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미국계 벌처펀드들이 아시아 기업사냥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99년 벌처펀드 뉴브리지 캐피털이 제일은행을 인수했다.조세피난처(Tax-Haven)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다. 최근 미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마련한 규제안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때마침 영국에서 대책회의를 갖던 조세피난처의 대표들도 즉각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해 6월 조세피난처로 지정된 35개 국가가 오는 7월까지 세제개혁안을 내지 않을 경우 강력히 규제하겠다는 OECD 계획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원래 조세피난처는 역외금융센터의 일종으로 비거주자가 외화표시 금융업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와 조세감면과 같은 특혜가 제공되는 곳이다. 현재 세계 3대 조세피난처로는 카리브해 연안과 말레이시아 북동부, 아일랜드가 꼽히고 있다.이들 지역의 자금 공급은 돈세탁 명목으로 들어오는 각종 리베이트성 자금과 정치자금, 마약과 같은 불법자금, 조세감면을 위한 탈세자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대외신용 유지차원에서 개도국 기업들의 변칙성 외화거래 창구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이 지역과 거래되는 자금의 특성상 정확한 규모 파악은 어려우나 조세피난처를 통한 금융거래 규모는 전세계 금융거래 규모의 최대 25%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국제금융감시망으로부터 벗어난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고 세계적으로 지하경제 규모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고 볼 수 있다.이에 따라 97년 하반기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대한 다양한 규제방안이 모색돼 왔으나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기구가 주도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규제방안일수록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국지적인 금융안정망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결국 국제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IMF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제 역할을 찾기 위해서는 조세피난처를 국제금융감시망에 편입시켜야 한다. 그동안 OECD 차원에서 다양한 규제방안이 논의돼 왔으나 이 지역과의 정보교류를 차단한다든가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에 그쳐 왔다.조세피난처를 규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은 이들 지역에서 거래되는 금융거래에도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모든 금융거래에 부과되는 세율을 전세계적으로 평준화시키는 방안이다. 결국 OECD도 조세피난처에 속한 국가들의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세계경제 악영향 … 규제 어려워문제는 세금을 부과할 경우 조세피난처의 고유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 조세피난처에 속한 국가들은 OECD가 규제에 들어갈 경우 국민소득의 40%가 급감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더욱이 섣불리 규제하다간 이 지역의 자금 성격상 통화가 급속히 퇴장되면서 국제신용 경색현상과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앞으로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가 완화될 경우 이 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카리브해 연안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미국계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본래 헤지펀드는 49년 미국인 알프레드 존슨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그 후 한동안 활동이 거의 없다가 90년대 이후 조세피난처가 활성화되고 정보통신의 발달과 각국의 자본자유화 일정과 맞물리면서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크게 제고됐다.실제로 조세피난처에 속한 국가들의 세수와 헤지펀드들의 활동과는 높은 연관이 있다. 영국의 유력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조세피난처에 속한 국가들의 세수가 가장 많았던 98년에 헤지펀드들의 활동도 펀드 4천여개, 투자원금 규모가 4천억달러에 달한 만큼 전성기를 누렸다.그 후 98년8월 러시아 채무불이행(모라토리엄), 99년6월 이후 미국의 금리인상, 지난해 3월 기술주 폭락과 외환위기 방지차원에서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일면서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줄어들었다. 특히 헤지펀드들의 대표격인 조지 소로스가 운영하는 퀀텀 펀드와 줄리안 로버트슨이 운영하는 타이거 펀드가 커다란 손실이 발생하면서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99년6월이후 주세피넌처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일면서 조시 소로스(사진) 등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크게 줄어들었다.개도국들 헤지펀드 환투기 대상 우려지난해 하반기 이후부터는 미국증시를 비롯한 세계증시가 위축됨에 따라 국제투자자들의 투자성향이 안전자산과 ‘고위험-고수익’ 금융자산으로 양분화되는 과정에서 헤지펀드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고 올들어 국제금리의 동반인하로 재원 조성도 쉬워졌다.동시에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개도국들의 정치일정과 맞물려 조세피난처가 활성화됨에 따라 헤지펀드의 활동이 재개되고 있다. 최근 헤지펀드의 활동은 전성기를 누렸던 러시아 모라토리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추정된다.이번 미국의 반발로 OECD차원에서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가 불투명해짐에 따라 앞으로 헤지펀드들의 활동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앞으로 2년 동안 정권교체 일정이 많은 개도국들에는 헤지펀드들의 환투기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미국계 벌처펀드(Vulture Fund)들의 아시아 기업에 대한 사냥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벌처펀드란 썩은 고기를 먹고사는 독수리에 비유한 용어로 부실기업을 싸게 사들인 뒤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린 다음 되파는 기업을 말한다.올들어 아시아 기업사냥에 적극 나서고 있는 미국계 벌처펀드들은 론스타(Lone Star), 뉴브리지 캐피털, 칼라일 펀드, 리플우드 홀딩스 등 10여개 펀드들이다. 최근 들어 이들 펀드가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사무소 개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벌처펀드들이 아시아 기업을 사들일 때 기업가치가 최고가 대비 50% 이상 떨어지면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플우드 홀딩스사는 99년 말 파산한 일본 장기신용은행을 매입해 신세기 은행으로 재생시킨 바 있다. 올 들어서는 론스타가 쇼와은행을, 리플우드 홀딩스사가 닛산자동차의 그룹업체인 나일스 파트를 인수했다.우리나라는 어떤가. 그동안 우리도 조세피난처에서 무시할 수 없는 고객으로 대접받아 왔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는 정책당국의 외자선호정책과 맞물려 말레이시아, 아일랜드를 통한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나 국내기업들의 ‘변칙성 외자도입’이 문제가 되고 있다.벌처펀드와 관련해서도 우리나라도 뉴브리지 캐피털이 제일은행을 인수한지 오래됐고 올해 들어서는 칼라일 펀드와 뉴브리지 캐피털이 국내기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노출되고 있는 상태다.우리나라도 결코 조세피난처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감안할 때 돈세탁 방지를 위한 관련 금융망이나 외화감시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국내기업의 매각문제와 관련해 이제는 어느정도 외화유동성이 확보된 만큼 경쟁력 확보차원에서 접근해야 최근 들어 부쩍 증가하고 있는 벌처펀드들의 국내기업 사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