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우려한 달러화 폭락설이 각국의 환율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엔/달러 환율이 120엔대가 붕괴되고 원/달러 환율도 1천2백80원대 밑으로 하락했다.사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 달러화 가치는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여 왔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미국 경제와 증시가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견실해야 이같은 달러강세가 설득력을 갖게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미국 경제와 증시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침체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분명히 ‘각국의 통화 가치는 경제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라는 종전의 통화가치 결정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달러화 가치의 거품론과 폭락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 대목이 달러화 가치의 거품론을 이해하고 앞으로 국제외환시장의 움직임을 점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지난 1년 동안 달러화 독주가 지속된 것은 국제 자금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펀드자금의 특성에 기인한다.달러화 독주화 지속, 부작용 나타나세계증시가 침체될 때 펀드자금들은 자신을 믿고 투자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통화에 대한 보유성향이 강해진다. 그동안 국제외환시장에서는 가장 안전한 통화로 미 달러화가 지목돼 왔다.미 달러화 독주체제가 1년 이상 지속됨에 따라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도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올들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침체된 경기회복을 위해 무려 여섯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했다.미국경제의 구조를 감안할 때 금리를 내릴 경우 보통 약 6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영향을 준다. 물론 미국의 금리인하 이후 경제상황을 보면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금리인하 효과가 나타나고는 있으나 종전에 비해 효과의 크기가 거의 반감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같은 현상에 대해 여러 요인이 지적되고 있으나 달러화 가치가 미국경제 여건에 비해 지나치게 강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된다.이 달 들어 미국 내에서도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달러화 강세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미 FRB가 금리를 내리더라도 고평가된 달러화 가치를 적정수준으로 되돌려 놓은 상태에서 금리를 내려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미국 외의 나라들에서도 미 달러화 독주체제에 대한 반대론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인플레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과 장기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원성이 심하다. 갈수록 금융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개도국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올들어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반면 인플레 수준은 유럽중앙은행이 세운 올해 목표선을 넘어선 상태다. 유럽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높은 인플레 부담으로 금리인하와 같은 부양수단을 쓰지 못하게 되는 점이다. 물론 달러화 강세-유로화 약세에 따라 인플레 부담이 높아졌기 때문이다.일본 입장에서도 얼핏 보기엔 ‘엔화의 약세는 수출상품의 경쟁력을 높여 일본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일본 경제 여건 하에서는 엔화 약세가 일본내 자금이탈에 따른 역자산 효과로 경기 침체를 가속화하는 부작용이 더 큰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결국 달러화 독주는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최근 국제외환시장에서 달러고 시정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나는 배경이다.현재 시장여건으로 보아 신플라자 체제가 나타날 여건은 형성되고 있다. 여러 가지 현상중 미일간의 실질금리가 역전된 점을 들 수 있다. 불과 일년전만 하더라도 1.99%포인트로 미국이 높았던 양국간 실질금리차가 최근에는 마이너스 0.21% 포인트로 오히려 일본금리가 높아졌다.올들어 미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여섯차례에 걸쳐 내렸으나 일본은 물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명목금리만 본다면 미국의 금리(3개월 재정증권)는 일년전 6.49%에서 최근에는 3.51%로 크게 하락했다. 같은 기간중 일본의 경우 3개월짜리 은행간 금리는 0.1%에서 0.02%로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덜 떨어졌다.미일간 실질금리 역전현상, 당분간 심화일본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7월 마이너스 0.7%에서 올 7월에는 마이너스 0.5%로 ‘부(負)의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같은 기간중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7%에서 3.2% 하락하는 데 그쳤다.따라서 인플레를 감안한 실질금리는 현재 미국이 0.31%, 일본은 0.52%로 일본이 오히려 0.21%포인트 높다. 유러랜드의 실질금리는 1.43%로 선진국중에서는 제일 높은 수준이다.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최근과 같은 미일간의 실질금리 역전현상은 당분간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최근 베이지북에 나타난 FRB의 시각을 감안할 때 21일 열릴 FRB 회의에서 금리가 0.25% 포인트 추가 인하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일본은 장기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정부 차원의 인플레 정책이 없다면 물가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물론 과거 FRB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상태에서 금리를 내린 적은 없다. 따라서 21일 FRB 회의에서 금리를 내릴 경우 금리인하 국면이 종결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현재 FRB의 의지를 감안할 때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10월 회의에서도 추가 금리인하를 점치는 시각도 많은 상태다.이론적으로 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흘러가므로 금리가 높은 나라의 통화가치가 낮은 나라보다 강세를 띠는 것이 보통이다. 문제는 미일간의 실질금리 역전현상과 달러화 약세국면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여러 가지 시각이 제시되고 있으나 ‘미국 경기가 얼마나 빨리 회복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 될 것으로 대부분 국제금융기관들은 보고 있다.최근처럼 갈수록 미국 경기의 회복시점이 되밀리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95년 4월 선진국간의 달러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부양하기 위해 협조한 ‘역플라자 합의(anti-plaza agreement)’ 이후 지속돼 왔던 미국으로의 자금유입과 달러화 강세라는 커다란 국제금융시장의 흐름이 막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그렇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는 국제투자자금들의 안전통화로서 달러화에 대한 보유성향이 여전히 강하다. 앞으로 예상되는 미국과 일본 유럽의 경제전망을 감안해도 최소한 엔화에 대해서는 달러화가 강세가 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따라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달러고 시정움직임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적극협조해서 ‘달러화 매도-엔 유러화 매입’이라는 시장개입에 나서야 한다. 그렇다면 달러화 독주를 방지하기 위해 이른바 ‘신플라자 합의’가 가능하느냐의 여부다.결론부터 말한다면 현 시점에서 그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는 달러화 가치를 낮추는 데 따른 자본이탈이 우려되고 일본은 엔고에 따른 디플레 부담이 만만치 않다.결국 이번에는 지난 85년 9월 플라자합의 당시처럼 선진국들이 달러고를 시정하기 위해 협력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설령 합의한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유러화 가치회복을 통해 시정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