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성장을 거듭해온 미국 청소년시장은 지난해 불과 1.3% 성자한 데 이어 올해는 하락곡선을 보이고 있다.요즘 미국에 새로 생긴 경제용어가 하나 있다. 어린이경기침체(Kid Recession)란 단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경기가 꺾이면서 가장 빠르게 침체를 겪는 것이 바로 어린이 시장이라는 얘기다.지난해 하반기 미국 전체 소비는 소폭 증가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용돈을 받아 소비하는 8세에서 24세까지의 청소년 시장은 하락세를 보였다. 해리스 인터내셔날이란 마켓연구소의 조사결과를 보면 8~24세 사이의 청소년중 12%가 올들어 용돈이 감소했고 16%는 부모들이 주는 용돈 이외의 선물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결과에 따르면 90년대 들어 매년 두자릿수 성장세를 보이면서 연간 1천5백50억달러 규모로 성장한 청소년시장은 지난해 불과 1.3%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하락곡선을 보이고 있다. 이 시장은 99년에는 8.5% 성장했고 그 전해까지만 해도 두자릿수 성장을 보였다.청소년용 시장 매출 감소 심각미국의 청소년들에게 올 여름은 ‘노(No)’의 계절이다. 무엇인가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예전처럼 기꺼이 사주기 어려운 탓이다. 시어스같은 대형 백화점에서도 청소년용 의류는 성인들보다 훨씬 적게 팔리고 있다. 3개월이나 되는 기나긴 여름방학 때 활발히 이뤄지는 학생들의 ‘서머캠프’에서도 이같은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학생들의 참가율은 여전히 높지만 참가기간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게 미국 캠핑협회의 설명이다. 뉴욕 로잘린에 있는 일반 학생캠프인 버클리컨츄리의 일일 캠프는 학생들의 평균 참여기간이 지난해 8주에서 올해 4주로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그동안 호황시절로만 알고 있었던 청소년들이 경기침체로 가장 충격을 받고 있다”고 일리노이주 노스브루크의 10대를 위한 컨설팅회사의 마이클 우드 부사장은 말한다.일부 부모들은 이번 경기침체를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모처럼 아이들에게 힘든 일의 중요성 절약 근검 희생 등을 가르칠 수 있는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다. 인디애나주 사우스벤트학교 교사인 베키 러커스는 “요즘의 경기불황은 청소년들에게 돈이 어디서 나오는 지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말한다. 남편과 함께 일하는 그녀는 급격한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지만 두 아들이 사달라는 것을 마냥 사주기는 힘들어지고 있다. 따라서 14세의 둘째아들 대니가 드럼세트를 사달라고 했을 때 그에게 애완견 먹이를 주고 집안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조건부로 하도록 했다.텍사스 우드랜드에 사는 세자녀의 어머니인 신디 시티오는 아이들에게 실제 경제생활을 이해시키고 있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차안에서 라디오를 통해 주가가 떨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11세의 조나단은 부모들이 뉴스를 들으며 심각해 하는 것을 보면서 주가하락이 자기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물었다. 그녀는 “그것은 식구가 자주 외식을 할 수 없고 농구화를 자주 새 것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대답했다.물론 음식 의류 교육 등 기본적인 것에 대한 소비는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게임기나 패션 액세서리 등 그동안 부모들을 귀찮게 했던 품목들이 찬바람을 맞고 있다.실제 비저너리 리소시스라는 컨설팅회사가 10만명의 틴에이저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소년들이 대부분 경기침체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구당 연소득 15만달러 이상 고소득층의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타격을 입고 있다. “경기침체가 아직 전체적인 생활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아니지만 부모들이 교육적인 차원에서 청소년들의 소비를 줄이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스턴컬리지의 사회학교수 폴 세르비시는 말한다. 부모들이 한 세대 전에 경험했던 것을 자식들에게 알려주려는 노력인 셈이다.아이들에 대한 부모들의 지출감소로 가장 손해를 본 사람은 실리빌리(Silly Billy). 뉴욕 맨해튼의 어릿광대로 생일파티 등 어린이들의 오락행사를 진행하는 상징처럼 돼 있는 인물이다. 한번 부르면 1급 변호사와의 상담금액과 비슷한 시간당 4백50달러를 줘야 할 정도로 몸값이 비싸다. 올들어 그의 생일파티 예약건수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한달 평균 25건이었으나 최근 들어는 8건으로 뚝 떨어졌다.부유층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일반인들은 평생 한번 타보기 힘든 고급 리무진을 빌려 파티를 하곤 한다. 하지만 “올 졸업시즌 때는 예약취소가 많았고 메르세데스 벤츠같은 고급 모델의 주문은 예년의 3분의1로 줄어들었다”고 앤소니 피스나 프레지덴샬 리무진서비스 사장은 말한다.청소년들은 줄어든 용돈을 보충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에 나서기도 한다. 뉴욕 볼트사가 1천2백58명의 틴에이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3.8%는 올들어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8월말~9월쯤 소비 다시 늘어날 듯청소년 경기침체는 소매상들에게는 가장 심각한 뉴스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헐렁한 진바지와 티셔츠를 파는 캘리포니아의 의류메이커 패시픽 선웨어의 매출은 5월에 9.8%, 6월에 7.4% 줄어드는 등 계속 감소하고 있다. 자동차안전시트에서 유모차까지 어린이용품을 판매하는 이븐플로는 상반기 매출이 20% 가량 줄었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브랜드중 하나인 갭조차도 5월 매출이 10% 감소한데 이어 계속 줄어들고 있다.매출이 줄지 않고 꾸준한 청소년 브랜드도 있지만 이는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청소년시장의 매출감소가 심각하다는 분석이다.이같은 침체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는 8월말~9월쯤에는 소비가 다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또 미국 부모들도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각종 과외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경기는 심각하게 위축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만약 경제적인 희생이 필요하다면 부모들 자신이 대상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어찌됐든 학자들은 경기침체가 청소년들에게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오랫동안 무시돼 왔던 가치인 절약 봉사활동 종교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을 가정에서 가르치는 좋은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