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영세업체가 광고를 하지 않고도 큰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기라성 같은 경쟁업체들이 잔뜩 버티고 서 있는 시장에서 고객들이 별 힘도 없는 나의 회사만을 고집하며 단골손님이 돼 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구멍가게와 다를 바 없는 소규모 회사를 꾸려 나가는 초보 사장들의 꿈은 한결 같다. 십중 팔구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회사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잘 나가는 기업인이 돼 볼까 하는 것이다. 맨 주먹으로 출발해 하루 하루를 자금과 싸우고 설움을 곱씹는 처지라면 더욱 더 그러하다. 이같은 상황에 놓인 사장들에게는 앞서 지적한 두 가지 질문의 해답이 유난히 간절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묘안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희미하고 멀게만 느껴질 뿐이다.일본 도쿄에서 초저가 항공권을 판매하는 코스모 에어시스템(www.castour.com)의 사례는 무명의 영세 기업이 거머쥘 수 있는 성공의 카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경우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항공권 할인 판매 경쟁이 그 어느 시장보다 치열하다. 일본인 해외 여행자수가 매년 2천만명을 넘는 데다 도쿄가 세계 정상급 도시이다 보니 항공사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 자체가 엄청난 매력을 갖고 있는 황금 시장이기 때문이다.비행 노선도 수없이 많아 나리타를 기준으로 할 경우 아프리카에서 남미에 이르기까지 제법 이름이 알려진 지구촌 도시라면 거의 모두 단번에 날아갈 수 있다. 그만큼 항공권의 종류도 셀 수 없이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항공권 판매 싸움에는 일본 최대의 여행사인 JTB를 비롯, 크고 작은 업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뛰어 들어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따라서 자금력이 달리고 정보 수집력이 뒤떨어지는 업체는 발 딛고 설 공간도 제대로 확보하기 어렵다.일본의 한 미디어는 최근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하나 공개했다. 인터넷 판매에서 어느 업체가 가장 항공권을 싸게 팔고 있는 가였다. 독자들은 당연히 최대 업체인 JTB나 저가항공권의 파이어니어업체인 HIS가 수위에 오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네티즌들 이외에는 이름을 많이 들어본 적도 없는 코스모 에어시스템이 1위 업체로 꼽혔다.독자들은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제시된 사례를 읽어 내려 가자 궁금증은 곧 풀렸다.가격경쟁력 일본 최고인 HIS도 눌러지난 8월22일 홈페이지에 실린 가격을 기준으로 할 때 도쿄발 콸라룸푸르 왕복 말레이시아 항공의 이코노미요금(10일 픽스)은 코스모 에어시스템이 5만5천8백엔이었다. 이에 반해 HIS는 6천2백엔이 더 비싼 6만2천엔에 팔고 있었다. 같은 날 출발하는 유나이티드항공의 홍콩 왕복(9일 픽스) 요금은 HIS가 4만8천엔이었으나 코스모 에어시스템은 3만8천8백엔을 제시했다. 가격경쟁력에서 일본 최고를 달린다는 HIS가 무명의 소규모업체에 완패한 것이다.물론 모든 상품에서 코스모 에어시스템이 우위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경쟁이 유독 심한 노선이나 대형 여행사들이 미끼상품으로 내놓은 항공권에서는 코스모가 더 비싼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회사는 전체적으로 볼 때 9할 이상의 상품에서 어느 여행사보다도 가격에서 우위를 차지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사정이 이렇게 되자 일본 언론은 코스모의 가격 경쟁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 종업원 22명밖에 되지 않는 창업 10년의 미니 회사가 일본 최고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됐는 가에 의문을 품게 됐다.자본금 3천만엔의 코스모 에어시스템(사장 카마타 하루오)은 2000년 10월 결산에서 22억엔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2차대전후 최악이라는 불경기 속에서도 24억엔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매출이 1백% 인터넷 판매를 통한 것이라는 사실이다.