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반 가정을 장악하기 위한 한판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통상 일반 가정 공략은 표를 모으려는 정치인들의 놀음이다. 이들은 TV를 활용한 광고나 TV토론을 통해 민심을 사려 한다. 대통령선거가 끝난 올해 벌어지는 가정공략싸움의 중심에도 TV가 있다. 달라졌다면 각 가정의 TV에 어떤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공급할 것이냐의 싸움이다. 한마디로 케이블과 위성의 전투인 셈이다.우리나라는 3개 공중파방송이 직접 전국을 커버하고 케이블과 위성은 보조적인 역할에 그친다. 그러나 땅덩어리가 큰 미국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중파방송도 케이블이나 위성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때문에 케이블과 위성의 싸움은 엄청난 이권이 걸린 미국 미디어업계를 뒤흔드는 초대형전투로 비교될 수 있다.머독, 디렉트TV로 위성시장 진출현재 우위는 케이블이 차지하고 있다. 전체 미국 가정중 케이블로 TV를 보는 집은 5천6백70만가구이고 위성은 1천3백80만가구이다. 4대 1의 압도적 판세다. 때문에 싸움의 모습은 케이블의 아성을 위성이 공략하는 형국이다.그러나 케이블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위성수신기가 ‘피자’ 크기 정도로 작아지면서 위성가입자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탓이다. 지난 96년 31억달러에 불과하던 위성시장은 지난해 74억달러로 4년만에 2배 증가했을 정도다.전투는 전방위로 붙어 있다. 위성에 가입자를 빼앗기는 케이블쪽에서 모뎀을 통해 디지털을 장착, 초고속 인터넷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등 만만치 않은 반격에 나서고 있다. 결국 두 진영은 비디오 인터넷은 물론 쌍방향TV기능까지를 포함하는 종합서비스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TV시청 뿐 아니라 오락 통신 등 모든 서비스를 자신들 쪽으로 끌어오겠다는 야심찬 작전계획들을 세워놓고 있다.다소 지지부진했던 싸움에 기름을 끼얹은 사람은 바로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 그가 소유하고 있는 뉴스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이 미 전역에 위성을 공급하는 최대 위성공급업체인 디렉트TV(DirectTV)와 합병을 추진하면서부터다. 머독이 디렉트TV를 통해 위성시장에 직접 뛰어든다는 얘기다.게다가 디렉트TV의 모기업인 GM그룹의 휴즈전자(Hughes Electronics)는 일반전화라인에 초고속 인터넷시스템을 적용하는 텔로시티(Telocity)라는 유망 중소기업을 1억7천9백만달러를 주고 오는 4월까지 인수할 계획이다. 초고속인터넷서비스회사인 텔로시티는 현재 약 1백50개의 지방시장에 4만7천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이 두가지 거래가 차질없이 이뤄진다면 디렉트TV는 자본(머독)과 인터넷기술(텔로시티)을 겸비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위성TV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디렉트TV가 위성의 대표선수로서 케이블시장을 무차별 폭격할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한 것이다. 디렉트TV 글로벌디지털미디어부문을 맡고 있는 래리 챕맨 사장은 “단순한 비디오제공이 아니라 디지털로 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서비스회사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물론 케이블 회사들도 가만히 있을리 없다. 미국 최대 케이블운영사업자로 케이블의 대표선수인 AT&T도 나름대로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기존의 전화라인에 디지털서비스는 물론 초고속 인터넷까지 한데 묶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감히 위성TV가 넘볼 수 없을 것”(AT&T케이블운영부문의 마케팅세일즈담당 수석부사장 도그 서서맨)이란 설명이다.케이블과 위성 싸움의 전선은 이미 여러 곳으로 확대되고 있다. 위성회사들이 디지털비디오레코더가 장착되어 있는 수신기를 제공한 것이 그중 하나이다. 이 수신기는 사용자의 기호에 맞도록 레코드를 프로그램화하고 찾을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시청자들이 생방송도중 이를 잠시 멈출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이에 질세라 케이블 사업자들도 VOD같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그러나 싸움은 역시 사람이 하는 것. 분석가들은 머독의 전면등장이 시장판도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머독은 영국에서도 브리티시스카이방송(BskyB)이란 위성방송을 성공시킨 전투경험을 가지고 있다.BskyB는 지난 92년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프로 축구 프리미어리그의 5년간 독점중계권을 3억5천만달러에 산뒤 이 기간 동안 1백50만명이던 가입자를 3백만명으로 두배 이상 늘렸다. 지금 BskyB위성가입자수는 5백20만명으로 영국 가정의 2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머독은 인기스포츠를 미끼로 하는 전략을 미국에서도 사용할 태세다. 이미 미국 최고 인기스포츠인 전국 프로풋볼리그(NFL)와 하키리그(NHL)의 전국 중계권을 따냈다. 그러나 케이블TV쪽에선 디렉트TV의 확장이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각 지역방송에서 그 지역의 프로 풋볼 경기를 생중계할 만큼 ‘풋볼 효과’는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케이블은 또 최근 몇년간 취약부문이던 디지털분야를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시켜왔다. 디지털케이블은 오늘날 케이블을 연결할 수 있는 가정의 80%까지 공급할 수 있다. 98년 27%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빠른 성장이다.싸움 결과는 좀더 시간 필요할 듯물론 싸움의 결과는 소비자들이 결정한다. 그리고 아직은 소비자들이 케이블과 인터넷서비스를 함께 선택할지 아니면 따로 따로 선택할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대해선 완전히 반대되는 두가지 견해가 있다”(마이클 굿맨 양키그룹 수석 분석가)고 얘기될 정도다. 미국 TV시장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지도 모르는 싸움의 결과를 아는데는 아직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