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택시기사들 ‘1등 홍보맨’ 역할 … 월 7천대 판매 기염, 1위 쏘나타 바짝 추격

마케팅의 고전이자 불변의 진리중 하나는 구전마케팅을 당할 기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입소문’의 힘이다. 이미 써 본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소문만큼 확실한 홍보효과는 없다는 뜻이다. 구전마케팅의 전제조건이 바로 품질에 있기 때문이다. “써보니 좋더라”는 식으로.최근 자동차업계에 이같은 구전마케팅 효과로 승승장구하는 업체가 르노삼성자동차다. 98년 3월 출범당시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했다가 자금력의 한계로 생산중단에 들어간 것이 98년 12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엔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다. 이후 빅딜대상 법정관리 등 우여곡절을 거쳐 르노자동차의 합작투자 결정으로 르노삼성이 된 지 오는 9월로 1년. 르노삼성을 보는 일반인의 시선은 ‘잘해 낼까’가 아니라 ‘회생할까’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런데 이변이 생기고 있다. 르노삼성이 만드는 SM5가 지난 6월과 7월 두달 연속 각각 7천대씩을 팔아 중형차 시장에서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중형차 시장의 1위 자리는 현대자동차의 EF쏘나타가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 격차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한때 월 1만대 수준으로 EF쏘나타에 이어 중형차 시장의 양대 축을 이루었던 기아의 옵티마는 월 5천~6천대 수준으로 밀렸다는 분석이다. 이대로 가다간 EF쏘나타를 제치고 중형차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진단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철저한 고객관리도 판매기록 한몫회사에서조차 ‘기대이상’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 히트의 숨은 공로자들이 바로 개인택시 기사들이다.우선 택시기사부터 만나보자. 8월 11일 서울 연희동에서 종로 2가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SM5였다. SM5를 칭찬하는 택시기사가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타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라 넌지시 물었다. “이 차, 어떠냐”고.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자신의 개인택시 경력이 18년이며, 2종의 다른 중형차를 몰아봤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 차만큼 좋은 차는 없었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 택시기사가 한 말을 요약하면, ‘SM5는 고장이 잘 안나면서 보증기간이 길고 편안하면서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완벽한 서비스를 덧붙였다.예를 들면 이미 11만km를 달렸는데 그동안 고장이 한번도 나지 않았고 다른 차는 몇만 km달리면 타이어 편모가 심하고 이 때문에 핸들떨림 현상이 나타나는데 SM5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등이다. 기름 한 방울 떨어져 있지 않은 정비소에 친절한 정비기사 얘기도 덤으로 들려준다.그래서 이 택시기사는 “내가 주변 동료들에게 소개해 팔아준 차만 해도 7대나 된다”며 “우리(SM5를 모는 개인택시 기사들)가 바로 SM5의 홍보맨이다. 르노삼성은 우리 개인택시 기사들한테 고마워 해야한다”라는 자화자찬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회사택시는 SM5의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때문에 사고 싶어도 못산다”고 덧붙이면서. SM5 택시가 대부분 개인택시라는 것도 이렇게 해서 알게 됐다.지금까지의 택시기사 얘기는 사실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개별 사례야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SM5를 모는 대부분의 개인택시 기사들의 공통적인 평가는 고장이 잘 안나고 차를 오래 탈 수 있으면서 서비스가 좋다는 것이다. 이 3가지는 SM5의 품질 및 마케팅 전략을 요약하는 말이기도 하다.삼성이 처음 차를 만들 때 기본철학은 ‘Better & Different’였다. 한층 더 나은 품질에 차별화된 서비스 전략이다. 그리고 더 나은 품질의 핵심을 오래 탈 수 있는 차, 바로 ‘내구성’에 두고 있다. ‘당신은 지금 2년 더 좋은 차를 보고 있습니다’라는 최근의 TV광고도 SM5의 내구성을 강조하는 것들이다. 