삼성그룹이 인수한 새롬기술의 사외이사를 겸임하고 있다.금융포털사이트인 가치네트의 김성훈 사장도 삼성전자 자금부장을 지냈다. 아이디어 발굴부터 컨설팅, 벤처 창립까지 도와주는 웹에이전시인 오픈타이드코리아의 김기종대표는 삼성전자와 삼성SDS를 거쳤다. 김사장은 미국 브리지포트대 전자공학석사로 삼성SDS 재직시 미국의 CT(CAMBRIDGE TECHNOLIGY GROUP)와의 합작법인 CSR(CAMBRIDGE SAMSUNG RESOURCES)의 설립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해외간 전략적 제휴를 성공시켰다. 이 회사의 전략을 맡고있는 톰 김(TOM KIM)은 재용씨와 같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신으로 에버랜드 고문을 겸하고 있다.e삼성아시아의 윤지원 대표는 대아시아투자 전문가다. 이밖에 아이마켓코리아의 현만영대표, 황영기 삼성투신운용대표, 이재환 삼성벤처투자대표, 강세호 유니텔대표도 JY 인터넷 지원사단으로 꼽힌다.현대표는 삼성물산에서 20여년간 국제금융을 담당하다 재용씨가 대주주로 있는 에버랜드로 옮겼다. 황대표는 삼성전자 자금부와 삼성생명 전략기획실에서 근무했다. 황대표는 재용씨의 미국유학을 기획하고 지분승계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들 뒤에는 이학수 구조본 사장이 큰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다.부친 숙원사업 자동차 재시동 걸까삼성은 지난해 프랑스 르노사에 삼성자동차를 팔고 삼성상용차의 파산신청을 법원에 내면서 사실상 자동차사업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삼성 일각에서 ‘경기가 나아지면 삼성이 자동차사업을 다시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삼성과 르노가 맺은 자동차매각 계약내용이 일부 흘러나오면서 ‘재용씨가 10년 후 부친이 이루지 못한 자동차사업에 다시 도전할 것’이라는 보다 그럴듯한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삼성과 르노가 자동차 매각계약을 체결하면서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19.9%를 10년간 유지하고 그후 매각시 상대방이 선매권을 보유’키로 하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10년동안 삼성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같은 추측을 더욱 낳게 하고 있다. 더욱 자동차사업을 주관했던 지승림 포디엘사장(전 구조본 기획팀 부사장) 등 자동차사업추진 인맥이 외곽이긴 하지만 ‘재시동 선언’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다.이같은 계약내용이 사실이라면 삼성이 10년후 자동차사업을 다시 선택할 수 있고 지금과 같은 지배구조가 유지될 때 재용씨가 이를 결정할 수도 있다. 물론 꺼진 자동차사업에 대한 시동을 다시 걸기 위해서는 재용씨가 부친의 숙원사업을 꼭 이뤄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가져야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재용씨는 이웅렬 코오롱회장, 최태원 SK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회장 등과 함께 자동차 인터넷판매사이트에 투자하는 등 자동차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은 상태는 아니다.경영인 이재용 프로파일용모·예의 갖춘 ‘나이스 가이’삼성가 이재용씨는 다른 재벌 2, 3세들 사이에서 한마디로 ‘괜찮은 친구(NICE GUY)’로 통한다. 수려한 용모에 깍듯한 예의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기 때문이다. 그를 유난히 칭찬하는 이는 이웅렬 코오롱 회장. 이회장은 가끔 재용씨에 대한 얘기를 물을 때마다 ‘예의바르고 똑똑한 친구’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재용씨는 부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치료받기 위해 미국에 머무를 때 항상 옆에서 병간호하는 등 효성 또한 지극하다.1남3녀중 장남인 재용씨는 서울의 ‘청운중-경복고’를 나와 서울대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했다. 그는 할아버지(이병철 창업주)로부터 ‘역사가 모든 학문의 근원이니 그 공부를 많이 해두라’는 조언을 듣고 동양사학을 택했다고 한다.재용씨는 그후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경영학석사 과정을 밟고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박사과정에 입학해 e비즈니스를 전공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은 무조건 공부만 잘한다고 입학하는 곳이 아니다. 세계 각국 각계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나라별 소수의 고위직 공무원이나 저명인사의 추천자들만 입학시킨다. 이런 점에서 재용씨는 비즈니스 전문지식과 이를 활용하는 지도자 교육을 받아 기업에서의 실습만 남은 셈이었다.지난 1998년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맏딸 세령씨와 결혼, 지난해 12월 아들을 얻은 재용씨는 이제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재용씨는 외삼촌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무척 따른다고 한다. 재용씨의 골프는 핸디캡 6의 세미프로 수준. 주량은 집안내력 탓으로 맥주 한컵 정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