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단어 ‘드러그 스토어’(Drug Store)를 말 그대로 옮기면 ‘약을 파는 가게’다. 약 파는 가게라고 하면 대다수 한국 소비자들은 약국이나 약품상을 연상하기 십상이다. 전혀 틀린 답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유럽 등의 지역에서 뜻하는 드러그 스토어의 의미는 그게 아니다. 약은 취급품목의 일부일 뿐 온갖 생활잡화를 다 판매한다. 화장품 세제 주방용품에서 소형 건강기구까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품이라면 없는 게 없다. 식품 등 먹거리 비중이 유독 낮은 것이 드러그 스토어의 특징이다. 이런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다.도심과 주택가 여기 저기에 산재한 드러그 스토어는 소비자들의 건강 지킴이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의약품외에도 거의 모든 종류의 생필품을 취급하면서 슈퍼마켓 할인점 등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대형 체인점 방식으로 사업을 꾸려 나가는 드러그 스토어라면 연간 매출이 1천억엔(약 1조원)을 가볍게 넘는다.도쿄 도심 황금상권 파고들어 고속성장일본 드러그 스토어업계의 대표적 업체 중 하나인 ‘마쓰모토 키요시’는 탄생 배경과 독특한 성장비결이 일본 유통업계의 관심을 집중시켜 온 회사다. 1932년 치바현의 한 중소도시 약국에서 출발한 이 업체는 60년대 중반 일본 최초의 디스카운트형 약국 사업에 뛰어들어 의약품 가격파괴 경쟁에 불을 붙이며 큰 성공을 거뒀다. 87년에는 본격적인 드러그 스토어형으로 업태를 전환한 후 도심의 황금 상권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면서 성장 스피드에 가속도를 붙여 왔다. 도쿄에서도 유동인구가 많기로 소문난 시부야, 우에노, 이케부쿠로 일대의 금싸라기 지역에 줄줄이 대형 점포를 개설하면서 이를 거점으로 염가공세에 나선 마쓰모토 키요시의 출점 전략은 세간의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그러나 이 회사가 일본 유통업계로부터 최근 화제가 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성장 속도가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떨어진 데 이어 회사 내부에서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점포확장 전략에 큰 미스가 있었다는 소문이 무성해졌기 때문이었다.도심의 특급 상권 중에서도 일급지만을 선호했던 마쓰모토 키요시는 사업 지역이 넓어지고 고객층이 확대되자 최근 수년간 도시 외곽에 대형 점포를 늘리는 데 힘을 쏟아 왔다. 외곽에서 힘을 기른 업체들이 도심 상권을 서서히 공략해 들어간 것과 달리 마쓰모토 키요시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지만 결과는 성공 아닌 패착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다.마쓰모토 키요시가 회사를 키워 온 전략의 핵심은 한 마디로 ‘다점포’와 TV CF 등 대중 매체를 앞세운 ‘공격적 고객확보’ 활동에 있다. 이 회사의 드러그 스토어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일대에 지난 3월말 현재 모두 5백1개의 점포를 열어 놓고 있다.창업자의 2남이자 지금 사장을 맡고 있는 마쓰모토 나미오씨(58)가 전무시절부터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점포확장 전략의 결과다. 그는 전무를 맡고 있던 지난 95년 “현재 1백56개인 점포를 앞으로 5년후 5백개로 늘리겠다”고 장담하면서 다점포체제 구축에 시동을 걸었다. 영업의 중심 축을 다점포 확보에 맞춘 후 마쓰모토 키요시는 점포 고유색깔 내기 경쟁에서 잇달아 히트를 날렸다. 여고생 등 10대 후반의 여성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시부야의 점포가 대표적 케이스다. 시부야 전철역 앞 번화가에 자리잡은 이 점포는 구석구석까지 가득찬 상품과 고객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로 호기심 나게 만드는 진열방식, 그리고 이용고객들의 컬러가 삼박자를 이루면서 개점 직후 단숨에 쇼핑명소로 자리잡았다.이 점포는 문을 연 지난 95년 8월부터 시부야 일대에 몰려드는 여고생들의 최고 인기 장소로 떠올랐다. 학교 수업을 마친 여고생들이 화장품 메이커가 주는 시제품을 손에 넣기 위해 앞다퉈 몰려 들면서 서로 화장을 해주고 받는 모습은 매스컴의 핫 뉴스로 대접받았다. 