일본 언론은 코스모가 저가항공권 인터넷 판매에서만큼은 대형 업체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HIS가 칸사이 후쿠오카 등 일본내 다른 도시들에서 출발하는 항공권을 모두 취급하고 있는 데 반해 코스모 에어시스템은 도쿄발 항공권만을 고집하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쿄에서 떠나는 항공편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명실공히 코스모 에어시스템이 인터넷 저가항공권 판매 경쟁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린다고 지적하고 있다.거의 모든 일본 기업들이 그렇듯 코스모의 경쟁력은 철저한 비용절감에 있다. 얼마 되지 않는 판매 수수료에서 이익을 한푼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불필요한 경비를 최대한 잘라낸다. 그러나 비용을 줄이는 전략이 독특하다. 첫 번째가 광고비다. 이 회사는 지난 97년 10월 결산항목에서 총4천5백만엔의 광고비를 계상했다. 96년 11월부터의 1년간 매달 평균 약 4백만엔을 광고에 썼다는 얘기다. 이러던 광고비가 2000년 10월 결산에서는 9분의 1인 5백만엔으로 격감했다. 같은 기간 동안 15억엔에서 22억엔으로 매출이 껑충 뛴 것과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이었다. 원인은 간단했다.이 회사는 월간 여행잡지에 게재해 왔던 광고를 인터넷 상의 여행정보 제공 사이트로 돌렸던 것이다. 여기에는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판매하는 이상 타깃 고객을 완전히 네티즌 쪽으로 좁히겠다는 계산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코스모 에어시스템은 또 경비를 아끼기 위해 홈페이지에도 돈을 거의 들이지 않는다. 전문업자에 맡기지 않아 홈페이지 모양은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회사측은 개의치 않는다. 행선지별 요금과 출발 일자 등 여행에 가장 기본적인 정보만 띄워 놓는 것으로 끝내고 있다.경비 절감의 또 하나 특이한 전략은 결제 시스템이다. 인터넷 판매를 하면서도 자동결제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가격을 본 고객들이 전화로 신청하고 대금을 자동이체 통장에 넣어 주거나 직접 사무실에 찾아와 항공권을 구입하도록 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여행사들에는 거의 다 보급돼 있는 신용카드 결제도 외면하고 있다. 박리다매식으로 항공권을 파는 장사에서 카드사에 수수료를 떼주면 그만큼 티켓 값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판매 1건당 이익은 잘 해야 2천~3천엔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중 인건비와 사무비를 제하면 굉장히 낮은 수준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인건비도 줄이기 위해 직원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고객을 맞도록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카마다 사장 )이 회사는 고객 질문에 대한 상담을 아예 요금과 항공권에 관한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대형업체들이 항공권뿐 아니라 여행지 정보와 각종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너무도 대조적이다. 부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대신 항공권만은 다른 어느 곳보다 싸게 팔테니 고품격 대우를 원한다면 다른 여행사로 가도 좋다는 대담하면서도 현실적인 발상이다. 코스모는 항공권의 종류도 저가 이외는 취급하지 않는다. 정규 항공권이나 정규할인 항공권은 판매하지 않는다. 또 도쿄 이외에 오사카나 후쿠오카에서 떠나는 것도 팔지 않고 있다.부대서비스없이 도쿄발 취급 … ‘선택’ 성공그야말로 자신의 실력과 특기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틈새를 찾아 전력을 투구하는 철저한 ‘선택’과 ‘집중’의 성장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광고도 하지 않고 콧대 높은 장사를하는 것 처럼 비치지만 이 회사의 고객들은 철저한 단골손님이다. 10회 이상 이용해 본 손님들이 올려 주는 매출이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카마다 사장은 대학 졸업후 첫 직장인 일본여행사에서 약 10년을 일했다. 그리고 여기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차별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저가 항공권 시장에 뛰어 들었다. 그는 매출이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저가항공권 사업 볼륨을 연간 50억엔 이상으로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현재 자신의 능력과 시장 상황에 비춰 볼 때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한계는 그 정도까지라는 판단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