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길은 이것밖에 없다. 나는 꼭 다시 일어선다.”89년 겨울,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서울시 봉천동 고개에서 허훈(43) SWP신우전자 사장은 다짐에 다짐을 했다. 허사장은 남들처럼 해외 유학도 국내 유수의 대학도 나오지 않았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공고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허사장의 마음속엔 ‘꼭 성공하겠다’는 일념만 있었다. 성공하기 위해선 언젠가 혼자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고 매일 되씹곤 했던 그는 힘든 직장생활 중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의 노력은 81년 한국산업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96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수료로 나타났다. 학업만이 아니다. 경영자로서 지금은 통신기기 부저 업계에선 몇 안되는 자수성가한 인물로 우뚝 서 있다.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던 허사장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내 손으로 만든’ 사업체를 꾸리는 것이 꿈이었다. 이런 꿈은 탁상용 알람시계 제조업체인 하임벨에서 현실로 다가왔다. 그는 알람시계에 들어가는 ‘부저(Buzzer)’가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사업 아이템이라고 확신했다.부저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자신했던 허사장은 86년 단돈 5백만원으로 봉천동에 사무실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자체 기술력이 없던 탓에 허사장은 시중에 유통되는 샘플을 일일이 분해해 가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존 제품을 본 따 만들다 보니 초기 6개월간은 불량률이 높아 어려움이 많았다”며 “하지만 생산라인이 안정화되면서 오리엔트 시티즌 등 고객을 확보해 자리를 잡아갔다”고 말했다.호사다마랄까. 88년 올림픽 이후 불어닥친 업계 불황이 SWP신우전자의 성공에 발목을 잡았다. 협력업체가 부도로 넘어지면서 연쇄도산에 휩싸인 것이다. 결국 자금줄이 막히고 재고는 쌓여 문을 닫았다. 창업 3년만에 성공의 꿈을 잠시 접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허사장은 낙담하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으로 재기를 위한 구두끈을 다시 한번 단단히 맺다. 우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살던 집을 팔아 월세로 옮기고 자체 개발한 제품을 들고 밤낮없이 뛰었다. 그 결과 세계적 휴대폰 생산업체인 노키아TMC를 잡는 데 성공했다.노키아 TMC 납품, 기술력 인정받아“자체 개발한 세라믹 리시버(Reciver)와 부저를 들고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받아줄 때까지 끊임없이 두드렸습니다. 처음엔 반응도 없더니 나중엔 귀찮은 지 제품이나 테스트해보겠다고 하더군요. 테스트 결과 성능면에서 외국제품에 손색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자 바로 계약을 하더군요.”노키아TMC를 통해 기술력을 인정받은 SWP신우전자는 계속해서 모토로라 에이서 지멘스 필립스 등 세계적 통신기기 업체를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승승장구했다.SWP신우전자는 현재 월 4백50만대의 리시버와 부저를 이들 외국업체에 공급하고 있고 월 1백만대를 국내 휴대폰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탄탄한 기술력으로 해외 유수 고객을 잡은 SWP신우전자는 매년 배 성장을 거듭했다.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해 1백6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1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올해는 10월까지 1백21억원의 실적을 올려 당초 매출목표를 1백62억원에서 2백20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 내년초 코스닥 등록을 준비하고 있는 허사장은 요즘 종합 소형 음향기기 전문업체로 거듭나기 위해 블루투스 등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