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년전만해도 새로 개발되는 식품의 3분의1은 '저지방'과 관련된 것들이었지만 최근'고지방' 식품들이 업계의 주력 상품으로 등장하고 있다.미국인들의 식성이 변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 ‘저지방(Low-Fat)’이나 ‘무지방(Fat-Free)’식품들이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요즘 이런 식품들은 수퍼마켓 선반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대신 지방이 많이 포함된 식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인들의 식탁에 지방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불과 5년 전만 해도 새로 개발되는 식품의 3분의 1은 ‘저지방’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저지방’을 무기로 하는 식품은 전체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수백억달러의 시장규모를 자랑하던 ‘저지방’ ‘무지방’ 식품들이 설자리를 잃는 셈이다.테러 인한 스트레스 풀기도 한 요인이유가 뭘까. 몇 그램의 지방성분까지 따지던 미국인들이 왜 고지방 식품을 마구 먹어대는 것일까. 테러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찾는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4년 연속 저지방 식품의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인들의 식성변화는 이미 몇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다.미래학자 와츠 왜커는 “21세기에는 술도 담배도 마약도 성생활도 마음놓고 할 수 없는 시대”라며 “유일하게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먹고싶은 것을 먹는 것만이 심리적인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는 분석이다.식품업체들의 판매실적을 보면 이런 추세는 분명해진다. 90년대 건강을 지켜주는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됐던 저지방상품들의 판매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무지방’ 아이스크림의 매출은 올들어 17% 떨어졌다. 저지방 과자의 판매도 10.8% 줄었다. 저지방 소시지의 매출 감소율도 8.6%에 달한다.이에 따라 식품업체들이 다시 지방이 많은 식품을 만들고 있다. 아이스크림업체인 벤&제리스는 5년전 전체매출의 12%까지 차지했던 무지방 아이스크림생산을 중단하고 고지방인 프리미엄아이스크림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 아이스크림의 올해 매출증가율은 21%에 달한다. 프리토레이가 지방이 듬뿍든 과자를 만들고 패스트푸드업체인 칼스주니어가 역사상 가장 큰 햄버거인 식스달러버거를 시판하는 등 ‘고지방’은 이제 각 식품업체들의 주력 상품이 되고 있다. 두장의 치즈와 0.5파운드의 쇠고기(64g의 지방과 9백49㎈)를 넣은 식스달러버거는 칼스주니어의 최고 인기품목이 됐을 정도다.미국인들은 스넥을 유난히 좋아한다. 가정에서 소비되는 감자의 4분의 1이 칩 형태로 소비된다. 2백억달러에 달하는 스넥식품산업은 올해 6.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스넥식품협회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게임할 때’와 ‘스넥 먹을 때’가 거의 엇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런 스넥의 내용이 변하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네브라스카주 링컨시의 유치원 요리사인 안드레아 래틀리프는 어린이들의 취향변화를 잘 파악하고 있다. 그녀는 요즘 무지방 요구르트는 물론 지방대체품으로 만든 와우감자칩도 별 인기가 없다고 전한다. “무지방 저지방을 따지는 것은 맛없는 음식을 먹기 위해 많은 돈을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그녀는 “어떤 음식에서 지방질을 빼내면 빼낼수록 맛은 더 나빠지는 반면 가격은 더 비싸진다”고 ‘지방과 맛과 가격’의 함수관계를 설명한다.실제 최근 들어 식품관련연구기관인 민텔그룹이 소비자들에게 ‘과자를 살 때 무엇을 가장 신경쓰느냐’는 설문을 실시한 결과 1~3위 안에 맛을 꼽은 응답자가 95%였고 저지방은 37%에 불과했다. 이 그룹의 연구담당인 린 돈블러저는 “이제 소비자들은 저지방 상품은 맛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저지방 식품 고집 회사 어려움 직면저지방 식품을 고집하다 어려움에 처한 회사들도 한 둘이 아니다. ‘저지방’이란 단어를 가정에서도 친숙하게 사용하도록 만든 회사는 미국 최대 식품회사 중 하나인 나비스코의 계열사 스넥웰스. 92년에 저지방 쿠키와 크래커를 내놓으면서 ‘저지방 혁명’을 일으켰다. 당시 사람들은 스넥웰스를 박스채로 사먹었다. 메리안 네슬 뉴욕대 식품영양학과교수는 “사람들은 저지방식품에는 칼로리마저 없는 것처럼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한다. 스넥웰스의 매출은 95년 6억3백만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때가 피크. 지난해 8월부터 올 8월까지 1년간 매출은 1억3천4백만달러에 불과했다. 5년만에 5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멕시코 토속음식인 무지방 토르티야 칩과 소스를 만드는 길트레스 가멧은 90년대 중반 정말 좋았다. 89년 설립한 이 회사의 94년 매출은 2천4백만달러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신장했다. 하지만 95년부터 판매는 고꾸라졌고 지난해 연매출은 6백만달러에 불과했다. 지난해 이 브랜드를 인수한 마니쉐위츠의 마이클 셀 CEO는 “소비자들의 취향이 너무 빨리 변한다”며 “최근 들어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전략을 ‘무지방’에서 ‘저지방’으로 바꿨다”고 말한다.대형식품업체인 프리토레이도 97년 개발한 지방대체식품인 와우칩의 매출이 98년 3억1천8백만달러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8월부터 올 8월까지 1년간 매출이 1억6천3백만달러로 뚝 떨어졌다. 식품전문가들은 와우칩의 매출이 연간 5억달러 선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했었다.최근 들어 가장 급속히 팽창하는 도너츠 업체인 크리스피 크림의 성공비결도 결국은 고지방 전략이다. 이 회사 경영진들은 “지방이 왕”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확신의 배경은 올해 매출이 지난해보다 50% 이상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보다는 고객들이 매달 회사로 보내오는 평균 6천여통에 e메일이 대부분 “지방이 많이 들어간 도너츠의 팬”으로 부터 오기 때문이다. 스탠리 파커 마케팅담당 수석부사장은 “미국인들은 이제 자신들에게서 좋은 것들 빼앗아 가는 것에 지쳐 있다”며 “앞으로 점점 더 맛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