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을 터뜨린 일반 소비재 상품을 ‘히트상품’으로 흔히 부른다면 대박을 터뜨린 책은 ‘베스트셀러’로 부른다. 히트상품이든 베스트셀러든 일단 많이 팔린 상품이란 측면에선 공통점이 적지 않다.일반 상품이 소비자의 트렌드를 읽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만들어 낸 뒤 타깃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갖가지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듯 베스트셀러 또한 독자들의 트렌드를 읽고 그들의 구미에 맞는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베스트셀러는 ‘천운’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출판가의 속설이긴 하지만 마케팅의 중요성을 누가 감히 부정하랴.지금 출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책 한 권을 보자. .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라는 부제가 붙은 책, 아니 ‘사진 책’이다. 그것도 동물이 사진의 주인공인. 이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책을 좋아하는 네티즌들이 즐겨하는 말 한마디를 옮겨보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알라딘 예스24 등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소개할 때 즐겨 써먹는 문구는 ‘처음 읽을 때는 10분이면 충분한 책, 하지만 다시 읽을 때는 1시간쯤 걸리는 책’이라는 것이다. 이 문구는 사실 책의 띠 표지에 그대로 실려 있는 말이자 읽어본 독자들이 가장 공감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지난 5월, 이 책이 처음 시중에 나왔을 때 히트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출판가에서 소위 한가닥한다는 전문가들은 “이것도 책이냐”고 반문할 정도였다.은 다양한 동물들의 갖가지 표정을 담은 ‘사진 책’이다. 1백91페이지에 짧은 문장과 그림이 양쪽 면에 나란히 펼쳐져 있다. 그저 그림만 있는 다른 사진책과 다른 점이라면 그들의 표정이 우리네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표정을 짧고 감성적인 문장으로 되살려냈다는 것이다.‘브레들리 트레버’라는 호주 작가가 내놓은 이 책은 일본에서 이미 지난해 연말부터 히트를 치고 있었다. 바다출판사 직원이 일본어 번역판을 구해 보고 “재미있다”며 당시 일본에서 연수중이던 사장을 설득한 것이 올해 초. 그러나 김인호 사장은 “기발하고 재미는 있었지만 돈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고 전한다. 일본이야 사진집도 책처럼 팔리는 곳이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고 서점에 서서 10분이면 볼 책을 누가 사서 간직하겠느냐는 것이 김사장의 생각이었다. 김사장은 그러나 “이번에 이 책 출간 안하면 후회하게 될 거다”는 등 젊은 직원들의 반 협박성(?) 설득과 열정에 못 이겨 “이왕 할 바에야 잘해보라”는 말로 출간을 허락하게 됐다.책을 출간하기로 한 바다출판사가 맨 처음 심혈을 기울인 것은 역자의 선정. 사진과 감성을 울리는 시적인 문장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신현림씨를 적격 인물로 추천, 번역작업을 맡겼다.다음은 저가전략. 가뜩이나 보기만 하고 구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데다 가격까지 비싸다면 더욱 구매로 연결되기 힘들다는 생각에서 책의 정가를 7천원 미만으로 책정했다. 출판사측은 이를 맞추기 위해 두꺼운 양장대신 무선제본을 택해 제작비 절감을 꾀했다. 대신 시원스런 편집으로 독자들에게 여유를 주는 전략을 썼다.마침내 책이 출간된 5월 초. 바다출판사 직원들은 마음을 졸이며 강남과 강북의 주요 서점을 돌며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직원들의 예상대로 이 책은 젊은 층의 눈길을 단번에 끌었다. 지나는 독자마다 멈춰 서서 낄낄거리며 책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의 반응은 역시 김인호 사장이 우려했던 대로였다. 열심히 보기만 할뿐 구매는 하지 않았다.이에 따라 바다출판사가 다음으로 들고 나온 전략은 독자들의 관심을 구매로 연결시키는 마케팅. 바다출판사는 우선 2천여장의 티셔츠를 제작, 직접 독자몰이에 나섰다. 직원들을이 5월 둘째부터 2주일 동안 대형서점에 파견, 직접 티셔츠를 입고 책의 내용을 홍보했던 것이다. 또한 책에 실린 사진 중 눈길을 끌만한 사진 30여개를 골라 대형 사진으로 제작, 전시회도 겸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처음에는 보기만 하던 독자들이 구매를 하기 시작했고 6월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지금까지 판매부수는 8만부. 워낙 경기가 안좋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다. 지금도 강남 반디앤루니스(서울문고)에서는 베스트셀러 종합 1위,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에선 종합 4, 5위를 차지한다. 예스24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에서도 종합 1~4위권에서 맴돈다.여기서 또 하나의 대박 비결을 찾자면 요즘이 워낙 우울한 때라는 것, 그리고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트렌드가 이 책에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우울함에 휩싸인 사회 분위기와 동물 애호 트렌드, 이에 걸맞는 기획과 적절한 마케팅 전략이 어우러져 하나의 히트상품, 즉 베스트셀러가 탄생한 것으로 분석된다.인터뷰김인호 바다출판사 사장“감각 떨어져도 사고는 열려 있죠”바다출판사 김인호(37) 사장은 독자들의 감각을 따라 잡을 수 있는 젊은 감각과 열린 사고를 출판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덕목으로 꼽는다. 김사장의 경우 감각은 좀 떨어질 지 몰라도 사고 하나만은 열려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 을 보고 당초 출판을 주저했지만 e메일로 주고 받은 직원들의 설득으로 결국 출판을 허락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서울 서교동 2층짜리 가정집을 빌려쓰고 있는 바다출판사에는 3마리의 강아지가 직원들과 어울려 생활하고 있다는 점도 김사장의 열린 의식을 나타내는 하나의 사례다. 하루 종일 강아지를 혼자 집에 두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직원에게 “다른 직원의 반대가 없으면 데리고 와도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출판을 비즈니스로 보는 김사장의 사고방식도 상당히 열려 있는 편. “출판계에 뛰어들 때 두가지를 고려했습니다. 한 분야의 전문 출판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분야를 가리지 않는 기업형 출판사가 될 것인가였죠. 저는 분야는 가리지 않으면서 책 하나 하나에 깊이를 더하는 기업형 출판사를 택했습니다.”김사장은 을 출간한 것도 특정 분야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바다 출판사가 기업형 출판사로 크느냐 아니냐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 김사장의 평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김사장은 언론노보 기자 출신. 3년여의 기자생활을 거쳐 평생 할만한 일거리를 찾아 회사를 나왔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또 기자로 글도 좀 썼으니 ‘출판을 할 역사적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게 됐다”는 것이 김사장의 농담섞인 출판업 입문 이유. 아는 선배의 출판사 한 귀퉁이에 책상을 놓고 3개월 동안 종이주문에서 서점관리에 이르기까지 출판의 모든 과정을 어깨너머로 배운 김사장은 96년 ‘바다출판사’란 이름으로 출판계에 입문했다.지금까지 바다출판사가 낸 책은 1백여권. 영화 <편지 designtimesp=21506>로도 유명한 소설 <편지 designtimesp=21507>(97년)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designtimesp=21508>(99년)가 바다출판사가 펴낸 베스트셀러들이다.이번에 낸 은 바다의 세번째 베스트셀러인 셈. 바다의 히트작들은 전부 철저한 기획과 마케팅의 산물이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