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즉석밥’ 강조, 독신자·맞벌이 부부 등에 인기 … 오곡햇반 등 제품 다양화로 경쟁 맞서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추운 겨울날 아랫목에 묻어 두었던 따끈따끈한 밥 한 그릇은 어머니의 사랑을 묘사하기 위해 곧잘 인용되곤 했다.세상은 변했고 쌀도 흔해졌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어머니가 해주신 밥상을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제일제당의 햇반은 주식인 밥을 상품화함으로써 ‘밥은 주부의 몫’이라는 상식을 깨면서도 ‘어머니가 해 준 밥’이라는 언뜻 상반되는 마케팅 전략으로 히트치고 있는 상품이다.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포장 밥’이라는 기능적인 거부감을 ‘어머니가 한 것 같은 맛있는 밥’이라는 질적인 우수함으로 포장, 소비자층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햇반의 최근 광고는 제일제당의 이런 마케팅 전략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딸을 시집보낸 어머니는 맞벌이 주부인 딸이 밥을 제대로 해먹을까 항상 걱정이다. 마음을 졸이던 어머니는 컴퓨터 앞에 앉아 딸에게 e메일을 보낸다. e메일 내용은 “햇반이 내가 한 밥보다 맛있으니 햇반 쌓아놓고 살라”는 것. 즉 햇반이 곧 어머니 사랑의 대용품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4월말까지 런칭된 광고는 좀 더 자극적이다. 신세대, 중년, 노년기의 부부가 각각 식탁에서 밥을 먹는데 남편들이 하나같이 아내가 지은 밥을 못마땅해하며 어머니가 지은 밥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아, 엄마가 해준 밥이 먹고 싶다”라는 멘트와 함께. 이 광고는 자칫 주부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었던 것으로 지적됐다.그러나 햇반이 처음부터 ‘어머니가 해 준 밥’을 강조했던 것은 아니다. 제일제당이 햇반을 처음으로 출시한 것은 96년 12월. 주식인 밥을 ‘진짜 밥’처럼 상품화한 것은 제일제당의 햇반이 처음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냉동밥이나 레토르트 형태의 밥제품이 있기는 했지만 모두 고유의 밥맛을 살리는데 실패, 시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제일제당의 햇반은 압력밭솥 원리와 무균포장 공정을 이용, ‘밥맛’을 살림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밥 상품화 시장을 개척한 선두주자이자 독보적 상품으로 지금까지 군림해 오고 있다. 이는 제대로 된 밥맛을 내기 위한 가공기술이 워낙 까다롭고 초기 설비투자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밥 상품화 시장에 군침을 흘리는 식품회사는 많았지만 선뜻 뛰어들만한 회사는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야 농심, 오뚜기 등에서 제품출시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사실상 제일제당도 처음부터 햇반의 성공을 크게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2년여에 걸친 제품 연구개발 후 소비자 테스트 과정에서 상품의 질에 대해서는 자신 있었지만 밥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깨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제일제당 관계자는 “맞벌이 부부와 독신자의 증가 등 사회적 추세로 미뤄 가능성은 있었지만 미래를 확신하기는 힘든 일종의 ‘위험한 도전’이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이에 따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제일제당의 마케팅 전략도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이른바 단계적 시장진입 전략. 처음에는 전속모델 김혜자를 내세워 “제일제당에서 밥이 나왔어요”라는 광고로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중점을 뒀다. 밥도 상품화 될 수 있다는 것, 그 밥이 제일제당에서 나왔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2단계 광고는 다양한 상황제시를 통한 구매유도 작전. “가끔은 햇반이 좋다”는 광고카피로 갑자기 집에 손님이 왔을 때, 부인이 아픈데 아이들 밥상을 차려줘야 할 때, 라면과 함께 밥을 먹고 싶을 때 등 햇반이 필요할 만한 여러가지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햇반을 집안에 갖춰둬야 할 비상식품으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했다.