지난 2월부터는 10만km이상을 주행한 SM5에 대해 시승 기회를 주는 행사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1만여명이 시승테스트에 참여, 그 중 70%가 시승 직후 바로 구매결정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국내 자동차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돼 온 내구성을 강점으로 바꾼 셈이다.SM5의 내구성은 우수한 품질의 부품에서 비롯된다. 부식우려가 큰 머플러는 아예 스테인리스로 만들었다. 늘어나거나 끊어지기 쉬웠던 고무벨트대신 특수 합금한 메탈벨트를 사용, 교체할 필요가 없도록 하면서 소음문제도 해결했다. 점화플러그의 수명도 경쟁 차종에 비해 5배이상 길고 철판의 두께도 훨씬 더 두껍다.5년-10만km 보증기간, 차별화 성공다음은 서비스. 르노삼성의 서비스 차별화는 보증기간의 차별화다. 보통 다른 차의 보증기간이 엔진 및 동력계통 기준 3년-6만km인데 비해 SM5는 5년-10만km로 보증기간이 2배 가까이나 길다. 고장이 잘 나지 않는데다 보증기간까지 길다는 것은 웬만한 차는 폐차할 때까지 수리비용이 한 푼도 들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이밖에 지난 6월에는 누적 판매대수 10만대를 기념하는 ‘댕큐 캠페인’으로 10만명의 고객 전원에게 블레이드(유리창 와이퍼)와 안전표시 삼각대, 서비스 가이드북을 선물로 제공했다. 자동차 업계에서 기존의 구입고객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기록되고 있다. 이와 같은 행사의 일환으로 신차 구입고객에겐 조수석 에어백을 무상으로 달아주기도 했다. SM5의 최근 월 7천대 판매기록이나 중형차 시장 2위 선점 등은 우수한 품질에 바탕을 둔 이와 같은 철저한 고객관리의 산물인 셈이다.그렇지만 르노삼성이 외국계 자동차 회사란 이미지, 그리고 단일차종이란 한계를 딛고 국내 자동차 업계의 거봉으로 우뚝 서기에는 가야할 길이 멀다.인터뷰이언 르노삼성자동차 이사“한국 실정맞는 로컬마케팅 강화 계획”“택시 기사님들의 입소문은 수백만 아니 수억원을 들인 광고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큰 재산이죠. 정말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르노삼성자동차에서 국내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언(49)이사는 택시기사와 일부 자동차 동호회의 입소문을 SM5의 오늘을 있게 한 일등 공신이라고 추켜세웠다. 이 정도라면 르노삼성이 택시기사들에게 혜택을 줘도 단단히 줬을 법한데 비결은 오히려 간단했다. 택시답게 택시를 만들었고 택시기사의 실정에 맞게 서비스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것이다.“택시가 일반 승용차보다 주행거리가 길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지금까지 다른 업체의 택시는 이런 부분이 간과됐죠. 오히려 일반 승용차의 고급 옵션을 제외함으로써 품질 및 성능에서 일반 승용차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지적도 받아 왔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택시의 운행관련 기본기능을 일반 승용차보다 강화했습니다.”예를 들면 일반 승용차의 내구성 기준을 20만km로 봤을 때 택시는 50만km로 설정, 엔진오일을 비롯한 각종 소모품 및 부품 교체기간을 늘리는 등 기본 기능을 강화했기 때문에 택시기사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영업’을 해야하는 택시기사의 직업적 특성을 고려, 퀵서비스코너 야간당직제 운영 공항무상점검 서비스 등 특별서비스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택시기사들의 입소문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이이사가 SM5의 차별화 요인으로 꼽는 또 하나의 전략은 ‘단일가격’ 정책이다. ‘나랏님도 못 깎아 드립니다’ ‘죄송하지만 르노 회장님께도 못 깎아 드립니다’라는 광고카피에서 볼 수 있듯 SM5는 안 깎아 주면서 전국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똑같은 가격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업사원과 소비자 사이에 오히려 신뢰를 구축하는 역할을 했다고 이이사는 전한다.“이런 추세라면 2004년으로 예정된 손익분기점 달성을 1년 정도 앞당길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실정에 맞는 로컬 마케팅을 강화해 외국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국에 유익한 기업’이란 이미지로 자리매김 하겠다는 목표도 있고요.”이이사는 77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숱한 해외근무를 거친 삼성맨. 96년 삼성자동차로 옮겨온 뒤 그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이제 보람을 갖고 일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