또 여성지와 TV가 이런 소식을 새로운 트렌드의 하나로 경쟁하듯이 보도하면서 이 점포는 언제나 뉴스의 한복판을 차지했다. 당시 여고생들 사이에서는 ‘마쓰키요 스루(마쓰모토 키요시에 가서 화장하고 놀자)’는 말이 신조어로 등장했을 정도였다.시부야 점포의 대성공에 자신을 얻은 마쓰모토 사장은 점포 확장을 강력히 밀어 붙이면서 96년 50개, 97년 60개의 점포를 신규 오픈했다. 그리고 고객확보에 가속도를 붙이기 위해 TV광고에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TV광고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났어도 제동이 걸리지 않은 것은 공격적 광고활동이 승리의 방정식이라고 믿었던 마쓰모토 사장의 신념이 얼마나 탄탄했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하지만 이 회사의 이상 징조는 살림살이 내역을 보여주는 결산 실적을 통해서도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이 회사는 2001년 3월 결산기의 경상이익이 6년만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우울한 전망치를 내놓았다. 드러그 스토어의 왕자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2000년 3월기에 1백14억엔의 경상이익을 올렸던 것에 비하면 가슴 아픈 후퇴였다.경쟁업체 관계자들은 마쓰모토 키요시가 삐걱거리게 된 결정적 이유를 점포확장 전략의 미스에서 찾고 있다. 이 회사는 회사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지난 98년부터 변두리 외곽으로 눈을 돌렸다. 도심과 달리 외곽에는 주택단지가 밀집해 있어 주부 고객들이 많이 살고 있는 데다 이들은 10대 후반의 젊은 여성들보다 구매력이 높으니 훨씬 매력적이지 않느냐는 계산에서였다. 임차료가 싸 상대적으로 도심 점포보다 큰 공간의 매장을 낼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었다.마쓰모토 키요시는 98년 이후 교외형 점포 확장에 더 신경을 쏟았다. 도심 점포 4개를 열 때 교외형 점포를 6개 신설할 만큼 힘을 몰아 줬으며 이에 따라 교외형 점포는 개설 시기가 늦었음에도 불구, 전체 점포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큰 오산이었다.교외형 점포의 주고객인 주부들은 도심의 여고생들과 같이 화려한 광고나 현란한 상품 진열 방식에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주부 고객들의 1차적 시선은 가격에 있었다.종이 기저귀나 주방세제 화장품 등을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관심이었다. 그렇지만 가격에 관한 한 마쓰모토 키요시는 최고의 강자가 아니었다. 회사가 난기류에 빠졌다고 진단을 내린 마쓰모토 키요시는 주저 않고 수술작업을 단행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중의원으로 정치활동을 해 온 마쓰모토 카즈나 사장이 지난해 12월 회장으로 물러나고 드러그 스토어 사업을 지휘해 왔던 나미오 전무가 사장에 올라 총사령탑을 맡도록 했다. 경영진 물갈이와 함께 그동안 별도로 운영해 왔던 식품 슈퍼 사업부문에도 메스를 대 신임 사장의 지휘 감독을 받게 했다.조제코너 설치 등 재도약 ‘의욕’고성장가도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마쓰모토 키요시는 ‘일보후퇴 이보전진’의 각오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재도약을 위한 가장 큰 포석은 바로 연간 5조엔 규모에 이르는 (약)조제비즈니스다. 마쓰모토 나미오 사장은 외곽의 대형 드러그 스토어가 할인점과 슈퍼마켓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지만 여기에 조제 코너를 모두 설치하면 분명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일본의 의약분업률은 현재 약 40% 수준이지만 2005년이면 80%까지 올라갈 것이 확실하다고 장담하고 있다.“주부들이 약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장도 보고 필요한 것을 모두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조제 코너가 설치된 드러그 스토어가 지금은 90개 정도지만 이를 올해 말까지 3백개로 늘릴 계획입니다.”그는 “모든 마쓰모토 키요시 점포가 조제 코너를 갖추게 되면 어느 할인점 슈퍼마켓과 경쟁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며 “조제사 스카우트에도 직접 발벗고 나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