이와 함께 대형 백화점이나 할인점은 물론 아파트 밀집지역이나 각종 유원지, 낚시터 등에서의 시식 및 샘플링 행사, 산악회 낚시회 등 각종 동호회 후원행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일단 ‘맛을 보이는데’ 주력했다. “먹어보니 맛있더라”라는 평가를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올해 2백억원 매출 기대이같은 1, 2단계 광고전략 및 판촉행사 덕분에 햇반은 순조로운 시장진입은 물론 로열고객층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햇반의 97년 첫해 매출은 45억원. 당초 기대를 훨씬 넘어선 금액이었다. 97년에는 특히 중앙일보, 한국경제신문 등 10여개 매체로부터 히트상품 또는 소비자대상 제품으로 선정되는 개가도 올렸다. 또한 대한항공이 기내식 메뉴인 비빔밥 주재료로 햇반을 선정, 국제적으로 상품성을 인정받으면서 미국 수출 길도 텄다. 현재 연간 2백만개 정도가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제일제당은 그러나 아직은 햇반의 소비층이 일부 계층에 머무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백80억원. 출시 이후 매년 20∼40%씩 성장한 결과다. 올해는 2백억원을 기대한다. 그러나 설탕 다시다 등 제일제당의 다른 상품과 비교했을 때 매출액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높은 브랜드 인지도(90%) 및 소비자 만족도(5점 만점에 3.8점)에 비해 아직 소비층이 얕기 때문이다.그래서 99년부터 시작된 3단계 전략은 ‘밥은 집에서 해먹는 것’이라는 심리적 장벽을 깨고 ‘정말 맛있는 밥’으로 인정받는 것. 어떻게 보면 주부의 자존심 또는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엄마가 해준 밥’을 컨셉으로 한 광고전략도 이를 반영한다. 또한 햇반의 패키지도 기존의 도시락 형태에서 밥공기 형태로 바뀌었다. 집 식탁에서 바로 꺼내놓고 먹을 수 있도록 친밀감을 높이자는 전략이다.그동안의 ‘독주체제’에서 ‘경쟁체제’로의 시장 개편을 앞두고 있는 요즘, 제일제당은 제품 고급화 및 다양화로 이에 맞서고 있다. 현재 시중에 선보이고 있는 햇반은 경기미를 이용한 일반 햇반(210g, 300g) 및 오곡햇반을 기본으로 햇반 자장밥, 햇반 국밥시리즈 등 모두 8종.앞으로는 검은쌀 햇반 등 건강과 다이어트 개념을 도입한 기능성 햇반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 해외시장 공략차원에서 한국식 차진밥(자포니카 쌀)외에 외국인을 겨냥한 롱그레인(월남쌀) 햇반 등도 개발할 예정이다.인터뷰/장인종 햇반 브랜드매니저(BM)“특허받은 제조공정 밥맛 자신”제일제당 햇반 브랜드매니저(BM) 장인종(39) 부장은 최근 일부 식품업체들이 무균밥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움직임에 대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무슨 상품이든 공정한 경쟁이 있어야 시장도 커지고 상품의 질도 좋아질 수 있다는 뜻에서다. 장부장의 이런 의견은 바로 제품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그동안 수많은 업체들이 밥 가공시장에 눈독을 들이면서도 쉽게 진출하지 못했던 것은 제조공정이 까다롭고 초기투자비가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햇반의 경우 초창기 설비투자만 80억원이 넘게 들었습니다. 계속적인 기술투자 및 시장개척 비용까지 합치면 엄청나지요.”장부장이 햇반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는 것은 바로 ‘밥맛’이다. 이 밥맛은 좋은 쌀, 우수한 기술력, 엄격한 품질관리에서 나온다는 것이 장부장의 설명이다.요약하면 햇반은 제일제당 쌀가공연구센터에서 엄선한 경기미를 일정 습도 및 온도가 유지되는 저온창고에서 보관, 항상 햅쌀과 같은 밥맛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도정해 바로 사용한다. 또 고슬고슬하고 차진 밥이 되도록 수분함량을 조절해 압력밥솥 원리로 지은 밥을 무균포장 시스템을 통해 포장, 상온에서도 6개월동안 신선함이 지속되도록 했다. 특히 이 무균실은 대기중의 먼지나 미생물이 통제돼 반도체 공장과 같은 수준의 청결도를 유지하는 ‘크린룸’으로 갓 지은 밥맛을 유지할 수 있는 핵심공정에 속한다. 이 핵심공정은 특허까지 받았다.“햇반이 단순한 간편식 수준을 벗어나 한국을 상징하는 쌀가공식품의 대표 브랜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제 희망이자 저희 회사의 목표지요.” 브랜드매니저는 제품이 탄생해서 사라질 때까지 제품에 대한 기획 마케팅 홍보 광고 등을 총괄하는 직책. 장부장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햇반 브랜드매니저직을 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