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오히려 인간을 구속하고 속박하게 될까.이 물음에 대해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고 보다 자유롭게 만든다”는 답을 제시한 전시회가 지난 3월10~12일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산호세맥너리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이 전시회(ACM1)는 미국 컴퓨터협회(ACM: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가 개최했다. 미래의 컴퓨터와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미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회로 4년마다 1번씩 열린다.엑센츄어가 선보인 '온라인약상자'‘사이버공간을 넘어서’란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회에서 눈길을 끈 것은 ‘우리의 미래 생활상(As We May Live)’이란 제목의 전시관. 미국 조지아공대와 엑센츄어(옛 앤더슨 컨설팅),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PARC)가 공동으로 마련한 것으로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인간 생활의 변화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컴퓨터 기술의 발전을 선도해온 팔로알토연구소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연구소는 제록스가 정보기술의 기본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난 70년 설립한 연구소로 그동안 개인용컴퓨터(PC), 윈도의 기본이 된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마우스, 이더넷, 클라이언트-서버 아키텍처, 레이저 프린터 등을 개발했다.이곳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온라인약상자’. 엑센츄어가 출품한 이 제품은 화장실에 있는 약상자를 인터넷에 연결한 것으로 약상자 한쪽 문을 스크린으로 사용한다. 이 약상자는 사용자와 그의 건강상태를 인식하고 먹어야 할 약의 종류와 시간, 양 등을 알려준다. 약을 잘못 먹는 것을 막아줄 수도 있다. 만약 다른 약을 꺼내려고 할 경우 약상자가 “잠깐! 약을 잘못 꺼냈습니다”라는 음성 메시지를 내보낸다.또 혈압계를 연결, 혈압을 재면 그 결과가 의사에게 통보되며 의사는 그 정보를 보고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처방전 번호를 입력하면 온라인 약품상점에 그 내용이 전달돼 곧바로 약을 주문하는 것도 가능하다.PARC의 멀티미디어 독서대PARC는 멀티미디어 독서대(Listen Reader)를 선보였다. 이 장치는 소파와 책을 놓을 수 있는 스탠드로 구성돼 있다. 소파에는 스테레오가 내장돼 있어 책의 내용을 소리로 들려준다. 이 장치에서 쓸 수 있는 책에는 한 장 한 장마다 센서가 내장돼 있다. 읽는 사람의 손의 위치를 인식해 그 부분에 있는 문자나 그림에 관련된 음향을 들려주도록 돼 있다. 가령 비바람이 불고 천둥 치는 그림이 있는 책일 경우 번개부분에 손을 대면 천둥소리가, 비가 오는 그림으로 손을 옮기면 빗소리가 들린다.조지아공대는 인지형가정연구소(AHRI:Aware Home Research Institute)의 연구결과들을 선보였다. 이 연구소는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인지하고 도와주는 가정 환경을 만드는 기술을 주로 개발하고 있다. 조지아공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디지털액자와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TV를 켜는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제스처목걸이,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의 상황을 알아내 통화할 수 있을 때만 연결해주는 가족인터콤 등을 선보였다. 디지털 액자는 단순히 얼굴 사진을 보여주는 기능만 갖춘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 연결돼 있어 외출했는지, 집에 있으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을 알려준다. 물론 e메일을 주고받거나 채팅하는 것도 가능하다.한편 이번 전시회에서 마이크로소프트도 컴퓨터와 TV 화면을 이용해 e메일을 주고 받거나 전등을 켜고 방문객을 확인하는 등의 기능을 갖춘 디지털 홈 시스템을 선보였다.이번 전시회가 보여준 것처럼 지금까지 세상을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온 컴퓨터가 미래에는 사람의 일상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해 주고 인간 관계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